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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중남미/아프리카

This is Africa. 이한철의 아프리카 트럭킹 여행기 (11)



안녕 세렝게티
이제 세렝게티를 떠날 시간이다. 
좁은 길과 캠프장을 제외하고는 
사람의 손이 일절 닿지 않는 곳.
자유롭게 나고 자라서 흙으로 돌아가는
대자연의 섭리를 동물원에서는 알 수 없다.



맹수들의 활동 가운데 잠들다

시간이 지날수록 의식은 또렷해지고, 소리는 분명해진다. 안개가 걷히듯 잠이 사라지면서 긴장과 공포가 몰려온다. 낮에 치타들이 임팔라 사냥하는 모습을 봤다. 사자들은 졸린 듯 쉬고만 있었는데, 케빈이 사자들은 밤에만 사냥을 하기 때문이라고 했던 말이 영화촬영에서 신을 알리는 슬레이트의 딱소리처럼 나를 놀래킨다. 녹음기의 버튼을 눌렀다. “그르르릉, 그르르릉” 가까이 들리는 사자소리에 대한 불안함과 그 소리를 선명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짜릿함이 미묘하게 공존한다. 

충분히 녹음됐다 싶을 즈음, 처음에는 찌릿하던 그 소리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급기야 내가 무슨 해를 입히지도 않았는데 사자가 텐트를 덮치기야 하겠냐는 안도감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낮의 피곤함 탓인지, 긴장이 풀린 마음 탓인지 다시 짧은 잠이 들었다. 

해가 뜬다. 푸르르름하게 해의 눈썹만 보이는 새벽중의 새벽이지만 텐트의 지퍼 열리는 소리가 부우우욱하며 곳곳에서 들린다. 지난밤의 그 사자소리를 들었는지, 혹시나 피해는 없었는지 걱정을 매단 목소리들, 그 수군거림에 나도 침낭을 빠져나와 그들 중 하나가 됐다. 걱정이 무사함으로 확인되자, 이내 무용담으로 바뀌었다. 그리 오래가진 않았지만, 우린 모두 무사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때쯤 누군가가 한마디 했다. “간밤에 아톰이 코코는 소리 들었어요?” 매우 규칙적인 그러면서 선명한 “그르르릉 그르르릉” 소리의 주인공. 아톰과 수사자를 안면인식 어플로 맞춰보면 몇 퍼센트나 나올까?


세렝게티를 떠나는 아침

세렝게티의 노출된 캠프장을 습격한 사자와 텐트 안에서 녹음기를 든 나는 수면상태가 고른지, 무호흡 증세는 보이지 않는지를 체크하는 수면클리닉 기록자로 역할이 바뀐다. 순간 딱하고 슬레이트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컷!” 

캠프장의 아침이다. 세면장에는 당연히 더운물 같은건 없다. 빗물을 모아놓은 탱크의 물 사정이 좋지 않아 샤워도 금지. 머리 B면은 그냥 두고, A면만 신경 쓰기로 한다. 세수만 가볍게 한다. 칫솔을 입에 물고 쪼그려 앉아 이른 아침의 부지런한 새들 그사이에 섞여 한동안 나도 지져겼다. 

가볍게 아침을 먹고 텐트를 수습한 뒤 다시 출발! 가장 먼저 만난 동물은 오리가족들. 사자, 치타, 코끼리, 기린 이런 동물들을 지나치게 자주 보니 오히려 이들이 더 희귀동물인 듯 놀랍고 반가웠다. 원숭이들도 만났다. 참 신기한 것이 다른 동물들은 넓은 초원에 사람이 낸 길을 대수롭지않게 땅의 일부분으로 여기며 건너다니는데, 원숭이들만 그 길을 길로써 이용한다.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임이 여기서 증명된다. 

이제 세렝게티를 떠날 시간이다. 좁은 길과 캠프장을 제외하고는 사람의 손이 일절 닿지 않는 곳. 자유롭게 나고 자라서 흙으로 돌아가는 대자연의 섭리를 동물원에서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우리는 이 넓은 지구를 수많은 생명으로부터 빌려 쓰다 못해 지나치게 망치고 있지 않나 가슴으로 느꼈다. 콘크리트 집안의 모든 생명들을 내가 제어하며 살 때와 대자연의 미물이 되어 그 어느 것 하나도 내 맘대로 건드려서는 안 될 것만 같은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이 여행이 감사했다. 익숙함과 편리함의 무지에서 깨어 나와 진심으로 세상과 만나는 기회. 그래서 여행과 경험이 우리 인생에서 필요한 것 아닐까?


모든 게 아름다워

숨 쉬는 나무들, 나부끼는 저 새들도 
헤엄치는 물고기들 모든 게 아름다워 

살아있는 모든 것들 그만의 이유가 있어 
사랑하는 사람들도 그중에 하나일 뿐이라네. 


이 곡을 만든 곳은 아프리카가 아닌 지난 7월 트리니다드 토바고 여행 중이었다. 2010년 1월 아프리카, 2월 뉴질랜드, 6월 일본 이와테산에 이어 트리니다드 토바고를 여행하면서 생명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느낀 공통된 마음을 곡으로 옮긴 것이다. 세렝게티와 처음 만난 순간, 떠날 때의 느낌이 바로 이 곡 같았다. 

참고로 이 곡은 공식적으로는 미발표곡이지만, 공연장 한정 판매중인 이한철 수공업 소품집 Vol. 4 ‘a sketches of trinidad & tobago’에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최근 공연에서도 빼놓지 않고 즐겨부르는 곡이다. 

<이한철이 보내온 음악 ''모든 게 아름다워'' 들으러 가기>

(원문출처 : 싸이월드 스페셜 뮤지션's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