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트래블러스맵 소식/공지사항

[여행탐구생활] 맵만의 색이 가득한, 톡톡튀는 오대산 수학여행

 

 

by 국내여행팀 칼리


중학교 3학년 이후로 수학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줄곧 초,중,고 연령대의 아이들과 먹고 자며 씨름하는 일을 해왔건만 막상 대안학교에 있지 않은 청소년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는 근 13년 동안 본 적이 없다. 오늘도 내일도, 버스정류장에서 거리에서, 교복을 입은 아이들을 매일매일 마주치건만. 눈앞에 있으나 가 닿을 수 없는 다른 세상. 맵에서 진행하는 수학여행을 따라가게 되었을 때 내가 가장 기대한 것은 그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도대체, 수학여행이란 어떤 것일까?

 2박3일간의 오대산 수학여행은 6학년 친구들 60여명과 함께했다. 첫날의 일정은 오대산 국립공원에서 월정사와 상원사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국립공원의 풍경이나 숲 해설사 선생님의 설명보다는 여행 그 자체의 들뜸과 버스 안에서의 간식에 더 집중하는 듯 보인다. 산길을 걷고, 그 안에 있는 절을 둘러보고, 그 고요함을 즐기는 것을 초등학교 아이들과의 단체여행에서 바라기는 어렵겠지. 산길을 걷고 또 쉬면서 몸이 지치고 그러다가 다시 힘이 나기도 하는 그런 리듬을 느껴보는 것, 지금은 지루하기만 한 오르막길이지만 걷고 또 걷다 보면 그것을 즐기게 되기도 하는 그런 과정을 알아가는 것.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 선생님, 같은 반 친구들이랑 다 같이 떠난 여행, 버스 안에서 이미 몸이 지쳐 산책길에서는 늘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수학여행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재잘재잘 떠들어 대고 버스 바닥이 버석대도록 과자를 뜯어 먹고 까무룩 잠들었다가 문득 깨어보면 버스는 다음 여행지에 도착해 있다.

 오대산 국립공원에서의 일정을 마친 후 버스는 동강을 향해 달린다. 동강의 가파른 곡선을 따라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사이에 아이들은 몇 번 씩 잠에 들고 깨기를 반복한 것 같다.


 


 둘째날, 아이들은 차가운 동강에서 온몸을 적시며 놀고, 동굴 속으로 기어들어가 이제껏 단 한 번도 본적 없는 신기하고 이상한 것들을 구경하게 된다.
 

 동강 레프팅이 시작되자 아이들, 선생님들의 표정은 활기가 넘친다. 1시간 가량의 레프팅 코스 동안 같은 조 친구들끼리 으쌰으쌰 노를 젓고 차가운 강물에 옷을 적시기도 하면서 몸을 풀고, 계곡물에 들어가 그물로 민물고기를 잡아보는 것으로 오전 일정이 마무리된다. 계곡물에서 나오는 아이들 표정이 뽀얀 것을 보면, 물놀이 또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백룡동굴로 향했다. 동굴 탐사를 위해 위아래가 붙은 빨간색 탐사복으로 갈아입고 고무장화와 헬멧, 렌턴과 벨트를 착용한다. 길을 나서는 아이들 모습이 사이좋은 두더지들 같다. 보트를 타고 3분 정도 가면 바로 백룡동굴 입구가 나온다. 차가운 공기가 불어나오는 동굴 입구에 옹기종기 웅크리고 앉아 동굴해설사 선생님의 안전교육을 듣고 나서 본격적인 동굴탐사를 시작한다.
 단체여행에서 아이들의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몸을 움직여야 하는 프로그램이 있을 때 아이들한테서 저희들끼리 뛰어놀 때의 활기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사실은 나도 그렇다. 동굴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축축하고, 어둡고, 조명들은 왜 그리 휘황찬란한지. 그러나 백룡동굴은 달랐다.
 백룡동굴 안에는 조명이 없다. 보통의 동굴에서 볼 수 있는 조명, 계단들도 없다. 최소한의 이동과 안전을 위한 장치만이 되어있을 뿐이고 우리들은 마치 동굴을 처음 발견한 사람처럼 동굴 안으로 기어들어가게 된다. 머리에 쓴 랜턴과 동굴 해설사 선생님의 손전등만이 길을 밝히는 유일한 불빛이다. 석순을 피해 오리걸음으로 걷다가 어느 순간에는 낮은 포복으로 좁은 개구멍을 지나가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에 동굴 해설사 선생님은 동굴 구석에 숨겨진 보물 같은 것들을 찾아내 아이들에게 보여주신다.
 이건 레이스 커튼이야. 저기 원숭이가 있어. 이건 케이크야. 세상에서 제일 비싼 케이크. 혹시 잘못 건드려서 저 케이크가 상하면 천만원 내야 된다.
 동굴 안의 자연물들을 훼손하면 안 된다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는데 천만원 내야 된다는 이야기와 저 케이크와 원숭이가 만들어지는 데 천년이 걸린다는 이야기 중 어느 쪽이 아이들을 설득시킨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길을 지나갈 때에도 주변의 돌, 물건들을 함부로 잡지 말라고, 아무것도 만지지 말고 걸어가라는 이야기를 아이들이 제법 잘 지킨다. 미끄러운 진흙바닥을 걷는 와중에도 아이들이 천장이나 옆에 잡을 만한 것들을 찾지 않고 바닥만 손으로 짚어가며 걷고 있다. 그렇게 동굴의 끝까지 걸어가면 광장이 나온다.

