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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중남미/아프리카

This is Africa. 이한철의 아프리카 트럭킹 여행기 (21) 말라위에 기타를 남겨 두지 못한 이유


말라위에 기타를 남겨 두지 못한 이유

선한 눈매와 부드러운 목소리
내 기타에 관심을 보인 한 아프리카 청년.
가지고 있던 피크와 기타 줄만 선물하고
돌아오는 트럭 안.
그가 자꾸 눈앞에 아른거렸다..



루스빌로에서 만난 한국식 밥상

루스빌로에 계신 한국인 선교사님 집을 방문했다. 멀리서 온 우리들을 위해 손수 식사준비를 해주신 덕분으로 오랜만에 한국식 밥상을 마주 할 수 있었다. 식사 중 선교사님이 말라위에서의 생활과 현지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셨다. 지금 같은 우기에는 농작물의 성장속도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했다. 한 번에 엄청난 양의 비가 오지만, 잠시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 뜨거운 해가 비치는 날씨다. 풍부한 일조량과 강수량으로 직접 재배한 고추를 선교사님이 건넨다. 끝에 된장을 살짝 묻혀 베어 물었더니 아삭하며 입안에 매콤달콤한 기운이 퍼진다.

낙후된 이곳에서 농업기술을 전파하고 있는 선교사님, 이곳의 문화가 낯설고 하루하루가 제법 고되지만 그로 인해 이 곳 사람들의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지는 것에 행복해하시는 모습이었다. 건기 때의 아프리카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네 보릿고개 그 이상으로 먹는 문제에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있단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기타를 가지고 싶어하던 말라위 청년들

한 청년을 만났다. 이웃 동네에서 왔다는 그는 자신을 뮤지션이라고 소개했다. 튕기던 기타를 그에게 건넸더니 차분하게 기타를 끌어안고 낮게 읊조리듯 노래하는 모습이 아프리카보다 홍대앞 카페에서 자주 보던 그것이다. 미리 알고 왔던, 지금까지의 여행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던 것(1.원시적 리듬이 강조된 아프리칸 비트의 노래 2.서구열강의 식민 지배를 거치면서 세련된 팝음악과 결합된 노래 3.여행지에서 만난 아프리카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던 레게음악)과는 다른 노래와 모습. 일순간 아프리카 음악에 대한 내 이해의 양파껍질이 또 한 꺼풀 벗겨진다. ‘아프리카에서도 이런 서정적인 음악을 만날 수 있구나.’ 당구대가 설치되어 있는 놀이공간의 시끌벅적함 속에서 시선을 내린 채 마음의 방향을 자기 안으로 향한 채 노래하는 그를 보고 듣다가 어느새 나도 뜻 모를 그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그는 내 기타에 관심을 보였다. 어느 나라에서 만들었는지? 잭을 꽂아 오디오에 연결하면 소리가 나는지? 얼마나 주고 샀는지? 그 관심의 표현 끝에는 선물 받고 싶어 하는 뉘앙스가 선명했다. 떠나오기 전에는 아프리카 젊은이들이 이토록 음악을, 기타를 사랑할 줄 몰랐었다. 한국의 한 기타브랜드가 나를 위해 만들어준 세상에 하나뿐인 기타라서 조금 망설여졌다. 다른 청년들도 마찬가지였다. 저녁 무렵, 여행자들과 루스빌로 사람들의 친목을 위한 공연에서 만난 뮤지션들도 기타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6줄이 끼워져 있어야 하는 어쿠스틱 기타에 끊어지지 않고 살아남은 2줄만으로 연주했다. 그나마도 녹이 쓸어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줘야하나 말아야하나, 누구에게 줘야하나 고민하느라 공연도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또 항상 그렇지만 고민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결국 내 기타는 다시 트럭으로 돌아왔다. 가지고 있던 피크와 기타 줄만 선물하고 작별하고 돌아오는 트럭 안. 선한 눈매와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한 아프리카 청년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렸다. 이 후 며칠 남지 않은 여행에서 그 순간이 마음에 계속 아쉬움으로 남았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고, 그 순간을 놓치면 할 수 없다는 것을 아프리카에서 되새긴다. 그 무엇이 물건을 건네는 것일 수도, 상처 입힌 마음에 대한 사과일 수도, 아니면 그냥 가벼운 차 한 잔 일 수도 있겠다. 가족이나 친구와의 약속을 깨고 갑자기 찾아온 일거리에 매달린 기억이 그 순간 떠오르는 건 분명 무엇인가를 놓쳤던 순간이었기 때문일 거다. ‘다음’이라는건 어쩌면 없을지도 모른다. 

이 글은 2010년 12월 30일에 쓰이고 있다. 운 좋게도 다음 달 또 아프리카로 떠나게 되었다. 말라위 가롱가에 있는 ‘루스빌로’에도 들른다. 이번에는 그 청년들에게 음악을 나눠줄 수 있겠다. 요즘 내게 기타를 협찬해주고 있는 기타브랜드에 소개했더니 흔쾌히 기타 10대와 기타 줄을 기부해줬다. 이번 여행에서는 말라위의 노래하는 음유시인과 함께 연주하고 노래하고 싶다. 


노래파일에 대한 설명

무어라고 제목을 말해줬는데 잊어버렸다. 그것도 이번 여행에서 다시 물어보면 알 수 있겠다. 


<이한철이 말라위에서 만난 청년과 함께 부른 노래>

'음유시인과 함께 한 노래' 들으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