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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국내

지리산길, 세동마을-지난 가을


1.세동마을 탐방기

 

8시즈음, 동서울 터미널에서 지리산행 버스를 타고, 12시 반경 인월에서 내렸다.

인월에서 일행을 만나 차로 경상도 함양의 세동마을로 향했다. 지리산길 홈스테이 사업으로 마을 조사를 하기 위해 가는 길이다. 지리산에 들를 때 가끔 지나가던 길들을 다시 지난다.

마을에 머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기대와 함께, 아는 이들 하나 없는 곳 이란 생각에 외로움, 두려움이 좀 일었다.

세동마을은 지리산길에서 벽송사너머 있다.

지금은 여러문제로 길이 끊긴 곳이다. 간혹 길을 잃고 마을에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벽송사는 빨치산의 야전병원으로 사용돼 전쟁중 전소되기도 했다. 격전지였던 벽송사를 역사적으로 한번 가보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지만, 길이 아름다워 우연히 이곳을 들렀던 이들도 다시 찾는다고 한다.  

 

강길 건너 고즈넉한 마을.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마을에는 아직 다 따지 않은 호두와 감이 주렁주렁 달렸다. 아직 추수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 추수철이라 다들 바쁘다.

 

이장님 댁은 세동마을에서 좀 더 올라가  소나무가 많은 고양터에 살고있다. 한우를 키우고  황토민박집을 짓고 있다. 지리산 끝자락인 중봉, 하봉이 보이고, 저녁노을과 밤하늘의 별을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는 이곳은 동료들에 의하면 곧 대박날 것이라고 한다.  이장님댁에 가든처럼 자란 소나무들을 보면서 의아해했는데  심은 것은 아니고, 소나무 씨가 싹이 나서 자라고 있는 것을 가꾼 것이라고 한다. 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자랐으면 얼마나 멋질까 생각해본다. 참 사람의 상상력과 성실함이 좀 쓸데 없다는 생각을 더 해본다. 

 

 

 

 

 

 

 

 

 

이장님댁을 거쳐 세동마을쪽으로 오다보면 단군성터와 굿당 등의 흔적이 있다. 예전부터 기운이 쎘나?하고 의심해봤다. 근데 사실 동네 주민이 생계를 위해 문수사 근처에서 굿당 민박을 하고 있었다.  김치와 쌀은 주실수 있다하니 담력이 괜찮은 분들은 한번 묵을만 하다. 집 뒷편에는 문수봉이 보이고 여름에는 계곡에 물도 많다고 한다. 집 위로 이어진 길을 따라가면 옛흔적을 찾기는 어렵지만, 빨치산들의 기지였던 문수사가 나온다.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문수사 앞에서 빨치산들이 탈곡을 했었다고 한다. 

 

원래 이장님댁에서 쭉 내려오던 길로 다시 가면  커다랗고 검은 바윗돌 사이로 잘자란 소나무들이 보인다. 이 곳에 유명한 소나무쉼터가 있다. 3-4백년 살아온 마을의 소나무들이 정말 멋지다.  엄천강을 내려보기 좋은 곳에 있다.  워낙 이지역 소나무가 유명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전보다 많이 줄었다고 한다. 전후 부산등에 판자촌이 생겼는데 그때 소나무들이 많이 베어나갔다고 한다.  

 

쉼터를 지나 내려오면  뭔가 좀 어색하고 독특한 2층가게가 나타난다. 대구댁이라는 간판을 단. 음악과 산을 좋아하는 노부부가 귀촌한것이다.  산을 좋아해서 20여년전에 집을 사놨다가 들어온지 8년정도 됐다고 한다. 시원한 무김치가 일품이다. 직접뜯은 나물과 매운 고추장넣고 먹은 비빔밥은 꽤 유명하다. 라면과 국수도 팔고, 막걸리도 팔아서 세동마을을 찾는 이들에겐 입소문을 탄 곳이다. 마을 마실다니는 닭2마리와 삘이라는 별난 개가 있다. 순하고 사람 잘 따르고, 산책길을 안내해주기도 했다. 신통방통, 풀을 너무 좋아한다.  몇일 있다보니 고 작은 개가 동네 무서운 개들은 다 후리고? 다닌다.

