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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러스맵 소식/언론 보도

철창에 갇힌 여우를 풀어준 이야기(여행과 야생동물)

대자연이 아름다운 일본 홋카이도의 어느 캠핑장,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일본 홋카이도를 자전거로 여행할 때 였습니다. 시베츠라는 곳의 한 캠핑장의 아침. 뭔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습니다. 동물이 거친 숨을 내쉬는 듯한 소리, 날뛰는 소리, 금속을 할퀴는 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수근거림. 아무래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텐트에서 나와보니, 이게 왠 일. 여우 한 마리가 철창에 갇혀있는게 아니겠어요. 


여...여우다!




잔뜩 지쳐보이는 여우를 만나다.

도대체 어느새 잡힌 걸까요? 모르긴 몰라도 꽤 시간이 지난 듯, 여우는 잔뜩 지쳐보였습니다. 목이 마른지 혀를 길게 내빼고 있었구요. 더이상 발악할 힘도 없어보였습니다. 아마도 굶주림을 못 이기고 철창 안의 먹이를 먹으려 했다가 잡힌 모양입니다. 전날에도 동네 쓰레기통을 뒤지는 여우 한 마리를 보았는데, 혹시 그 녀석이었을까요...



지쳐보여...




여우는 왜 잡힌 걸까? 

사실 홋카이도의 여우들은 에키노콕스라는 기생충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간염되면 해롭기 때문에, 국가차원에서 캠핑장에 출몰하는 여우를 잡은 것이죠. 실제로 10분 쯤 뒤에 이 녀석을 수거하러온, 공무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잠시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 있는 것 같았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고민이 되더군요. 이 녀석을 붙잡은 목적은 분명히 알겠고, 또, 풀어준다고 해도, 오늘 밤 다시 붙잡힐 수도 있고... 하지만 녀석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더이상 도망갈 의지조차 없어보이는 야생동물의 지친 눈. 



녀석의 뒷모습

  


여우를 풀어주다 

결국 저는 철창을 열어 녀석을 풀어주었습니다. 녀석은 잠시 망설이더니 천천히 철창을 나와 저에게서 멀어졌습니다. 점점 멀어지다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계속 저를 뒤돌아보았습니다. 아마도 어리둥절했던 걸까요? 저 놈은 뭔데 나를 풀어주었지? 그런 표정이었습니다. 

처량한 그 뒷모습. 녀석은 어디로 갔을까...

멀어지는 여우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이제 저 녀석은 어디로 갈까? 캠핑장 주변은 공사중이었습니다. 여우는 터벅거리는 걸음으로 계속 걸어갔지만, 주변은 모두 공사중이었습니다. 그리고 캠핑장은... 사실 도시안에 있었습니다. 여우는 야생동물이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이 익숙한 모습이었습니다. 참 가슴 아픈 뒷모습이었습니다.



공사장을 배회하는 여우




야생동물의 터전을 빼앗은 것은...

야생동물인 여우가 왜 도시에, 캠핑장에 나타나 철창에 갇히게 되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넓은 자연이 있고, 그 속에서 풍족하게 사냥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럴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도시가 ,도로가, 사람이 늘어나면서 야생동물들이 살 자연은 점점 좁아지고, 나뉘어지고, 침범당한 것이죠. 

여행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것들. 

홋카이도를 여행하면서 공사 중인 곳을 많이 봤습니다. 홋카이도는 아름다운 자연, 이국적인 풍경, 특색있는 도시로 일본 내국인은물론 한국, 대만, 홍콩의 여행자들에게 인기 높은 여행지입니다. 1년이면 국내외에서 홋카이도의 인구(550만명)의 9배에 달하는 4800만명의 여행객이 찾고 있습니다. 이 많은 여행객들의 원활한 여행을 위해서는 곳곳에 도로가 있어야 하고, 다리가 놓이고, 터널이 뚫리고, 숙박시설이 건설되고, 캠핑장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야생동물은 얼마나 고려되고 있을까요? 

곰, 여우, 사슴 같은 야생동물들은 관광객들에게는 보호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재미있는 유흥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로를 지나다 사슴이나 여우를 발견하면 신기해하며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고 좋아하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하지만 왜 야생동물이 도로에 나타나야 하는가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세계자연유산인 시레토코지역에서 만난 사슴



인간중심의 여행에서 벗어나서.

그나마 홋카이도는 나은 형편일지도 모릅니다. 아직 야생동물을 도로에서라도 흔히 볼 수 있을 만큼의 수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적어도 태국의 코키리들처럼 훈련을 시켜서 쇼를 하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지금과 같은 여행이 계속되면, 야생동물의 터전은 점점 줄어들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관광을 위해서 야생동물의 터전이 점점 사라지는 것 자체를 완전하게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행자들이 하나 둘 인간중심의 여행에서 벗어나서, 공존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여행을 실천한다면, 그 속도를 줄이거나 일정 부분을 보호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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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자연이 아름다운 곳으로 여행을 가신다면, 
과연 나라는 여행자는 자연에게, 그곳에 사는 동물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는 그들에게 침입자일까요? 아니면, 교감할 수 있는 손님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