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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중남미/아프리카

This is Africa. 이한철의 아프리카 트럭킹 여행기 (19) 농장에서의 하룻밤


낮은 지붕의 움집처럼 만들어진 로지.
길 테두리를 따라 놓인 돌들의 소박한 모습은
마치 동화 속 마을에 온 듯 마음이 어려졌다.
문득 여기서 음반작업을 하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동화 속 마을에 온 듯한 소박함

말라위로 가는 길에 탄자니아 이링가의 캠핑장에서 하루를 보냈다. Kisolanza Farm 이라는 이 곳, 정말 인상적이다. 실제로 물소, 양, 야채, 담배, 꽃을 재배하는 농장인데, 이름에 걸맞게 캠핑장을 농장처럼 꾸민 것과 석유에너지의 사용을 최소화한 친환경적인 운영방법이 마음에 들었다. 낮은 지붕의 움집처럼 만들어진 로지, 길의 테두리를 따라 놓인 돌들의 소박한 모습은 마치 동화 속 마을 온 듯 마음이 어려졌다. 밤이 되자 지대가 높아서인지 아프리카인데도 제법 쌀쌀했는데, 장작으로 불을 지펴 만든 온수로 샤워를 할 수 있었다. 물에 닿는 내 몸도 따뜻했지만,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는 두 눈과 마음에도 따스한 온기가 전해졌다.

문득 이런 곳에서 음반작업을 하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그 어떤 인공의 소리도 없는 이곳에서 자연을 느끼며, 연주하고 노래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짐풀기를, 샤워를, 빨래를 하는 내내 머릿속으로 그 생각뿐이었다. 일과를 마치고는 안내데스크로 가서 브로슈어도 챙기고, 어떻게 예약하는지, 가격은 얼마인지 꼼꼼히 알아봤다. 슬며시 반달눈을 한 채, 밴드 멤버들과 악기, 녹음장비를 챙겨와 짐을 풀고 나른하게 보내게 될 시간들을 떠올려봤다. 휴우~ 양 어깨가 내려지면서 여유와 안락이 몸에 스며든다. 도시의 레코딩 스튜디오가 좋은 장비와 우수한 스텝들의 도움을 제공해 주겠지만, 뮤지션들이 여유와 한가로움을 즐기며 녹음할 수 있는 이곳에서의 레코딩이 이 순간 선호되는 이유는 바로 감성의 부분이다. 수치로 매겨질 수 없는, 감성이 살아 있는 음악 말이다.

그러던 사이 전기사용 시간이 종료된다. 자체 발전으로 소량의 전기를 생산해서 냉장고 정도를 사용하는 것인데, 그 마저도 시간을 두고 사용한다. '와우~와우~와우~왕왕왕왕' 예능프로그램에서 어색한 상황이 연출되었을 때 자주 들려지는 효과음이 귓가에서 재생된다. 나의 상상은 전기사용 부분에서 커다란 벽 앞에 놓여진다. 요즘의 악기와 녹음장비는 전기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레코더로 사용되는 컴퓨터, 컨버터, 프리앰프, 건반악기, 심지어는 마이크에도 별도의 전원을 공급해줘야 한다. 자연에 어우러져 연주할 음악은 자연의 악기로 연주해야 한다. 또, 그 이전에 자연의 감성에 녹아든 노래를 만들어야 한다. 아쉽지만 이곳에서의 레코딩은 자연에 더 가깝게 다가가는 고민과 그러한 노래를 만드는 노력 그 이후로 미루어 놓는다. 요즘 녹색성장 이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데, 과연 녹색과 성장이 같은 그릇에 담겨 질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여기서의 녹색이 성장이라는 명분아래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행위를 감싸는 포장지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마치 온갖 인공의 음악재료로 이 곳 Kisolanza Farm에서 녹음하겠다는 나의 어설픈 생각과 다르지 않다.

멀리 별동별이 떨어진다. 고개 들어 밤하늘을 보니 별들이 동화 속 주근깨 소녀의 얼굴마냥 하늘 가득 들어차 있다. 그날 저녁식사는 미술선생님인 큐가 만든 주먹밥이었다. 여행 시작한지 보름이 지나는 지금쯤 만나는 고향의 맛이란.. 각자 아껴 먹던 김, 고추장, 깻잎, 김치를 내놓고, 큐가 맨손으로 그것들을 밥에 버무려 한사람씩 입에 넣어준다. 고추장이 모자랐는지 간이 밍밍했는데 모두가 먹기에는 그 간이 맞았다. 약간 모자란 고추장은 빠알갛게 뜨거워진 마음으로 충분했다.

똑딱 시계추 소리

미완성의 노래이다. 여행 중에 문득 녹음버튼을 누르고 작곡을 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미리 생각해둔 의도 없이 그냥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기듯 곡을 쓰는 방식. 게다가 이 녹음물은 보이스레코더에 기록용으로 녹음된 것이어서 음질이 좋지는 않다. 이것이 Kisolanza Farm에서 가능한 레코딩 방식이다. 상품으로의 가치는 없지만 불편을 넘어선 그 순간의 감성을 공유하고자 들려드린다.

더불어 이번 주는 크리스마스다. 생태적 음악활동을 몸소 실천하는 하와이 출신의 뮤지션 잭 존슨의 캐롤을 함께 감상하면 좋을 것 같다. 그는 태양열로 운영되는 자신의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여름사나이가 마음을 담아 들려주는 캐롤이라 그런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따뜻하다. Jack Johnson의 'Rudolph The Red Nosed Reindeer'를 함께 들어보자.


Kisolanza Farm에서 레코딩한 노래 [똑딱 시계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