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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러스맵 소식/공지사항

[여행탐구생활] 로드스꼴라, 홍대에서 연극하다

 

로드스꼴라 4기, 무대에서 '민간인 학살'을 말하다.


트래블러스맵 인턴, 쟈기

9월 9일 월요일, 인턴들이 쉬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인턴들과 함께 홍대 앞에서 만남을 가졌다. 로드스꼴라 4기 후배들이 홍대에 있는 '다리 극장'에서 열리는 '서울 카톨릭 청소년 연극제'에서 공연을 한다고 초대했기 때문이다. 로드스꼴라가 이제 홍대까지 진출하다니. 선배로서 빠질 수 없는 자리였다.

'다리 극장' 안으로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리허설이 한창인 극장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로드스꼴라 1기 선배들부터 5기 후배들, 그리고 트래블러스맵 직원 분들까지 아는 얼굴들이 많이 보였다. 관객석이 텅텅 빌지 모르니 꼭 오라던 길별들의 걱정과는 달리 남는 자리는 그리 많지 않아보였다.


"안녕하세요! 반과 흥입니다!"

'핸드폰은 꺼주시고, 애정행각은 금지'라며 무대에 오른 '나니'와 '졸리뎀'이 맛깔나게 관람 예절을 설명했다. 평소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능청스러운 연기에 모두 웃음이 빵 터졌다. 올해 초 40일 간 베트남&라오스 여행을 하며 마주하고 들었던 이야기들이 어떻게 연극으로 풀어질지 기대가 집중되었고, 드디어 본 연극의 막이 올랐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이수영이라고 합니다!"

늘 헐렁한 옷만 입던 '로냐'가 정장을 쏙 빼입고 베트남에 간 한국인 여성, 이수영이 되었다. 이수영은 공장을 지으려는 현지 한국기업의 여론조사 일을 하게 되어 베트남 중부의 한 마을로 들어간다. 하지만 이수영을 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왠지 냉담하기만 하다. 그러던 수영은 우연히 이 마을 사람들이 전쟁 당시에 한국군에 의해 학살을 당했던 것을 알게 되고 만다. 그녀는 순간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자신이 한 짓이 아니니 잘못이 없다고 당당하게 마을 주민들에게 소리친다.

 "자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지? 남조선은 박정희군대를 보내서 큰 돈을 벌었다고 알고 있어. 맞나? 그 돈으로 한국은 훨씬 더 잘살게 됐지. 이렇게 남의 나라까지 와서 공장을 지을 정도로 말이야. 우리나라에서 사람 죽여 번 돈으로 남조선 사람들을 먹여 살린 건데. 자기는 사람을 안 죽여서 잘못이 없다고? 난 대체 이 잘못을 누구한테 따져야하는지 모르겠어..."

아주머니 분장을 한 '고운'이 베트남 여행에서 들은 이야기를 무대로 가져와 관객들에게 외쳤다. 


그 후 이수영은 일을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고, 마을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위령비에 참배를 하러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마주친 마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 사실 마을 일에 대해 다 알고 있어요. 근데 모른 척 했어요. 믿으려고 하면 내 마음이 아파서 그런 내 자신을 보는 게 너무 힘들어서 모른 척 했어요. 저는 그것들을 누릴 만큼 누려 놓고 내 마음이 아프다고 학살을 없었던 일로 취급하고 있었어요. 제가 지금 제 생각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저와 베트남전쟁과 학살이 이어져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시작해보고 싶어서 이 자리에 나오게 되었어요.”

그런 이수영의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은 천천히 이수영에게도 향을 내민다. 그리고 한명 한명 향을 꼽으며 함께 위령제를 지내는 걸로 연극은 막을 내린다. 4기 떠별들이 여행에서 마주한 베트남 전쟁에 대한 생각들과 직접 대본을 써가며 겪었을 고민들이 이수영의 길고 긴 마지막 대사를 통해 슬그머니 전해졌다.  


줄거리만 스윽 훑으면 진지하기만 할 것 같은 연극이지만, 숨을 죽이며 집중할 때 쯤이면 어김없이 나온 덩치 산만한 남자 떠별들의 '5세 어린이' 연기는 관객을 한바탕 웃기기 충분했다. 배우들이 극 중간에 불렀던 '베트남 동요'도 연극이 끝난 후 관객들의 입에서 흥얼거리게 할 만큼 중독성이 있었다. 

 

 

 커튼콜이 끝나고 두 번의 박수를 받은 후에도 관객들은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결국 무대 뒤로 사라졌던 4기 떠별들이 다시 나와 '제발 집으로 돌아가라'며 소리 지르는 재밌는 상황도 벌어졌다. 그런데도 나는 왠지 엉덩이를 들 수 없는 이상한 여운이 계속 남았다. 11월 말에 베트남 페스티벌에서 뮤지컬로 재탄생 된다는 데, 또 어떤 이야기들로 웃음과 감동을 줄 지 기대해본다.


* 공연이 있은 며칠 뒤, 로드스꼴라 4기의 연극 '어느 날의 일'이 '제2회 서울 카톨릭 청소년 연극제'에서 '우수상'을 받았답니다. 축하해요. 짝짝짝!!

<로드스꼴라 베트남 페스티벌>
일시 : 11월 28일(목) ~ 11월 29일(금)
장소 : 홍대 '포스트 극장 (창무 극장)'
* 더 자세한 일정은 차후에 공지 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