 

세동마을도 다랑이 논처럼 작은 논이 많다. 워낙 돌이 많은 지역인데다 농사외에 벌이가 마땅치 않아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산을 개간하고 살았다고 한다.  산촌에 돌도 많고 볕도 많은 편이 아니라 먹고 살기 힘들었지만. 전에는 100여호가 살았다고 한다. 전쟁때는 빨치산들이 해만 너머가면 출몰해 식량을 가져가고 낮이 되면 경찰들이 올라와 누가 협조했는지 폭행을 일삼았다고 한다. 군인들이 빨치산 소탕을 목적으로 마을에 불도 여러번 놨다고 한다. 강제이주를 가서도 농사외에는 먹고살 길이 없기 때문에 마을에 들어와 몰래 농사를 짓고 해지기 전에 떠났다고 한다. 마을에는 그 당시  죽은 젊은이들도 꽤 된다. 척박한 곳에 남은 삶이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이제 노년이 된 그들은 성실함으로 그 설움을 딛고 땅에 뿌리박히 듯 사는 것 같다. 겨울이 되면 마을 분들이 마을회관에 모여서 함께 식사를 하고  논다고 한다. 겨울에 방문하면 어른들에게 이런 이야기 듣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내가 떠나는 날이 장날이라 송아지를 팔러 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됐다. 보통 어미소와 송아지를 분리한다고 하는데 작은 집에선 그럴 공간이 없어서 소 6마리를 함께  키우고 있었다. 힘쎈 젊은이까지 붙어서 남성 3명이 송아지 한마리를 끌어내려하는데 잘 안됐다. 우리에서 끌어내 간신히 트럭까지 갔다가 이 아이가 탈출한 것이다. 다시 지 집으로 들어갔고 남정네들은 씩씩거리며  그 송아지를 다시 잡으러 갔다.  이별을 감지한 소 우리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큰 눈을 끔뻑끔뻑하던 소에 눈에서도 눈물이 쏟아질것 같고, 사람들을 원망하듯이 울고 있다. 참 몹쓸짓 많이 하고 산다. 고기 끊어야겠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잠시 오른다. 

 

 

총무님댁에서 먹은 경상도 특유의 제피가 들어간 김치와, 맑은 호박잎국과 시래기국, 쪄서 무친 풋고추는 참 일품이다. 새로 집을 고쳐서 민박을 해보려는 집들이 많다. 마을에는 여전히 나무를 때는 재래식 아궁이를 하나씩은 갖고 있고, 화장실도 수세식으로 정비하고 있다. 그치만 혼자사는 할머니들 집에 머물면서 소박한 밥상과 옛시집살이 이야기, 마을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쏠쏠할 듯하다. 인터넷도 안되고 기계 다루는 것에 능숙하지 않으면 텔레비젼을 보기도 쉽지않다.  

 

 

 

 

 

 

 

 잊을뻔했다. 마을입구에서 지리산 흑돼지를 방목해서 요리도 해주는 음식점이있다. 포도밭도 갖고있는 아저씨는 민박집을 계속 늘릴 생각이라고 한다. 우연히 지리산댐 이야기가 나왔는데 구지 반대를 안한다고 한다. 보상받고 나가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세동마을 주민중에서도 정부가 하려고 하면 반대를 해도 꼭 된다는 경험치를 갖고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있다. 댐이 건설되면 이 마을도 영향을 받게 될텐데 아직 걱정들이 많지는 않다.  지리산댐에 대해서 좀 알아보고 지리산길 걷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홍보해서 주민들을 자극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거꾸로 된것 같아!! 

 

   

 

 

*현재 이장님이 바뀌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