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정여행/소셜프로젝트

[지구별여행자] 마침내 손 끝에서 피어난 여행

 

* 글쓴이 : 트래블러스맵 교육여행기획자 빽 (백진아)

* 이 글은 채식주의잡지 비건 23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봄이면 진달래 꽃잎 따서 먹어 보고, 여름이면 마을 뒷산 계곡에서 발가벗고 다이빙하며, 가을에는 풋콩 서리해서 모닥불에 구워 먹고, 겨울이면 썰매를 만들어 언 논두렁에서 타고 노는 아이들의 모습.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내게는 70,8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부모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 속에서나 들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20대에 전국의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그것은 과거 어린이들의 놀이만이 아닌 내 또래 친구들의 놀이 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게 자란 친구들은 호기심이 왕성햇으며, 마음이 여유롭고 솔직했고, 타인과의 관계맺음이 수월했다. 무엇보다 어떤 일을 하든 특유의 긍정성으로 무서워하지 않고 덤비는 무모함까지 갖추고 있었다.

 

 

전형적인 도시 아이

 

 

 

 

  충북 괴산의 고옥 금단재로의 여행은 별다른 프로그램이 필요 없다. 한옥 마당에서 그냥 놀면 된다. 누군가가 놀이를 이끌지도 않고, 놀이감을 제공해주지도 않는다. 그저 시간과 장소만 줄 뿐이다. 처음 잠깐은 당황하던 어린 친구들은 일단 무작정 뛰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 명이 뛰면 누군가가 따라 뛰고, 또 누군가가 따라 뛴다. 떼를 지어 뛰다 하나의 규칙이 더해지고, 더해진 규칙에 또 다른 규칙이 더해지며 점점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간다.

  그렇게 친구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놀고 있을 때 쎈은 한쪽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뛰어노는 친구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저 빨리 이 시간이 지나고 다 같이 방안으로 들어가서 둘러앉아 게임을 했으면 하는 눈치다. 몸을 쓰며 노는 일에 익숙하지 않고 경험이 많지 않은 쎈은 그것의 즐거움을 잘 모르는 것같았다. 해보지 않은 것들이 낯설고 무서워 시도조차 하지 않는 듯했다.

  6월 한여름 캠핑에서다. 해가 머리 곡대기에 있는 땡볕에 텐트를 치고 나서, 어서 계곡으로 들어가자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쎗은 어느 사이엔가 텐트 안에서 옷을 갈아입고, 비닐 우비로 중무장을 하고 나왔다. 물에 젖는 것이 죽도록 싫다는 것이었다. 계곡에서도 역시나 바위에 앉아 발만 담그고 꿈쩍도 하지 않던 쎈을 인솔자로 함께 한 맥심이 번쩍 들어 물속에 빠뜨렸고, 쎈은 무섭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이미 사건은 벌어지고 말았다. 다른 친구들의 총 공세를 받았고, 중무장한 우비는 소용없게 되어버렸다. 끝나고 돌아가는 기차 안, 계곡에서 이렇게 놀아본 것은 처음이라 너무 무섭고 싫었는데, 해보고 나니 너무 즐거웠다고 했다.

  지구별여행자의 여행 인문학, 여행지 탐색, 여행의 기술, 여행 낯설게 보기 등 4개월의 학습과정 후 떠난 일 주일의 하와이 본격여행 마지막 밤에 쎈은 재미있었지만 힘들기도 했다며, 엄마랑 하와이 여행을 끝으로 다시는 여행은 가지 않기로 약속 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쎈과의 만남은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3개월 만에 지리산 캠핑에 쎈이 나타났다. 자유롭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몰라 늘 전전긍긍하던 예전의 쎈이 아니었다. 트레킹 중에 발견한 나무 조각을 잘 숨겨두었다가 내려오며 가져와서는 나무줄기로 끈을 만들어 묶어 놀이감을 만들었고, 벌레라면 질색을 하며 무서우니 죽여버려야 한다던 그 아이가 신기하게 생긴 벌레를 나뭇가지에 조심스레 올려, 이것 좀 보라며 자랑까지 했다.

 

 

이게 서비스라고?

