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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기/고객 후기

[중국/운남성] 6박7일 여행후기 - 호도협 트레킹, 석두성 마을

* 이 여행후기는 트래블러스맵 '나시족과 함께 차마고도를 걷다' 중국 운남성 6박7일 여행 다녀오신 올리브 님이 2014년 8월에 올려주신 여행후기입니다.

* 여행기 원본 : 블로그 '올리브의 뜨락' http://blog.ohmynews.com/olives/522631 




"예전에 마방들이 말에 차를 싣고 다녔다는 차마고도를 걸었다. 

트레킹 기간은 고작 2박3일이었지만, 여운이 길게 남았다."




중국 호도협 차마고도를 걷다



[중국 운남성 호도협 트레킹 1] 

8월 15일, 자정에서 20분을 넘겨 귀가했다. 운이 좋았다. 김포공항역에서 5호선 전철을 탔고, 신길역에서 병점행 마지막 전철을 갈아탔고, 금정역에서는 안산행 마지막 전철을 탈 수 있었다. 뭐, 전철이 운행을 멈췄다면 택시를 타고 귀가할 수 있으니 큰일은 아니었을 거다. 교통비가 훨씬 더 많이 들었을 뿐일 테고. 

집 근처 편의점에서 남편은 신라면 2개를 샀다. 그 전에 내게 집에 라면이 있는지 묻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 배낭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남편은 냄비를 가스레인지 위에 얹었다. 라면을 다 끓인 남편은 냉장고 문을 열고 외쳤다. 

“김치가 없어.” 

김치가 없을 리가 있나. 아무튼 새벽 한 시가 임박한 시간에 둘은 마주앉아 매운맛 신라면을 후루룩거리면서 먹었다. 평소 같으면 절대로 라면을 먹을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라면을 먹으면서 비로소 6박7일 동안의 여행이 끝났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이렇듯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허겁지겁 라면을 먹어치운 건 14일 밤, 속하고진의 유일한 한국식당에서 신라면이 떨어져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라면을 호기롭게 주문했지만, 쥔아주머니는 “재료가 떨어졌다”는 대답을 했고, 대신 묵은지 김치찌개를 먹어야 했던 것이다. 

8월 9일부터 15일까지 6박7일 일정으로 중국 운남성 호도협 여행을 다녀왔다. 

이 기간에는 2박3일 일정의 호도협 트레킹이 포함되었다. 

예전에 마방들이 말에 차를 싣고 다녔다는 차마고도를 걸었다. 

트레킹 기간은 고작 2박3일이었지만, 여운이 길게 남았다.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는 길이 깎아지른 절벽을 따라 이어졌기 때문이다.

가끔은 얼굴을 돌리는 것조차 두려워서 곁눈질로 낭떠러지를 힐끔거려야 하는 길이었다. 

이 길에서 말목에 매달린 방울들이 내는 소리가 긴 여운을 남기면서 들려왔다. 

우리 일행의 짐을 실은 말들이 우리 앞이나 뒤에서 걸어가면서 내는 소리였다. 말을 부리는 이들은 나시족이었다. 

말방울 소리를 들으니 오래 전 이 길을 말 등에 차를 싣고 지났다는 상인들이 저절로 생각났고, 

흡사 그들이 된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옛 사람들은 차를 돈으로 바꾸고 생필품으로 바꾸면서 살아남기 위해 이 길을 걸었지만, 

오늘날 이 길을 걷는 이들은 대부분 나와 같은 관광객이다. 

제 돈 주고 위험천만한 길을 걷겠다고 나선 이들이다. 그것도 적지 않은 돈을 주고 말이다. 

이번 호도협 트레킹은 개인 여행이 아니었다. 공정여행을 하는 ‘트래블러스 맵’의 ‘나시족과 함께 차마고도를 걷다’ 프로그램이다.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 중국으로 트레킹을 떠났다. 

6박7일 일정 가운데 2박3일은 호도협 트레킹, 1박2일은 석두성 마을 방문, 2박3일은 리장고성과 속하고진 고성 둘러보기였다. 




석두성 마을



특히 석두성 마을은 우리나라로 치면 오지 마을로 13세기에 형성되었다. 

황톳빛 금사강이 흐르는 협곡의 중턱에 자리잡은 석두성 마을은 천연의 요새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이 마을에 들어가는 외줄기 길은 깎아지른 절벽을 따라 이어진다. 

출발하기 이틀 전인가? 운남성에서 지진이 일어났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여행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건가, 싶었지만 지진이 일어난 지역은 우리가 가는 호도협과 반대편이라는 게 여행 인솔자 ‘메아리’의 설명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운남성 한쪽에서는 지진이 일어나서 많은 인명피해가 났는데 그런 지역으로 여행을 간다는 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쩌랴. 비용은 이미 지불했고, 우리가 트레킹을 가지 않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속 편하게 가자. 이렇게 마음먹었고, 6박7일 동안 속은 편했다. 우리가 갔던 어느 지역에도 지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으므로. 