 


 아찔한 절벽 주변으로 장관이 펼쳐진다. 동굴 안에서 스스로 이루어진 조형물의 모습이 오래전에 사라진 고대도시를 만나는 것 같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이루어진 너무나 아름다운 것들, 만약 우리가 찾지 않았다면 아무도 몰랐을 것들. 같은 단어로 표현을 하지는 않겠지만 결국 아이들에게도 같은 감상이 남을 것이다. 배를 타고 물길을 지나 동굴의 입구를 찾고, 그 동굴 안으로 조심조심 기어들어가 가장 깊은 곳에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을 보게 되는 것.
 선생님은 잠시, 20초만 모든 랜턴을 끄고 이 동굴이 얼마나 깊은지, 그 어둠이 얼마나 깊은지 느껴보자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보자고. 그러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한번 느껴보자고.
 아이들은 무섭다며 옆에 친구가 있는지 확인하고 자잘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러다 불을 켜면 말한다. 재미있다고, 한번만 더 불을 꺼보자고. 선생님은 요청에 선뜻 응하고 다시 한 번 불을 끈다.

 이런저런 동굴보물들-원숭이, 촛불, 레이스-를 발견하며 동굴로 들어가는 길은 제법 시간이 걸렸지만 갔던 길을 되짚어 나오는 것은 그보다 빨랐다. 작은 구멍을 다시 기어서 나오고 들어갈 때는 기어 올라갔던 미끄럼틀을 나올 때는 타고 내려온다. 동굴을 걸어 나가는 아이들의 탐사복 엉덩이에 진흙자국이 나 있다. 미끄럼틀 타고 내려온 진흙자국, 어떤 아이들은 그 진흙을 가지고 놀다가 서로의 옷에 손자국을 내 주기도 하고. 들어갈 때는 시원하다고 좋아했던 동굴의 기온이 춥다고 느껴지자 금세 언제 나가냐며 아우성이다. 곧이어 동굴 입구에 도착하고,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습기와 함께 더운 공기가 밀려들어온다. 이때에도 아이들 반응은 즉각적이다. 방금 전까지 춥다고 징징대던 아이들이 소리친다. 아, 너무 더워요!

 첫 번째 날은 산을 걸었고, 두 번째 날은 강에서 물길을 타 보기도 하고 동굴에도 들어가 보았다. 마지막 날 오전은 강원도의 문화와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영화촬영지와 박물관들을 둘러본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 촬영지를 첫 번째로 보고 그 다음엔 탄광문화촌과 초등교육 박물관을 둘러본다. 어디를 가던 아이들은 놀 거리를 찾아낸다. 탄광문화촌에서 가장 환영받은 것은 탄광촌 세트 안에 있던 땅따먹기. 초등교육 박물관에서는 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는 평균대와 공과 방망이. 또한 마지막 순간까지 아이들이 가는 곳, 들르는 곳에는 간식과 매점이용의 장벽이 우리를 기다린다. 가는 곳마다 매점을 털어버리는 아이들. 그래서 마지막 순간까지 줄 세우고, 차를 조심하라고 이르고, 다른 사람 말을 잘 듣자고 읊어대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서울로 들어오는 4시간 가량의 시간 동안 여행의 흥분과 설레임이 일상의 시간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게 느껴진다. 어떤 아이는 오는 내내 도착시간을 애타게 물어대더니 어느 순간엔가 ‘도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고 말한다. 집에 들어가면 공부해야 돼서, 친구랑 더 놀고 싶다며 더 늦게 도착했으면 좋겠다는 거다. 그냥 엄마한테 오늘 친구랑 놀고 싶다고 말하고, 천천히 집에 들어가라고 함께 오신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2박3일간의 만남은 짧고, 짠했다. 이렇게 함께 여행했는데도 여전히 가 닿을 수 없다는 느낌. 그래도 너희는 복도 많다. 그래도 더 놀라고 이야기해주는 선생님들이랑 같이 있으니까. 우리와 함께 했던 수학여행이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이 2박3일이 다른 여행들과 구별되는 어떤 특이한 기억으로, 묻혀있다가도 어느 날 문득 뇌리를 스치는 그런 유년의 기억들 중 하나로 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