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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중남미/아프리카

This is Africa. 이한철의 아프리카 트럭킹 여행기 (14)


조금 더 달려 길가의 집들이 보이기 시작할 때
다시 한 번 라디오 채널을 검색해 봤다.
지지직, 그 잡음과 트럭의 진동으로 아프리칸 그루브가 완성되는 것 같다.


아프리카에서 만난 라디오 소리

수염이 마구 자란다. 그 이유가 뽈레뽈레~ 느리게 가는 아프리카의 시간만은 아닐 것이다. 내 시선이 나 자신보다 세상으로 더 향해있기 때문일까? 그 만큼 나는 이 여행에 빠져들어 있다. 서울에서의 규칙적 일과에선 매일 아침 밥을 먹고, 씻으며 수염을 다듬는다. 하지만 이 곳에선 정해진 일상이란 없기에 길 위의 풀처럼 자란 수염이 지나치다 싶을 때 가끔 잘라주는 정도다. 무엇보다 거울이 거의 없다. 캠핑장의 샤워시설에 있는 도화지 한 장 크기의 거울을 제외하고는 개인용 거울이 전부다. 나는 선물용으로 챙겨간 시디에 얼굴을 가끔씩 비춰보곤 했다. 도시의 꾸며진 반짝거림 대신 나보다는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에 내가 스며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아프리카가 좋다.

턱밑에 까끌까끌하던 수염이 제법 자라 머리칼마냥 쓰다듬을 정도다. 다르에살렘에 도착하면 꼭 수염을 잘라야지 하는 마음으로 다시 길을 나선다. 여전히 멀고 지루한 도로 위, 문득 새벽에 작곡하며 녹음해 둔 멜로디를 들으려 휴대용 녹음기를 꺼냈다. 전원버튼을 누르고, 메뉴를 고르는데 Radio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어차피 라디오 주파수는 나라마다 크게 다르지 않으니 검색해봤다. 지지직.. 라디오 채널 자동검색이 멈출 때마다 호흡도 살짝 멈칫했다. 인적이 드문 길을 달리는 차 안이라 채널이 쉽게 잡히지 않고, 잡히더라도 잡음이 음악소리보다 더 컸다. 어쨋건 길을 달려 내 위치는 계속 바뀌고 있으니, 좀 쉬었다 다시 해보자.

조금 더 달려 간간히 길가의 집들이 보이기 시작 할 때 다시 한 번 라디오 채널을 검색해 봤다. 지지직.. 잡음이 컸지만 채널검색이 아까보다 자주 멈춘다. 앗! 말소리가 들린다. 아프리카 거리의 간판에서 자주 볼 수 있던 통신회사 광고다. 뉴스 같은 본 프로그램에선 세계적인 축구스타 이름이 열거되는걸 보니 축구 소식을 전하는 듯하다. 아프리카 여행기 첫 회에 부른 Jambo의 노래가사에 나오는 ‘하바리’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해서 물어봤더니 ‘소식’이라는 뜻이란다. 그만큼 전할 소식이 많은가보다. 드디어 말소리가 멈추고 노래가 들린다. 이어폰을 통해 들리는 그 노랫소리에 트럭의 엔진소리와 덜컹거림이 개입되긴 하지만 바로 그 잡음과 진동으로 아프리칸 그루브가 완성되는 것 같다. 지루한 트럭길 위 다시 한번 아프리카에 녹아든다.

여행지에서 라디오 듣고, 그런 일상의 소리 녹음하는 것은 참 좋은 추억을 남겨준다. 여행의 시작에는 그곳에 한 걸음 더 녹아들게 해주고, 여행이 지루해지는 어느 순간 다시 한 번 그곳에 빠져들게 해주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는 머릿속 어렴풋한 여행의 기억까지도 다 살아나게 해 준다.

탄자니아 FM

이 글을 연재하는 덕분에 매주 아프리카를 다시 느낀다. 오늘의 음악파일은 탄자니아에서 녹음해 온 라디오 녹음파일이다. 아프리카의 이국적인 정취를 잠시 느껴보기 바란다.


<탄자니아에서 녹음해온 라디오 소리 들으러 가기>


(원문출처 : 싸이월드 스페셜 뮤지션's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