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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프리카에 대해 몰랐던 9가지 흥미로운 사실"

"당신이 아프리카에 대해 몰랐던 9가지 흥미로운 사실"


트래블러스맵 부설 공정여행연구소장 뱅

*채식주의 잡지 [비건] 2013년 3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1. 아프리카는 비현실적인 공간?

“오, 좋겠다. 나도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고 싶은데.”

“응? 거길 왜 가? 날씨도 덥고, 위험하잖아.”

‘아프리카에 다녀올게’라고 말하면, 대개 이와 같은 2가지 반응이 대답으로 돌아왔다. 흥미롭게도, 선망과 우려로 양분되는 이러한 반응은 나의 5번째 아프리카 여행이 시작될 때까지도 반복되었다.


넓은 초원위의 야생동물들과 순수한 부족들의 땅 혹은 치열한 내전과 지독한 굶주림의 땅.

정말 가고 싶은 곳 혹은 절대 가고 싶지 않은 곳.

여행자의 로망 혹은 여행자의 무덤.

환상 혹은 악몽.


환상이든 악몽이든 비현실적인 공간이기는 마찬가지. 아프리카는 어째서 우리들 마음속에서 비현실적인 곳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일까? 물리적 거리는 유럽과 별반 다르지 않은데, 심리적 거리는 왜 이토록 다를까?



2. 나이로비, 당신의 아프리카는 이곳에 없다.


광활한 초원, 찌는 듯한 더위, 지천에 뛰노는 야생동물들, 탄탄한 알몸을 드러낸 원시부족, 기관총을 메고 다니는 시민군, 지독한 굶주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은 대략 이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마도 우리가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나 해외토픽, 다큐멘터리, 항공사 광고가 주는 정보로만 아프리카의 소식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프리카에 발을 들여놓고 두 눈으로 직접 보고 그곳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 보기 전에는 누구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는 한국을 기점으로 효율적인 루트의 아프리카 여행을 시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관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가진 이러한 선입견의 많은 부분을 깨뜨리며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는 곳이다. 


급히 작성해야 하는 각종 입국서류와 퉁명스러운 세관공무원, 바삐 움직이는 직원들과 손님들로 북적이는 나이로비 공항에서 이루어지는 아프리카와의 어색한 첫 만남. 

여행자들은 단지 낯선 피부색의 사람들에 둘러싸여서가 아니라, 예상과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는 아프리카의 모습에 잠시 멍해진다. 짐이라곤 달랑 배낭 하나밖에 없는데도 굳이 들어주겠노라며 다가오는 포터들과 탑승을 강권하는 택시기사들, 그리고 그들이 던지는 유창한 듯 하지만 빈틈 많은 영어의 소나기를 헤치며 공항 문을 나서서 맞닥뜨리는 아프리카는


기대와는 달리 ‘대초원이 아닌 대도시’. 만약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시간이 운 좋게도(?) 출퇴근 러시아워와 겹친다면, 한국에서도 명절에나 볼법한 엄청난 차량의 행렬도 경험할 수 있다.




3. 세렝게티는 죽음의 땅이었다.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아프리카 야생동물 다큐멘터리와 사진은 세렝게티 국립공원을 담고 있다. 이 끝없는 대평원이야말로 수많은 동식물이 살아가는, 생명력 넘치는 상징과 같은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믿기 힘들게도, 이곳은 한때 생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죽음의 땅이었다.


오래전 킬리만자로, 응고롱고로 등 주변에서 폭발한 거대한 화산들로 인해 화산재가 모든 것을 편평하게 덮어버렸고, 어떤 생물도 살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상대적으로 수분이 적어도 살 수 있는 아카시아 나무와 낮은 풀들이 자라기 시작했고, 초식동물과 육식동물들이 모여들어 지금의 거대한 대초원이 되었다고 한다.


이 거대한 사바나 초원만큼이나 죽음과 삶의 경계와 순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곳도 드물다.



  4. 아프리카에서 가장 위험한 야생동물은, 귀여운 하마.


당신이 아프리카로 여행을 간다면 가장 조심해야하는 동물은 단연, 큰 덩치에 너그럽게 생긴 초식동물인 하마.

놀랍게도 하마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악명높은 동물 중의 하나다.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그 강력한 이빨로 주변의 악어를 모두 물어 죽여 피바다를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고, 성격이 난폭해서 물을 길러 온 사람들도 자주 공격하기 때문에 아프리카의 모든 야생동물 중 연간 가장 많은 인명사고를 일으킨다는 통계도 있다. 

게다가 하마(河馬 : 물에 사는 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물 밖에서는 100m를 8초에(시속 40km) 달릴 수 있다. 사실, 사자도 웬만해선 사냥을 시도하지 못하는 강력한 동물의 대부분은 초식동물이다. 코끼리, 코뿔소, 버팔로, 기린 등. 

