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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중남미/아프리카

This is Africa. 이한철의 아프리카 트럭킹 여행기 (13)


13. 다시 비가 내리네
잠든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깼다.
비다. 이번 여행은 비와의 얘깃거리가 많아질 것만 같다.
이른 새벽 또 한 번의 소동에 잠이 달아나 기타를 튕기며 노래 불렀다. 


템보의 캠핑장에서의 하루

템보의 캠핑장에서 하루를 묵었다. 긴 이동경로 덕분에 머물게 되는 곳이라 관광지는 당연히 아니고, 마을과도 떨어져 있는 단지 캠프만 가능한 곳이다. 물난리로 좋게 기억되기 힘든 아루샤의 캠핑장, 세렝게티 국립공원 안의 세노레라 캠핑장에 이어 이곳도 썩 사정이 좋지는 않다. 수영장이 있긴 하지만 갖가지 부유물들로 내가 수영할 틈은 없어 보였다. 그 나마 다행인 것은 캠핑장 안에 로지(Lodge)가 있어서 추가요금을 지불하면 오랜만에 텐트가 아닌 침대에서 잠들 수 있다는 거였다.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트럭에서 짐을 챙겨 로지로 향했다.


폭신한 침대에 냅다 몸을 던져 누웠다. 낡은 건물이지만 몇 일간의 피로를 추스르기엔 충분할 듯하다. 아프리카 땅의 기운 받기를 하루 정도는 쉬어주자. 무거운 텐트치고 걷는 일도 오늘 하루는 생략이다. 입에서 “휴~”소리가 났다. 피로가 침대보에 고작 2% 스며들기도 전에 할 일이 머릿속에 피어오른다. 며칠을 묵힌 빨래와 식사당번. 해가 지기 전에 빨래를 마쳐야 한다. 우선 나무와 나무사이에 빨랫줄을 묶는다. 아프리카 트럭여행을 하려면 빨랫줄이 필수다. 그 위에 여적 꿉꿉한 오리털 침낭을 넌다. 그러고는 산더미 같은 빨래를 하나둘씩 해나갔다. 아루샤에서 아무리 빨아도 지워지지 않던 흙탕물 얼룩들도 제법 깨끗해졌다. 손끝에 빨갛게 꽃이 필 때쯤 빨래를 마칠 수 있었다. 멀리서 밥하는 소리가 들려 바삐 그리로 걸음을 옮긴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로지로 들어와 건물 안을 찬찬히 살펴본다. 우리 일행이 쓰는 도미토리 형식의 2층 침대가 놓여 있는 방. 침대마다 모기장이 달려있고, 머리위에선 묵직한 선풍기 돌고 있다. 딱히 시원하지도 않지만, 끄면 뭔가 허전한 선풍기다. 화장실로 가봤다. 화장실은 설마 공사 중? 다른 화장실을 찾아봤지만 작은 건물 안의 화장실은 여기뿐이다. 굳게 닫혀 있는 방도 있는데, 손목에 힘을 줘 끼이이익 문을 열어보니 잘 정돈된 2인실이다. 다른 방들도 들어가 봤는데 비슷하다. 갑자기 깨달은 정적 때문에 뭔가 으스스한 느낌이 들어 급히 방을 나왔다. 복도를 지나며 처음 기웃거린 방을 흘깃 봤다. 앗. 좀 전까지 가지런하던 침대보가 마치 누가 누웠다 일어난 것 마냥 흐트러져 있다. 도미토리에 되돌아가서 짐 정리하던 일행들에게 물어봤지만 아무도 그 방에 들어간 사람이 없다했다. 등골이 서늘하다. G 메이저 코드가 G 디미니쉬 코드로 바뀔 때의 그 긴장감이다. 이 캠핑장은 몇 사람의 관리인 말고 우리 일행이 전부인데 누가 그 짧은 찰나에 그 방에 들어갔으며 침대보를 만졌단 말인가. 확실히 이 낡은 숙소는 오래된 건물이 주는 고풍스러움 보다 사연 있는 폐가의 느낌에 좀 더 가까운 것 같다.


새벽에 비가 내리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모기장을 치고, 깨끗한 침대보를 덮고 누웠다. 모기장이 무언가로부터 나를 지켜줄 거라는 터무니없는 믿음을 근거로 쉬루르 잠에 들었다. ...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깼다. 또 비다. 그렇게 맑던 날씨에 새벽만 되면 비가 온다. 바깥에 널어놓았던 빨래들이 다시 젖었고, 다들 허겁지겁 자기 빨래를 수습했다. 건물 안에 빨랫줄을 다시 묶고 널었다. 아까 미스터리를 제공한 그 방도 금세 빨래로 가득 찼다. 들뜬 여행의 기분도, 으스스한 무언가도 비가 다 물러가게 해준다. 감사해야 할지 원망해야 할지, 이번 여행은 비와의 얘깃거리가 많아질 것만 같다. 이른 새벽 또 한 번의 소동에 잠이 달아나 기타를 튕기며 노래 불렀다. 아무리 힘들고 무서워도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그 순간의 나는 음악 그 안에 있다. 나의 도피처이자 내 영혼의 안식처. 아루샤의 캠핑장에서 비를 만나기 전날 만들던 ‘모퉁이, 가장 자리의 나’라는 제목의 연주곡에 멜로디를 입히고, 진행을 만든다. 노래가 제법 그럴싸하다. 

노래 부르기로 한참 시간을 때웠건만 아직 해뜨기 전이다. 다시 잠이 들까싶어 방으로 들어오다 깜짝 놀란다. 2층 침대에 누군가 쓰러져 잠을 자는데 그 모습이 심령사진 한 컷 같았다. 낮 시간, 트럭 안에서 무료하게 보낸 만큼 밤의 일들이 흥미진진하다.



                      다시 비가 내리다 

이번 주는 노래파일이 아닌 영상이다. 내 아프리카 여행의 단짝 뱅이 방안에서 노랫소리를 듣고는 나와서 촬영해줬다. 여행기 4편에서 연주곡으로 만든 녀석이 조금 더 컸다. 가사는 쓰기 전이라 허밍으로 계속되다가 '이 비가 걱정되네요.' 가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