9일, 에어차이나를 타고 인천공항을 출발했다. 목적지는 중국 천진. 

국제선이지만 길고 가는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3개씩 좌석이 있는 작은 비행기였다. 서울에서 제주를 오가는 저가항공기와 같은 기종이렸다. 



쿤밍 공항


비행기는 30분쯤 늦게 출발했지만 도착예정시간보다 그리 늦지 않게 천진공항에 도착했다. 

현지 시간은 오후 1시 30분이었지만 내 손목시계의 시간은 오후 2시 30분이었다. 현지에 맞춰 시간을 조정했다. 

천진공항에서 우리는 곤명(쿤밍)으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탔다. 

짐을 찾고 다시 짐을 부치는 과정을 반복한 뒤 비행기를 탔다. 이번에도 에어차이나. 

비행기 출발시간은 오후 3시 45분이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출발이 1시간이나 지연됐다. 

쿤밍에서 여강(리장)으로 가는 야간열차를 탈 예정이었으니 만일 비행기 출발이 계속 지연된다면 야간열차를 놓칠 수도 있다는 게 메아리의 설명.

지난 7월에 메아리가 진행했던 같은 여정은 비행기의 출발지연이 이어지면서 끝내 열차를 놓쳤다나. 

메아리는 말했다. 야간열차를 탈 때까지 안심할 수 없다고. 

비행기 도착시간부터 열차 출발시간까지 시간의 여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넉넉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야간열차를 놓치지 않았다. 

쿤밍공항에서 리장역까지 가는 공항리무진을 탔고, 1시간 정도의 여유를 두고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야간열차 출발시간은 10시 30분이었다. 쿤밍공항에서 리장역까지는 리무진 버스로 1시간가량 걸린다. 

리장역 앞이 어찌나 차량들로 혼잡하던지 역 앞을 돌아서 리무진버스정류장까지 가는데 걸린 시간이 10여 분은 족히 걸린 것 같다. 



쿤밍역


94년에 처음 중국에 갔을 때 장춘역에서 집안까지 가는 야간열차를 탄 적이 있다. 

3층 침대였는데, 낡았을 뿐만 아니라 차량 한 칸이 전부 오픈된 형태였다. 

중국인들과 섞여서 탔는데 어찌나 시끄럽고 정신이 없던지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탄 야간열차는 4인 1실의 침대칸이었다.

 2층 침대 2개가 마주보는 형태로 딱 4명만 잘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이었다. 시설은 기대 이상이었다. 

사람이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상을 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데, 내가 그랬던 것. 

비교적 근래에 제조된 침대차라는 게 메아리의 설명. 

구형은 공간이 좀 더 넓은데 신형은 더 많은 승객을 태우려고 공간이 좁아졌다는 거다. 

그래도 가운데 작은 탁자가 있고, 침대 아래로 트렁크를 밀어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이번 호도협 트레킹 참여자는 여행 인솔자 메아리를 포함해서 전부 16명. 

처음에는 서먹했지만 돌아올 때 즈음에는 아주 친밀해졌다. 

이 정도 인원은 화기애애하게 여행하기 적당하다. 



리장역에서 야간열차를 탔다. 중국은 어딜 가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정말 인구가 많다.


열차에 올라타서 자리를 잡고 짐을 내려놓고 침대에 걸터앉으니 열차가 출발한다. 

야간열차를 놓치지 않았으니 예정대로 내일 오전에는 리장역에 도착하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도착 예정시간은 오전 7시 30분. 9시간이 꼬박 걸린단다. 

기차를 타면 중국 대륙이 정말 넓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야간열차를 타고 밤새도록 가는 여행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94년에 야간열차를 타고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해바라기 밭을 지나면서 

중국이 대국(大國)이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이번에는 4인1실 침대차에서 커튼을 드리운 채 잠을 청했다. 창밖에는 어둠이 빼곡하게 들어차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끔 기차는 심하게 덜컹거려 선잠을 깨웠고, 가끔 오래 정차하기도 했다. 

우리와 같은 침대칸을 사용한 일행 역시 부부였다. 우리와 연배가 비슷해 보였다. 서먹한 기운을 털어낸 것은 컵라면이었다. 

중국에서는 어딜 가나 뜨거운 물은 늘 준비되어 있다. 차 문화가 발달한 덕분이다. 

기차 안에 뜨거운 물이 있는 것은 당연했고, 뜨거운 물을 담을 수 있는 포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한국을 떠나온 지 만 하루가 안 되었건만 야간열차 안에서 먹는 컵라면의 맛은 아주 특별했다. 

컵라면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인 줄 예전에 미처 몰랐다. 국물까지 말끔히 비웠다. 

가볍게 세수와 양치질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여자들은 1층에, 남자들은 허리를 세우고 앉을 수 없을 정도로 천정이 낮은 2층 침대에서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