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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중남미/아프리카

This is Africa. 이한철의 아프리카 트럭킹 여행기 (5) '젖은 마음 마를거야'


지난 1월, 트래블러스맵은 <아프리카 여행학교> 라는 트럭 투어를 진행했습니다.
뮤지션 이한철씨와 하림이 동행한, 음악이 흐르는 아프리카 트럭킹 여행.
이한철 씨의 음악과 글로 소개합니다.

 

캠핑장의 날이 밝아오다

지대가 높은 카페쪽으로 이동해서 해가 뜨는 것을 지켜봤다. 해는 어찌나 더디게 뜨고, 비는 또 왜 그리 멈추지 않는지.. 시계바늘이 무겁게 초당 6도씩 방향을 옮기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두워서 더 공포스러웠던 물먹은 밤이 사라지고 푸르스름하게, 아프리카의 나무들과 여행자들이 시야를 조금씩 채워갔다. 모두들 원래의 색은 무시된 채 흙탕물 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고개 숙여보니 나에게도 역시 엄청난 얼룩이 티셔츠와 반바지에 남아 있었다.

제법 날이 밝으니 캠핑장은 더 분주해진다. 다들 젖은 소지품들을 꺼내 정리한다. 비와 해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던 이들이 각자의 일로 에너지의 방향을 바꾸자 토라지듯 비가 물러간다. 그 빈자리를 밝은 빛과 따스한 열기가 대신한다. 누군가가 캠핑장의 아래쪽에 물이 빠지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 곳의 트럭에 젖은 짐을 남겨두었던 나는 얼른 그 쪽으로 내려가봤다. 슬리퍼의 낮은 경계를 무너뜨리고 발가락 사이로 진흙이 파고든다. 질척한 걸음을 옮기니 먼발치에 트럭이 보인다. 가슴팍까지 차 있던 물이 어느새 종아리높이 정도로 빠져있다. 짧은 시간 엄청난 양의 비가 와서 물이 찬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열악한 배수시설 때문이라는 걸 물 빠지는 속도로 알 수 있었다.


 

젖은 마음이 서서히 마르다

잠시 후 물이 빠진 캠핑장을 내려가 트럭에 다시 올랐다. 그 새 데워진 트럭 안에서 훅~하고 덜 마른 옷가지들의 꿉꿉한 냄새가 열기를 더한 채 밀려나왔다. 핸드폰과 디지털 카메라는 체념한 채 배터리만 분리해 주머니에 넣고, 배낭과 기타를 들고 카페로 되돌아왔다. 카페 부근은 무슨 일일장이라도 선 양 갖가지 물품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나 역시 젖은 침낭(아프리카의 일교차가 심하다 해서 겨울용 오리털 침낭을 가지고 갔는데 아무리 말려도 그 젖은 오리털에서 나는 냄새는 없앨 수 없어 돌아오는 날까지 함께했다.), 옷가지, 책 등을 카페 앞 난간에 널었다. 그리고 마른 옷을 갈아입고 입었던 옷을 세면대로 들고가 빨았는데 흙탕물 자국이 잘 없어지지 않았다. 얼룩진 티셔츠는 나름 빈티지 느낌이 나서 입을만 했고, 속옷은 버리기도 했다. 카고 반바지는 열 번도 더 헹궜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흙탕물이 나와 포기하고, 그냥 들고 나와 말렸다.

제법 추스렸나 싶을 때 저 멀리 지난밤 기우제 곡을 부른 사내가 나타났다. 하림이다. 설마 그 노래 때문에? 하림의 텐트는 피해가 없다했다. 세렝게티를 다녀온 하림의 팀은 비 피해에 대한 대처에도 훌륭한 팀웍을 발휘했다. 함께 온 촬영팀은 드라마틱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다큐멘터리 촬영 중이었고, 우리는.. 그리고 나는.. 그냥 지켜봤다. 하림이 내 손에 들린 속옷 버릴거면 자기 달라고 했다. 기타 닦는데 쓰려한다며.. 그 말이 귀에 뾰족하게 꽂혀 들렸지만 천진한 그의 표정을 보면서 살짝 과장되게 성내며 웃어 넘겼다. 조금 지나니 피식 웃음이 한 번 더 나왔다.
내 친구의 어이없는 그 말이 긴장하고 곤두서 있던 내 촉을 좀 무디게 만들어 줬다. 솟아 있는 어깨를 내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우리 팀도 이제 활기를 띤다. 따뜻한 차를 나누고, 우스갯소리로 서로의 기분을 누그러뜨리고 있다. 여행학교의 자발적 수업의 하나로 여행자 한 사람이 준비한 '이태리산 가죽조각으로 머리끈 만들기' 수업이 진행된다. 각자 만든 머리끈으로 서로의 머리를 우스꽝스레 장식하고 콘테스트를 했다. 그러는 사이 해는 조금 더 높이 떴고 마음은 좀 더 가벼워졌다. 그렇게 젖은 마음은 서서히 마르고 있었다.



하쿠나 마타타 (Hakuna Matata) 작사,곡 이한철

한밤중에 아프리카 비가 오네요.
메마른 내 마음은 타들어가네요.
나는, 우린 너무 축축하지만
젖은 맘 마를거야. 하쿠나 마타타.

저 멀리 푸르스름한 해가 뜨네요
나 하나부터 말리는 일 쉽지 않네요.
나는, 우린 너무 뾰족하지만
머리 위 태양 비출거야. 하쿠나 마타타


젖은 마음 말리던 아루샤의 캠핑장에서 누군가 흥얼거렸다. "괜찮아~ 잘될거야~." 탄자니아의 스와힐리어로 하면 하쿠나 마타타다. 하쿠나는 No, 마타타는 Problem. 문제없어, 잘될거야라는 의미로 아프리카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이라고 한다.


<이한철이 보내온 음악 ''하쿠나마타타'' 들으러 가기>

(원문출처 : 싸이월드 스페셜 뮤지션's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