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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러스맵 소식/맵피플이야기

[맵피플소개] 모든 것을 다 가진 여자, 다재다능한 '호시' 편 - 첫번째 이야기

이번달 맵피플 인터뷰는 최초로 1-2부에 나뉘어서 해야할 꺼 같은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헉!)

인터뷰 시간은 총 3시간에 걸쳐서 진행되었고요, 1부는

모든 일의 영역을 한번씩 섭렵해 본 여자. 미술(예체능)- 회계(경영) - IT(컴퓨터) - 국제개발(코이카) - 항공사 - 공정무역 - 그리고 공정여행 교육

그냥 해본 일이 아닌 관련 업종에 지원만 하면 무조건 순탄한 길을 걸었던 교육여행 팀장님 '호시'를 인터뷰를 해 보았습니다.

 

인터뷰에 앞서, 그녀는 아는 것과 경험이 풍부합니다.

하와이 - 영국 - 서유럽(아일랜드,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벨기에, 프랑스, 스페인 등)  - 인도 - 네팔 - 일본 - 중국 - 모로코 - 한국 그리고.. 다음은 어디?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새로운 정보와 경험이 나오는 그녀! 이번호는 그 중에 1부 - 그녀의 여행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모로코나 인도 여행을 기획하시는 예비 여행자들에게 유용한 팁이 될 꺼 같네요. 자~ 시작해 볼까요?

 

호시 진짜 인터뷰 하고 싶었어요. 반갑습니다.

사람들이 맵피플 인터뷰 한다니까 이것도 홍보하랴, 저것도 홍보하랴 이것저것 요구도 많더군요.ㅋ

 

역시. 그럼 맵피플 공통 질문이죠. 닉네임이 '호시'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일본말로 '별' 이란 뜻이예요. 일본어를 배웠거든요. 배우기 싫었었는데.. 일본어를 정말 잘 놀려고 배웠어요. 여행을 다니다보니, 일본인이 정보를 너무 많이 알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죠. 그 때 별과 관련된 용어를 좋아했어요. 그리고 맵에 와서 닉네임을 쓴다고 하니 친구들이 추천해 줬어요. 사실 영어 이름, 이슬람 이름 엄청 많은데.. 그 중에서 호시탐탐에 '호시'로 하게됐죠. (친구들의 추천) 누군가가 교육여행팀에 지원했을 때 '탐탐이'라는 닉네임을 쓰게 되면 꼭 뽑으리라 ㅋㅋㅋ

 

닉네임 쓰는 회사는 처음인가요?

닉네임이 좋은 거 같아요. 닉네임으로 보고서의 기안을 내고, 프로젝트를 하고. 직급이 아닌 닉네임으로 쓰다 보니까 그 사람의 이름을 걸고 하는 거라 더 책임감이 생길 꺼 같아요. 물론 처음 들어오는 사람은 힘들 수도 있겠지만.

 

아 그래요? ㅋ 맵에 오기까지 호시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독특한 이력이 있으시다고 하던데...?

대학교 때 회계학을 전공했어요. 그래서 졸업 후, 자연스럽게 금융권에 취직했고, 그 중에서도 파생금융 상품일을 했고. 업종의 선물거래사 자격증도 있고요. 취직하고 몇년 후에 해외파견- 인도지사로 신청했어요. 그래서 인도와 인연을 맺게됐죠.

맵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소개시켜 주시죠!

 

 

그녀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곳, 인도로 가다

인도라. 어떠셨어요?

처음에는 너무 싫었어요. 인도란 나라가. 공항 내리자마자. 유럽 쪽 여행하면서 나라가 싫었던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인도에 내리자마자 '아! 돌아가야겠다. 날 좌천시켰구나.'라는 생각에 힘들었어요. 그래서 고민 끝에 휴직을 하고 인도란 나라를 여행하게 됐죠.  그리고 남인도를 가보고, 그 매력에 빠졌죠. 사람들 마인드가 맞았던 거 같아요. 알고보니, 남인도 사람들은 정규교육을 통해 꽤 합리적이었고, 그래서 릭샤를 타도 요금때문에 안 싸운 거 같아요.

