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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인권·환경 지키는 '지속 가능 여행' 시대 (세계는 지금 090112)

[세계는 지금] 인권·환경 지키는 '지속 가능 여행' 시대
지구에 대한 책임감… 여행 스타일 바뀐다
관련이슈 : 세계는 지금
  • ‘여행이 인권을 침해한다.’ 관광산업이 지역경제를 살린다는 점을 생각하면 선뜻 와닿지 않는 말이다. 다음과 같은 말은 어떨까. ‘생태관광이 지구를 죽인다.’ 생태와 지구파괴라는 말이 빚어내는 부자연스러움만큼이나 어색하게 느껴진다. 흔히 여행은 여행자에게는 재충전의 기회를, 관광지 주민에게는 관광수입을 올려주는 수단으로 그려진다. 관광 시장규모가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0%에 이르고 전 세계 노동력의 8%를 흡수하니 분명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여행 통계에 잡히지 않는 중요한 항목이 또 있다. 환경과 원주민의 삶이 그것이다. 여행은 출발하는 순간부터 친환경과 이별을 고한다. 자동차나 비행기로 장거리를 이동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에 따르면 2005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6%가 순전히 여행 때문에 발생했다. 여행지에서는 집에 있을 때보다 물 사용량이 배로 늘어난다는 조사도 있다.

    ◇2003년 8월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서 한 르완다 남성이 마운틴 고릴라 기념품을 팔고 있다. 르완다 마운틴 고릴라 관광이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외국 투자자만 특수를 누리는 상황이 벌어지자 르완다 정부와 국제동물보호단체는 르완다 내 인터넷 보급 등을 통해 르완다 사람들의 경제권 보호에 나섰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특히 최근에는 지구촌 청정구역이나 오지 답사가 생태관광의 이름을 달고 인기를 끌면서 지금껏 사람 손을 타지 않던 곳까지 파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현지인은 급작스런 환경변화에 못 이겨 삶의 터전을 잃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여행객 때문에 몸살=‘신들의 섬’이라 불리는 인도네시아 발리. 화려한 수식어에 걸맞게 이곳은 매년 발리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약 190만명의 관광객으로 북적댄다. 덕분에 발리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 됐다. 하지만 정작 발리 주민들에게 관광특수는 남의 얘기다. 관광 수입의 절반 이상은 외국인 투자자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다. 1995년 93%였던 힌두교도 비율이 5년새 87%로 떨어졌다. 현재 발리 중심지 덴파사르에는 60%만이 힌두교를 믿는다. 발리 전통문화보존 운동을 벌이는 현지 의사 러흐 케툿 수라니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발리 원주민들은 외국인을 위해 꼭두각시처럼 춤을 추고 그렇게 모인 돈은 다시 외국인 주머니로 들어간다”며 “우리가 소수집단(minority)이 돼버린 듯한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리조트 개발 붐에 덜컥 논밭을 팔았다가 빈곤층으로 전락한 사람도 부지기수다.

    저렴한 가격과 1년 내내 라운딩할 수 있다는 장점을 앞세워 동남아 지역에는 골프장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골프장 역시 ‘수억 달러의 외화수입’이라는 통계 이면에 고통 받는 주민이 있다. 골프장 한 곳을 유지하는 데 쓰이는 살충제는 1500㎏, 물은 6만여 농가에서 쓸 수 있는 양과 맞먹는다. 골프장이 들어서면 주민들은 당장 농업용수는 물론 식수마저 구하기 힘든 상황에 몰린다.

    자연도 몸살을 앓는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연구소에 따르면 109개국의 산호초 군락 중 83%인 90곳이 크루즈 여행으로 파괴됐다. 배가 정박할 때 물리적 충돌로 망가지거나 기념품용으로 무단 채취됐기 때문이다.

    카리브해 연안은 연간 8만2000t에 달하는 쓰레기로 전쟁을 치른다. 카리브해 연안 주민들이 하루 평균 0.8㎏의 쓰레기를 버리는데 크루즈선 여행객 한 사람은 하루 평균 3.5㎏의 쓰레기를 만들어낸다. 쓰레기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 몫이다.