 

 

 

 

 

  현지 식당, 현지 업체를 이용함으로써 여행경비가 지역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트래블러스맵의 여행은 어린 아이들에게 낯설다. 특히 음식이 그렇다. 여행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나 시골 밥상 대부분이 어른 취향의 것이 많기 때문이다. 채소가 많고,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아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을 어린 친구들이 맛있게 먹는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것을 아는 시골이 어르신들은 어린이들과 함께 간다고 하면 햄이나 어묵 등 아이들 입맛에 맞는 음식을 준비해주겠다고 하신다. 하지만 나는 그냥 원래 하시던 대로 해달라 부탁한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은 밥 먹을 때면 걱정이 앞서는지 우리 테이블 주변에서 서성거리기 일쑤다.

  공주 여행에서 노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을 이용했다. 부부는 손주를 맞이하는 것처럼 음식이 입에 맞는지, 뜨겁지는 않나 물으며, 양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물으며 살뜰하게 챙겨주셨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우리 애기들 맛있는거 사줘야 하는데 못해서 미안하다며 꼬깃꼬깃 1000원짜리 5장을 손에 쥐어주신다. 애기들 요구르트나 사주라신다. 식사를 마치고 아이들에게 예쁨 받으며 밥을 먹으니 좋겠다고, 나가면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라 했더니 돌의 한마디. “서비스!”. 세상에 이게 서비스라고? 이건 서비스라고 하는게 아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진심으로 너희들이 이뻐서 챙겨주신 거다. 뭐가 아쉬워서 어린 너희들에게 서비스를 이렇게 과하게 하겠느냐고 설명해보지만, 입술만 삐죽할 뿐이다.

  2달 뒤, 동강여행에서 역시나 지역의 민박과 그곳에서 준비해준 음식을 먹게 했다. 역시 모든 재료는 직접 기른 채소였고, 아이들을 위해 구입한 김만이 특별식이었다. 평소 입이 짧고, 아토피를 앓고 있어 먹는 것을 조심하던 돌은 여행 때마다 음식을 앞에 두고 투덜거렸다. 정성껏 준비해주신 아주머니 앞에서 또 투덜거리는 것은 아닐가 눈치를 보고 있는데, 웬일로 조용히 음식을 먹고 있다. 무엇인가 익숙하지 않은 광경에 돌을 살펴보니 반찬에는 손을 안대고 밥만 먹고 있었다. 그러고는 아주머니께 맛잇게 잘 먹었다고 인사를 하고 나가는 것이었다.

 

 

 

예측불허의 상황이 무서워요

 

 

 

  9월부터 12월까지 전국 방방곡곡으로 총 8번의 여행을 떠나는 꾸러기 유랑단이 이제 마지막 여행만을 앞두고 있다. 음악, 사진과 함께한 걷기 여행, 은밀히 숨겨진 역사를 찾아가보는 여행, 스스로 텐트를 치고 밥을 해먹는 캠핑 등 다양한 테마로 다양한 곳으로 여행을 떠났고, 마지막 여행은 스스로 기획하고 진행하는 서울 여행이다. 스스로 만드는 여행에 기대를 가지고 있던 로키는 팀별로 머리를 모아 첫 기획안을 만들고 나서는 안 하면 안되냐고, 빽이 그냥 기획해달라고 했다. 기획한 여행 중에 생긴 예측불허의 상황이 무섭다는 이유였다. 여태까지의 여행은 빽이 모두 만들고 유랑단이 따라오는 것이어서, 여행의 매력 중 하나인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오는 즐거움을 주지 못했다고, 이번 여행에서 아주 작게나마 그 매력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심각하게 고민하던 로키가 해보겠다고 했다.

 

  써놓고 보니 몇 번의 여행으로 아이들이 대단한 성장을 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쎗은 지리산 캠핑에서도 몇 번이나 울었고, 돌은 여전히 밥을 앞에 두고 투덜거리고, 로키는 빽에게 혼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그렇지만 몇몇 순간을 보며 길 위에서 만나는 인간과 코끼리, 나무, , 사라져간 것들, 어쩌면 사라져갈 것들,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 흔들리는 것들의 이야기가 아이들의 발바닥에서 명치 끝까지 쌓일 것이고, 그 이야기들은 마침내 손끝에서 피어날 것이라는 로드스꼴라 대표교사의 어려운 말을 아이들은 이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