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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중남미/아프리카

This is Africa. 이한철의 아프리카 여행기 (16)


넓은 세계의 무한한 시간 속,

그 사이를 아주 잠깐 채우는 사람의 시작과 끝.

나의 끝이 또 누군가에게는 시작이기도 하다. 

내가 가진 몹쓸 생각들을 내려놓는다. 

지금 내 눈앞의 바다는 인도양이다. 

평화로운 인도양 바다

먼 파도소리에 잠을 깼다. 텐트 밑 모래바닥에 등을 대고 규칙적인 그 소리에 맞춰 다시 눈을 감는다. 지난밤 물기 먹은 채 발바닥에 붙어 있던 모래알갱이들이 바스락하고 떨어져 나간다. 어깨가 욱신, 파도타기를 심하게 했나보다. 싫지 않은 나른함과 피로. 다시 잠에 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깬다. 빼꼼히 열린 틈사이로 하늘이 보이고, 바다가 보인다.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간밤의 성난 바람과 높은 파도는 어딜 갔는지 평화로운 아침의 바다가 시야를 채운다. 다시 한 번 내가 넓은 세상의 작은 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두움으로 세상을 명확하고, 멀리 볼 수 없을 때의 나는 무모하고, 따지듯 세상에 덤볐었다. 하지만 대자연은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넓은 세계의 무한한 시간 속, 그 사이를 아주 잠깐 채우는 사람의 시작과 끝. 나의 끝이 또 누군가에게는 시작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연을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두어야 한다. 아프리카도 대한민국도. 옅은 푸른빛의 바다 위에 떠오른 아침, 내가 가진 몹쓸 생각들을 내려놓는다. 지금 내 눈앞의 바다는 인도양이다.

잔지바르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며

아침을 먹고, 다시 짐을 챙겨 부둣가로 떠난다. 아프리카와 아랍의 문화가 만나는 잔지바르 섬으로 간다. 부둣가 근처는 상인들로 넘쳐난다. 잠시라도 길에 서 있으면 말을 걸어 물건을 사라한다. 음료수, 땅콩 같은 군것질거리부터 제법 부피가 나가는 기념품까지. 잔지바르행 페리 티켓을 대신 끊어주겠다며 따라오라 하는 이도 있었다. 우리 일행은 미리 예약한 티켓이 있으므로 패스. 주변 산책을 마치고, 승선 대기실로 들어왔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몸이 놀란다. 이 얼마만인가. 현대식 인테리어에 가벼운 스낵류까지 무제한 제공되는 이곳은 좀 더 비싼 뱃삯을 내는 외국인 승객들을 위한 대기실이다. 탑승시간까지는 한 시간 가량 남았지만, 이 정도 편의시설이면 더 오래 있는 것도 문제없겠다. 

그런 마음이 씨가 됐는지 배가 연착된다. 한 시간, 두 시간.. 승객을 밀어내지 못하는 대기실은 쾌적함을 조금씩 잃은 채 사람들을 채워갔다. 케빈이 전하는 얘기로는 우리가 탈 페리에 문제가 생겨 잔지바르 쪽에서 출발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알고 보니 우리보다 3일 먼저 잔지바르에 들어간 하림의 일행을 태우고 나와야 할 배였다. 아까의 시원했던 에어컨 바람이 지나친 냉기로 피부를 파고든다. 땀 닦던 수건을 스카프처럼 목에 둘렀더니 좀 낫다. 기타를 꺼냈다. 시간을 보내기에 기타만한 것이 없다. 어젯밤, 오늘 아침에 만든 노래를 불러본다. 파도타기, 인도양 아침.

옆에 앉아 있던 외국인 여행객이 힐끔힐끔 쳐다봤다. 가뜩이나 연착되어 곤두서 있는데, 노랫소리까지 들려 불편해 하나 싶어 기척을 살폈는데 오히려 반대였다. 낯선 노래지만 조급한 마음을 누그러뜨리기에 좋은가 보다. 짧은 영어로 배가 연착된 것에 유감스런 표현을 했더니 그녀가
'T. I. A.'라고 답한다. 불편하지만 이곳은 아프리카(This Is Africa의 이니셜을 따서 '티 아이 에이'라고 한다.)이기에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피곤한 얼굴 근육을 움직여 싱긋 웃어 보인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Pole Pole만큼 자주 만날 수 있는 아프리카식 표현이 T. I. A.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기의 제목도 This Is Africa로 정한 것이다. 그곳 사람들의 느림과 여유를 글로 잘 옮기고자 하는 마음에서이다. 결국 배는 3시간을 넘게 연착해서 도착했다. 탑승장에서 짧은 찰라 하림 일행을 만났다. 오랜 시간 대기와 뱃멀미 등으로 많이 지쳐 보였다. "T. I. A"하고 인사를 건넸다. 


인도양 아침

인도양 아침, 인도양 아침 
인도양 아침 위에 내가 서 있네. 

가질 수 없는 꿈들을 잊었나요? 
버릴 수 없는 것들을 비웠나요? 


아침에 일어나 처음 듣는 소리, 처음 보는 풍경이 인도양 바다였다. 평화로운 파도에 마음을 낮추고, 그 만큼의 낮은 목소리로 노래했다. 그 순간만큼은 다시 태어난 듯 빈 마음으로 바다를 느꼈다. 지난밤 나는 얼마나 이룰 수 없는 꿈들을 쫓고, 주머니 가득 뭔가를 채우고도 손으로 무언가를 집으려 했나 떠올렸다. 


이한철이 보내온 음악 <인도양 아침> 들으러 가기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