 

여행지의 변화를 보면,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여행하는 패턴이 나타났어요. 그 터닝포인트가 혹시 인도였나요?

네. 인도였어요. 사실 저는 사춘기도 겪지 않고 평탄한 삶을 살았어요. 인도에서 여행을 시작하면서 6개월 정도 인도를 여행한 거 같아요. 좋아하는 곳만. 남인도. 북부 쪽은 가는 길이 너무 힘들어서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지더라고요. 하지만 남인도는 따뜻하고, 음식도 맛있고, 히피들과 놀던 기억. 특히 바르깔라 란 곳은 인도양 최고의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예요. 그 때 동굴에서 햇빛을 보는 순간.. 누군가가 나를 꼬옥 끌어안는 느낌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포근함을 느꼈던거 같아요.

 

인도양 최고의 일몰을 볼 수 있는 '바르깔라'

 

남인도에서 힐링을 하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됐어요?

직업을 완전 바꿨어요. 물론 금융권에서 저를 데리고 공부시키는 윗 분들의 도움을 엄청 받았어요. 덕분에 금융권 중에서도 전문적인 일을 다질 기회가 생겼고요. 그런데 인도에서 사춘기를 겪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델리에서 내가 몰랐던 세상을 본 거죠. 현지 친구네 집을 가려면, 불가촉천민들이 모여 사는 판자촌을 거쳐가야 했어요. 가는 길목마다 콘돔들이 그렇게 널려 있는 거예요.

 

헉. 콘돔이요?

네. 그래서 저도 같은 반응이었어요. 그런데 이 지역 사람들은 찢어지지 않는 그릇의 대용으로, 물을 운반하는 수단으로 쓰여지는 거였어요. 그래서 그 도시가 너무 싫어졌어요. 그 뿐만이 아니예요. 땡볕에 맨발로 정말 어린 아이가 와서 돈을 달라고 하는데...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체득하게 된 거예요. 그 상황에서 사춘기가 온 거 같아요.

 

궁금한 거 하나! 남들이 부러워하는 하는 스펙을 가지고 그 업종 직업이 아닌 다른 직업으로 바꿨다는 건가요? 다 버리고?

네. 지금까지 한번도 고민해보지 않고 순탄하게 인생을 살았어요. 그러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군에서 일해왔던거죠. 그리고 회사에서 돈을 많이 주면, 일도 진짜 많이 시켜요. 공부를 할 때 하루에 3시간 이상 자본적이 없어요. 거기에 경쟁심까지 보태지니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한 거에요. 그러다.. 회사를 왜 다녀야 됐는지 모르겠는거예요. 고민하다가 해외에서 계속 살아야겠다 고 마음을 먹었죠.

그런데 실용적인 학문인 회계학은 나라마다 자격증을 다시 또 따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IT계열인 컴퓨터를 배우기로 했죠.

 

그럼 한국에 돌아와서 바로 컴퓨터 학문(?)에 뛰어든 거예요?

아니요. 한국에 와서 몸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제가 떠난 이틀 후에, 스리랑카 쪽과 남인도에 큰 쓰나미가 왔어요. 제가 마지막에 있었던 그 지역에....그래서 다시 인도로 돌아가려고 했죠. 저랑 함께했던 친구들의 소식이 끊기니까. 그냥 무작정 가야 겠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당시 인도는 자원봉사를 받지 않았어요. 더군다나 제 체력이 안되서 돌아왔던 시기라 갈수가 없었죠.

 

 

새로운 세계 컴퓨터, 일본으로 날라가다.

그럼 한국에 돌아와서는 무슨일을 시작했어요?

컴퓨터를 배웠죠. 고등학교 때 미술을 해서 영향을 받아 디자인부터 배웠죠. 배우면서 가만히 있는 디자인이 맞지 않다고 느껴서 플래시를 배우기 시작했죠.