    ◆지속가능한 여행=이런 문제점 때문에 최근에는 생태관광을 넘어 ‘지속가능한 여행(sustainable tourism)’이 주목받고 있다. UNWTO는 지속가능한 여행을 ‘여행지의 미래를 해치지 않으면서 여행자와 현지의 욕구를 모두 충족시키는 것’으로 정의한다.

    르완다는 여러 국제단체의 도움으로 지속가능한 여행을 만들어가고 있다.

    미 월간지 아메리칸에 따르면 르완다의 비룽가 숲은 지구상에 700여마리밖에 안 남은 마운틴 고릴라의 최대 서식지다. 하지만 1950년대부터 40년간 수백명이 학살된 내전 속에 고릴라 서식지가 온전할 리 없었다. 1994년 르완다 정국은 서서히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르완다 당국과 ‘다이엔 포시 국제 고릴라 기금(DFGFI)’ 등 국제동물단체는 서둘러 고릴라 증식에 나섰다. 고릴라는 약 10년 만에 17% 늘었고, 오지 탐사객을 끌어모으며 르완다 경제의 기둥이 됐다. 6.7m 거리에 떨어져서 눈으로 구경하는 게 전부지만 한 시간 관람비가 500달러나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운틴 고릴라는 희귀성 때문에 오지탐사객의 인기를 얻어 커피, 차에 이어 르완다 최다 외화벌이 수입원이 됐다. 2004년에는 르완다 최고액가 화폐(5000프랑)의 주인공으로 등극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만원권 세종대왕 자리를 차지한 셈이다.

    고릴라는 상전이 됐지만 비룽가 주민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숲에서 작물을 기르며 살던 주민들은 고릴라에 삶의 터전을 내주고 숲 언저리로 쫓겨났다. 고릴라로부터 질병이 옮아도 치료받을 길이 없었다. 열심히 만든 기념품은 중국산으로 무장한 외국 유통망을 뚫지 못했다.

    2000년 이후 고릴라 살리기에 나섰던 국제단체들은 르완다 주민의 삶의 질에 눈을 돌렸다. DFGFI, 마운틴고릴라 프로젝트(MGVP), 아프리카 야생기금(AWF)은 비룽가 숲이 있는 비사테 마을에 학교와 병원을 짓기 시작했다. 질병 예방교육과 함께 상하수도 망까지 정비됐다. 르완다는 여느 아프리카 나라처럼 에이즈로부터 자유롭지 않지만 비사테 마을에서는 최근 2∼3년간 에이즈 신규 감염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숲을 떠나야 했던 르완다 주민을 위해 양봉이나 감자 재배기술 교육도 활발하다. 이곳 주민들이 인터넷으로 직접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도록 인터넷망도 조만간 깔릴 예정이다.

    태국 정부는 골프장으로 외국인만 배불리는 상황을 막기 위해 골프산업 투자는 반드시 태국인과 합작으로 하도록 했다. 전국에 있는 골프장 213곳은 모두 태국인 소유다. 외국인 투자자는 골프산업의 지분을 50% 이상 소유할 수 없고 토지 소유도 금지된다.

    도미니카공화국의 ‘그루포 푼타 카나’ 리조트는 유엔환경개발계획(UNEP)이 꼽은 우수사례다. 카리브해를 접한 이 고급 리조트는 전체 개발 면적의 3분의 2(100㎢)를 잘라 자연보호지역으로 정했다. 이 일대 해안가는 자연히 사람의 발길이 뜸해져 파괴됐던 산호초도 거의 원래 모습을 회복했다.

    미국과 유럽, 호주 등에서는 관광객이 호텔 대신 농가에 머물면서 유기농 작물 재배를 돕고 현지에서 직접 먹을거리를 해결하는 프로그램이 늘고 있다. 식재료 수송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즉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을 줄이기 위해서다. UNWTO에 따르면 여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총량 중 25%는 숙박시설과 식사 등에서 배출된다.

    여행자에게도 환경과 현지인에 대한 책임의식을 강조하는 지속가능한 여행은 특수한 사례처럼 보이지만 전문가들은 머잖아 보편화할 것으로 내다본다. 지속가능한 여행 시장은 매년 20∼35%씩 성장하고 있다. 국제 에코투어리즘 이사회(TIES)는 2012년쯤 지속가능한 여행의 시장 규모가 한해 4730억달러로 전 세계 여행의 25%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