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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중남미/아프리카

This is Africa. 이한철의 아프리카 트럭킹 여행기 (20) 말라위의 아이들


중앙아프리카의 빈국, 말라위의 가룽가에 도착했다.
에이즈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천진한 눈망울들이
미리 들은 얘기들로 지나치게 무거워져 있는 내 마음을
달뜨게 한다.

가롱가에서 만난 천진난만한 아이들

말라위의 가롱가에 도착했다. 지금까지의 여행이 아프리카를 내 안에 들여놓는 순간들이었다면, 이곳에서는 내가 가진 것들을 아프리카 사람들과 나누는 시간이 될 것이다. 중앙아프리카의 빈국 말라위는 평균 연령이 31세라고 했다. 지금의 내 나이에 살아있을 가능성이 절반 이하라는 얘기다. 의도되지 않은 침이 목구멍을 지난다. 노령화 시대를 준비하는 우리와는 많이 다른 모습의 이곳은 에이즈로 고통 받는 수많은 젊음이 있고, 그들이 남기고 간 어린아이들이 외로움과 가난에 힘들어 하고 있다. 부모 없는 아이들은 인구의 10%에 육박하는 100만 명이란다. 질병과 가난에 고통 받는 나라 말라위, 국경을 넘을 때 비자피가 무려 100달러나 했지만 불만스럽지 않았다.

도착한 곳은 가롱가 지역 빈민촌에 있는 가톨릭 공동체 ‘루스빌로’다. 에이즈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에게 주거와 교육을 제공하고 있는 이 단체에 한국인 선교사 부부가 계신 것이 인연이 되어 미리 연락을 주고받아 오게 되었다. 차가 멈추자 딱딱한 의자에 붙이고 있던 엉덩이를 떼 트럭 바깥으로 튀어나갔다. 차를 둘러싸고 있던 아이들이 신기한 듯 나를, 카메라를, 기타를 쳐다본다. 천진한 눈망울들이 미리 들은 얘기들로 지나치게 무거워져 있는 내 마음을 달뜨게 한다. 그 선하고 아름다운 눈망울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었다. 사진을 찍고 뷰파인더를 보여주면 그 안에 비친 자기모습이 신기한지 까르르 웃는다. 다른 아이들도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찍은 아이들이 또 찍어달라고 하기도 하고, 저 먼발치에서 노는 친구들을 데려와 찍어주라 하기도 한다. 갓난아기인 동생을 업고 있는 아이는 자기보다 동생을 찍어 달라 했다. 매번 다른 표정과 웃음소리를 만날 수 있는 이 단순한 반복이 좋다.

아이들에게서 멀어져 루스빌로로 향했다. 가는 길에 공차는 아이들을 만났다. 아프리카 사람 특유의 빠르고 유연한 몸놀림으로 공을 드리블 한다. 잠시 참견해 볼까싶어 공을 가진 아이에게로 덤벼봤는데, 공이 내 발에 스칠 겨를도 없이 획하고 내 수비망을 빠져나가 버린다. 한참을 쫓아서 겨우 공을 빼앗았는데 평소의 축구공과 탄성이 다르다. 아이들의 공은 비닐봉지를 말고 덧대어서 만든 비닐뭉치였다. 중학교 다닐 즈음 교실 복도에서 우유팩으로 야구하던 때가 떠올랐다. 제한된 상황 그 안에서 놀이를 찾던 시절, 가질 수 없는 것들을 내가 가진 것들로 대체하고 그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던 때를 떠올리면 지금의 내 생활은 퍽 기름지다. 이 아이들 중에 미래의 드록바, 에시앙, 아데바요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들을 위한 축구공이 우리트럭에 실려 있다.

떠나기 전 여행학교를 통해 많은 분들이 옷, 신발, 학용품, 축구공 등을 기증해 주었다. 그 짐들로 트럭의 짐칸이 넘쳐 배낭을 의자에 놓아야 했었지만 아무도 불편해 하지 않았다. 또, 탄자니아 아루샤에서 비를 만났을 때 우리가 가장 걱정했던 것도 트럭 짐칸에 둔 기증품들이었다. 여행지에 마음으로 다가가는 일, 여행지에서 무언가 나누고 올 수 있다는 것에 모두들 행복해 했다. 나는 티셔츠를 챙겨갔다. 뜻을 같이하는 드레스덴에서 흔쾌히 티셔츠 수 십장을 보태줘서 말라위의 사람들과 나눌 수 있었다.

초록과 파랑사이

루스빌로 앞마당에서 하늘색 교복을 차려입은 중학생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초저녁에 마을사람들과 여행자들이 함께 작은 공연을 하기로 했는데, 함께 노래하면 좋을 것 같아서 미리 연습을 하게 된 것이다. 가벼운 치체화(말라위에서 쓰는 언어) 인사말을 배우기도 하고, 주거니 받거니 노래도 서로 배워봤다. 여행 중에 만든 ‘초록과 파랑사이’의 메인 테마 부분도 가삿말 없이 ‘나나나’로 함께 불러봤다. 여행 다녀온 지 11개월이 지나고 있지만, 지금 들어도 그 때의 기분으로 슬며시 빠져든다. 입가엔 미소가, 눈가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