잠잠히 한국에서. 그리고 집안에 하나뿐인 여동생이 매번 해외에 나가니까 사촌오빠들이 돈을 모아서 '컴퓨터 프로그래밍' 학원을 보내줬어요. 그리고 취업은 일본으로 하게됐죠.

 

취업은 다시 해외로ㅋㅋㅋ

네. 분석하고 관련된 언어들을 좋아해요. DB나 회계나. 1년동안 자바, 오라클, 데이터 개발자 등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해 공부하고 취업은 해외로 하게 됐죠.

 

결과물로 눈으로 보이는 것을 좋아하시는구나.

네. 보이는 것을 가장 확신해요.

 

그럼 일본생활에 대해 들려주세요.

관련 경력을 가지고 싶어서 일본으로 취업이 돼서 나갔는데.. 코이카에서 공고가 난거예요. 일본으로 떠난지 3-4개월후에 일이죠.  그리고 코이카에서 DB프로그램 관리하는 컴퓨터 능력으로 지원해서 일본을 떠났죠. 컴퓨터 교육에 관련된 활동으로 모로코로 나가게 된 거죠.

 

 

아프리카의 붉은 보석, 모로코로 가다

다시 모로코로? 그럼 모로코에서는 어떤일을 하셨나요?

코이카(KOICA)로 모로코로 오게 됐고, 현지에서 교육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컴퓨터 교육쪽 관련분야로 지원해서 '기술협력'으로 가게된거죠. 그쪽은 왕립학교에서 컨텐츠를 만들었고, 저는 외국인이라는 신분으로 감수 정도만 하는 역활이었어요. 그런데 그곳이 2년동안 사람을 구할 수 없었대요.(자격조건으로 인한)  그런데 제가 지원해서 운이 좋아 가게 된거죠.

 

어린왕자의 배경이 되는 사하라 사막

 

실패없이 무조건 GO!? 스펙이 좋은거 같아요. 모로코는 얼마나 있었어요?

2년 있었어요. 코이카 기간이 2년이예요. 모로코는 아프리카 지역이잖아요. 따뜻하고 사하라 사막이 있는. 하지만 제가 가게된 지역은 아틸라스 산맥 위에 있는 지역이었어요. 그래서 친구들이 기압때문에 힘들어했어요. 고산증의 증상이죠. 그런데 막상 그 지역에 살게되니까 고산증 증상은 모르겠고, 눈 많이 오더라구요.

 

모로코에 눈이 와요?

네. 모로코는 아프리카에서 손꼽히는 대설지역 중에 하나예요. 모로코 내에도 2군데 정도의 리프트 없는 스키장이 있습니다.

 

날씨는 어때요?

9월달부터 오리털 점퍼 입었던 거 같아요. 눈도 많이 와서 한번 오면 고립되고. 겨울 시기가 9월부터 4월초까지? 겨울 시즌이 길어요.

 

재미있었어요?

처음에는...내가 왜 여기에 있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있었던 모로코 '알 아카와인' 왕립대학교는 서울대보다 전세계 랭킹이 높은 곳이래요. 다른나라 왕자님과 장관의 자녀들이 많았어요. 수준이 엄청나요. 삶의 수준 또한 엄청났고요. 저는 그 속에서도 선생님으로 극존칭을 받았기 때문에 생활하는데는 편했던 거 같아요.

 

모로코 사람들은 어때요?

우리동네에서 동양인이 유일하게 제가 한명이었어요. 이프란이란 곳인데 베르베르말로 계곡들이란 뜻이예요. 동네가 너무 작아서 1분 30초면 시장도 한번 다 돌고, 사람들과 인사도 가능할 수 있는 동네였어요. 그러다 그 후에 일본인 교환학생이 왔고, 나중에 그 친구랑 친해졌죠. 그 친구는 제가 일본인인줄 알았고.ㅋ 친해져서 6개월동안 모로코 아저씨들처럼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마셨죠.

