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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중남미/아프리카

This is Africa. 이한철의 아프리카 트럭킹 여행기 (12)


12. 천천히 천천히
우리말 '빨리빨리'와 스와힐리어 '뽈레뽈레'(천천히)는
어감이 비슷하지만 의미는 정반대다.
늘 서두르는 우리의 '빨리빨리'와 느림을 강조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뽈레뽈레'


다르에살렘으로의 여정

다시 길고 긴 2박3일간의 이동. 아루샤, 템보를 거쳐 탄자니아의 수도 다르에살렘으로 향한다. 이제는 오랜 이동시간도 덜컹거리는 트럭도 꽤나 적응됐다.

처음엔 흙길 위를 달리는 트럭의 창문을 여닫는 것에 꽤 고민이었다. 창틀에 낀 흙먼지로 뻑뻑해진 창문을 열려면 온 몸에 힘을 실어 양팔로 힘들게 열어야 했다. 한 10cm 열고나면 손바닥에 창문자국이 벌겋게 날 정도였다. 더 큰 고민은 열린 창틈으로 쉴 새 없이 흙먼지가 들어온다는 것이다. 에어컨이 없어서 달궈진 트럭안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선 시원한 바람과 흙먼지를 동시에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창문을 연 채 몇 시간 달리다 보면 읽다가 편 채로 놓아둔 책 위에 흙먼지가 얇은 층을 만들고, 몸의 구석구석에도 그것들이 수집된다. 그렇게 8~9시간을 달려 도착한 캠핑장에서 샤워하고 나면 해변을 다녀온 듯 바닥에 흙모래가 즐비했다. 하지만, 여행의 6일째가 지나자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졌다. 더웠지만 상쾌했고, 푸석푸석했지만 자연스러웠다.

느림과 기다림의 자연스러움

달리다가 허기가 지면 갓길에 차를 멈추고 식사 준비를 한다. 나는 과일, 야채 깎는 당번이다. 자투리로 남은 것들을 입으로 훔쳐 넣을 때의 입안에 퍼지는 달고 새콤한 기운에 과일 깎을 맛이 난다. 때론 망고의 질긴 섬유질들이 이 사이사이에 껴서 한동안의 소일거리가 생기기도 했지만.. 나눔으로 함께 식사하고 또 떠나는 일과는 매번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이 좋았다. 길거리 화장실도 다들 익숙해졌다. 아프리카의 도로가에는 휴게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지나던 길에 때마침 가게나 주유소가 있으면 화장실을 이용했지만, 그 외에는 풀숲으로 흩어져서 각자 일을 보고 트럭으로 되돌아온다. 특히 여성 여행자들이 이 상황을 곤혹스러워 했지만 나중에는 극히 자연스러운 일과가 되어버렸다.

달리던 트럭 안에서 짐정리 하다가 흙탕물에 젖었던 카메라와 핸드폰을 찾아냈다. 분리해 뒀던 배터리를 넣고 아주 약간의 기대와 함께 전원버튼을 눌렀다. 비에 젖은 그 날 왜곡되고 뒤틀린 화면을 보여주던 카메라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 그렇지. 풀이 죽은 채 같은 방법으로 핸드폰의 전원버튼도 눌렀다. 움찔, 반가운 부팅 화면이다. 차오르는 기분을 내려 앉히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살짝 노이즈가 꼈지만 분명한 신호음이 갔다. 지구 반대편에서 아내가 전화를 받는다. 아내도 반갑고, 핸드폰도 고마웠다. 누구에게 더 반갑고, 고마운지 살짝 헤깔리면서 안부를 묻고, 여행의 순간들을 전했다. 오래 통화하지는 못했다. 아프리카의 로밍요금은 개인경제를 파산시키기에 딱 좋다. 1분에 5,000원정도. 못다한 얘기들은 문자로 보냈는데, 이내 답장이 왔다.

아프리카에서 느림과 기다림에 대해 또 한걸음 일깨워진다. 지루함과 불편함 안에서 재미를 찾아내고 지연된 만족을 얻는 것. 달리는 트럭의 창밖으로 비가 왔다. 우선 흙먼지가 멈춰서 좋았고, 비를 먹어 채도가 높아진 붉은 아프리카의 흙길이 아름다웠다.


Pole Pole (천천히 천천히)

                                                                           작사: 뱅, 태평이, 하쿠나, 깜죽이, 철이, 카라케스
                                                                           작곡: 이한철

빨리빨리빨리빨리, Pole~ Pole~
빨리빨리빨리빨리, Pole~ Pole~

시계바늘에 쫓겨 살던 우리 이젠 모든 걸 바람에 맡길래
너무 빨리 달리지는 마요 초원의 친구들 우릴 볼 수 있게

빨리빨리빨리빨리, Pole~ Pole~
빨리빨리빨리빨리, Pole~ Pole~

길도 넓고, 차도 많고, 탈도 많아 이젠 내려서 천천히 걸어요
멀리서 불어온 시원한 바람 생긋 웃으며 우릴 반겨주죠.



우리말 '빨리빨리'와 스와힐리어 '뽈레뽈레'(천천히)는 어감이 비슷하지만 의미는 정반대다. 발음은 같지만 늘 서두르는 우리의 ‘빨리빨리’와 느림을 강조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뽈레뽈레’. 바로 그 말의 의미에 착안해 후렴을 만들었다. 같은 박자 안에 ‘빨리’는 빠르게 4번을, ‘뽈레’는 느리게 2번을 부른다.

느림의 미학을 담아 만든 이한철의 곡을 들어보자!


(원문출처 : 싸이월드 스페셜 뮤지션's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