우리의 섣부른 편견은, 생명의 위협이 될 수도 있다.



5. 마사이족은 사냥을 하지 않는, 가장 용맹한 전사이다.


성인식의 통과의례로 사자를 죽인다는 용맹함, 길게 뻗은 근육질의 몸매, 하루 종일 땡볕에서 돌아다닐 수 있는 체력, 굉장한 점프력. 아마도 아프리카의 수많은 부족들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사람들은 마사이족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용맹한 전사로 알고 있는 마사이족은 사냥을 하지 않는다. 야생동물 수렵이 금지되어 사냥을 더 이상 못하게 되었냐고? 아니다. 마시이족은 원래 사냥을 하지 않는 부족이다. 전통적으로 그들은 염소나 소 같은 가축을 길러 생활해왔다. 숫사자를 죽여서 머리를 가져오는 성인식의 의례가 있어서 아프리카에서도 용맹하다고 알려져 있을 뿐이다. 동물들도 마사이족을 잘 아는지, 소를 몰고 다니는 마사이족 소년 바로 앞으로 얼룩말이나 임팔라떼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마사이족은 여전히 용맹한 전사다. 유목할 만한 광활한 벌판은 자꾸 줄어들고, 그들이 키운 소는 더 이상 좋은 가격에 거래 되지 않고, 젊은이들이 도시로 빠져나가 전통도 점점 설자리를 잃는 바로 오늘, 마사이족은 그들의 역사에 있어 가장 치열한 생존의 싸움을 하고 있다.



6. 탄자니아에는 돼지고기 요리가 없다?

아프리카의 사람들은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을까? 여전히 마을마다 신과 소통하는 제사장이 있고, 사람들은 제물을 바칠까? 아니다. 아프리카는 세계 어느 곳보다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동아프리카를 여행하다보면 돼지고기를 팔거나 돼지고기로 만든 요리를 보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역에 따라 그 수의 차이는 있지만, 이슬람교도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에 수요 자체가 낮기 때문이다. 동아프리카는 그 지리적 이유로 인해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아랍권의 침략, 지배를 받아왔기에 현재까지도 이슬람교의 비중이 높다. 또한 아프리카 전역에는 수많은 선교사, 선교단체가 오랜 시간 왕성한 활동을 해왔기에 천주교나 개신교 신자들도 매우 많다. 

우리가 생각하는 순수한 전통 종교는 이제 그 존재가 매우 위협받고 있는 수준이다.


7. 시간을 살 수 있는 곳, 아프리카.

아프리카는 시간을 살 수 있는 곳이다. 동화나 SF소설이 생각나는가? 

하지만 아쉽게도 이것은 ‘뇌물’에 관한 이야기이다. 거의 아프리카 전역에 걸쳐 뇌물 요구 혹은 매수시도는 아주 일상적인 일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아무 잘못도 없는데도 차량을 세워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땡볕아래서 꼼짝도 못하게 만드는 경찰이나 국경의 공무원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면허증을 제시하고, 보험증서를 보여주고, 모든 짐칸을 열어줘도 소용없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약간의 ‘개인적인 세금’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실제로 법규를 위반하지 않는 한, 뇌물을 주지 않아도 큰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다만, 그런 경우에 다시 언제 출발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반대로, 약간의 뇌물을 주면 빨리 지나갈 수 있다. 

아프리카는 시간을 살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내 시간이 아깝고 급하다면, 때론 구입하는 편이 낫다.


8. 우리도 바코드 찍어서 물건 사거든?

유명한 개그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오늘도 아프리카의 모든 사람들은 물을 뜨러 몇 시간을 걸어가고, 벌판에서 카사바를 맨손으로 캐고, 저녁거리를 위한 덫을 놓고 있을까? 아직도 그렇게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적어도 여행 중에 그런 사람들을 만날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핸드폰을 가지고 있고, 구석구석 들어선 대형마트나 슈퍼마켓에서 바코드로 찍어서 물건을 살 수 있으며, 생수와 음료수는 한국보다 훨씬 더 많은 종류와 저렴한 가격에 사먹을 수 있다. 



9. 아프리카?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뭐.

광활한 대자연, 독특한 전통문화, 순수한 사람들... 

어쩌면 우리는 아프리카라는 거대한 대륙이 ‘우리가 원하는 아프리카의 모습’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시각으로 그곳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그리고 그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 곳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기부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희망적인 것이든 절망적인 것이든,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모습들은 아프리카가 가진 수만 가지 얼굴들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분명한 것은, 아프리카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급격한 속도로 변화하고 있으며 그 변화가 생각보다 빨리 일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곳의 사람들도 한국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고민과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 

아프리카에 대해 쏟아지는 물음들에 이제는 “아프리카?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뭐.”라는 조금은 재미없는 대답을 하게 된 것은, 

아마도 내가 아프리카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응고롱고로 분화구의 새벽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