 

모로코 아저씨들처럼? 그쪽 아저씨들은 커피 마시는 독특한 습관이 있나요?

모로코 아저씨들은 카페테리아에서 길을 바라보며, 한줄로 앉아서 커피를 마셔요. 정말 이상했어요. 처음에는.

 

그럼 카페테리아 구조가 우리랑 다르겠네요?

똑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마셔요. 카페테리아는 유일한 사교의 장이예요. 그리고 유일하게 영어를 썼던 장소였죠. 그래서 그곳에서 친해지게 됐죠.

 

호시, 모로코에 엄마가 있다고 들었어요.

 

모로코 엄마,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지내는 지구촌 반대편의 나의 엄마

 

네. 모로코엄마. 제가 카페테리아에서 그렇게 수다떨고 있으면 "여자는 8시 이후에는 집에 와야해" 라는 생각이 계셔서 콜택시 불러서 집으로 데리고 오곤 했던 모로코엄마. 홈스테이를 했을 때, 같이 지냈던 현지 엄마예요.

 

'엄마'라고 불렀던 계기가 있었어요?

홈스테이는 1-2주일 밖에 안했어요. 그리고 숙소로 이동했어요. 그런데 홈스테이를 같이 했던 그 현지 아빠가 돌아가신거예요. 그 메일을 보는 순간. 눈이 와서 고립지역이 된 그곳을 찾아가게 됐죠. 한국인이라는 그 신념에 그 눈길에 검은색 정장과 코트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그 눈길을 간 거예요. 학교에서 40분에서 한시간을 걸어야 되는 거리인데... 고립되서 택시도 다니지 않았던 상황이었어요. 한시간 반동안 온몸이 눈에 다 젖으면서 울면서 찾아간 거죠. 홈스테이 했던 그 집을.. 가서 끌어안고.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을 분들이 가족으로 인식시킨거죠. 그때 엄마가 '딸 왔다고.'  후에 이슬람이름 명명식에 양도 잡아주시고. 그 때 이후 관계가 끈끈해졌죠.

 

모로코 장례식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흰 옷을 입어요. 그리고 헤나를 해요. 손은 진흙액으로 비비고. 손과 발은 그렇게 어둡게 해요. 그리고 옛날 우리나라 장례식처럼 산에 묻어요. 화장은 안하고. 마을 사람들이 다 도와주고. 엄마는 그때 집에 있더라고요.

 

인종차별은 없었어요?

그전까지는 무시 많이 당했어요. 역차별이었죠. 나는 도와주러 갔지만, 그 사람들은 가찮게 본거죠. 조그마한 나라에서 무엇을 도와준다고 왔는지 현지사람들은 무시한거죠. 하지만 그 사건 이후,  마을사람들은 저를 가족으로 맞아줬고. 나머지 친구들은 '월드컵'으로 친해졌죠. 처음에는 무시하던 친구들이 '너네 우리나라 월드컵 봤지?'라고 떵떵 거렸죠. 그 친구들이 설기현과 박지성을 알더라고요. 그때이후로는 저를 무시하지 않았죠.

 

모로코 남자는 어땠어요?

모로코에는 남자분들이 털이 많아요. 그런데 걔 중에도 주드로를 닮은 모로코 남자들이 있어요. 물론 그런 분들은 은행에 있죠. 그럼 저는 은행에 가서 새계좌를 뚫죠. 그리고 저녁초대를 받으면 같이 저녁을 먹는데 차마 보기 싫었던 그사람의 센스없는 메뉴 주문을 보고 돌아가곤했죠.

 

ㅋㅋㅋ 얼마나 이상한 음식이었기에 잘생긴 주드로를

제가 정말 싫어하는 메뉴를 미리 시킨거죠. 헉. 전 그 센스에 앞으로 ATM기기만 이용해야 겠다 라고 생각했죠.

 

모로코란 나라는 어때요?

음.. 지하 몇 층에서 지상 몇층까지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그쪽은 지하라는 자체를 상상할 수가 없어요. 워낙 땅 덩어리가 넓은 나라니까. 카사블랑카는 있어요. 그런데 대부분 만들지 않아요. 그래서 지하에 대해 설명을 했을 때 그 친구들은 이해를 못해요. 그래서 그쪽은 지하철도 없어요. 트램이 있죠.

 

2년동안 스트레스나 향수병은 없었어요?

음. 향수병은 없는데 답답한 감은 있었어요. 아프리카에서도 일몰이 멋있는 지역으로 알 마그리비아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가 있어요. 그러니까 바닷가 근처에 사는 친구들은 그걸 보면서 버티는데 저는 고산지대라 그런것도 없었죠. 그래서 매일 한시간 반동안 출근길을 걸어갔어요. 그 길이 너무 좋아서 나름 스트레스를 풀면서 하루하루 지낸 거 같아요.

 

위험하진 않았나요?

내가 살던 동네는 작고, 동네 사람들이 다 알아서 위험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밤에 그 산책길을 가고 있는데 경찰차가 쫓아 오는 거예요. 여기 위험한 역이라고.. 그래서 내가 그럼 경찰차를 태워달라고 말했는데도 이슬람 문화권이라 여자와 함께 차를 탈 수 없는 거지. 그래서 경찰차가 불을 비추고 내 걸음거리 속도에 맞춰 쫓아오고 경찰관 하나는 나랑 같이 걸어가고.. (우아) 매너가 정말 좋은 나라예요. 대신 관광객들(그 동네를 처음 방문하는 모로코 사람들)은 나를 동양인이라고 차별하는 거지. 그런데 우리 동네 사람들이 나를 막 보호해 주는 거예요. 인도에서는 막 싸우고 다녔는데... ㅋㅋ

모로코는 호시에게 애증의 나라. 가족이 있는 나라.

 

모로코에서 쓰는 언어는?

제1의 언어는 아랍어, 불어, 영어 및 스페인어 정도?  베르베르어는 유목민이 쓰는 거 같아요. 제가 살던 도시는 특히 유럽인이 많은 도시였던 거 같아요. 베르베르어는 그곳에서는 말살시켜야 되는 언어로 인식되더라고요.. 정치의 색이 강해서.

 

마지막으로, 호시에게 모로코란 나라는 제2의 고향 같은 존재예요?

애증의 나라? 흠.. 모로코에 가면 잘 살 수 있을 꺼 같지만 굳이 살기는 싫어요. 그곳에 가족이 있기 때문에 방문을 해야 하는 곳. 우리 가족은 프랑스나 이탈리아로 여행도 많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엄마는 나오지 않았어요.

 

그럼 모로코에서 한국으로 다시 들어오시나요?

그쪽에서 만난 인연들이 저한테 많은 도움을 줬어요. 그리고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미뤘던 국제개발 쪽을.. 그래서 들어오자마자 가고 싶었던 대학을 선택하고 프랑스로 떠날 생각을 했죠.. 그런데 10년정도 외국에 나가 있다가 한국에 다시 돌아오니 제 자리가 없는거예요. 엄마 아빠의 딸이라는 거 외에는. 그리고 한국 오니, 한국이 너무 좁은거야. 공간은 좁은데 사람은 너무 많아서....답답한 거예요. 국제개발 쪽 일을 하고 싶어도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공부하고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그쪽 또한 3년의 현장 경험이 필수 조건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리고... 한국에서 무조건 3년 버티기로 마음 먹었죠.

 

자, 호시가 살았던 인도와 모로코에 대한 얘기를 끝으로 1부를 마치고,

2부에서는 한국에 돌아온 호시가 항공사 카고 핸들링으로 일했던 경험, 공정무역에 발을 들이고 현장에서의 생생한 경험.. 그리고 맵에서의 지금의 생활까지 이어집니다. 공정무역, 항공사 취업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눈 크게 뜨고 2부를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