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팍팍이와 떠나는 바우길 여행 ::
안녕? 난 공정이의 반려견 팍팍이라고 해!
내 주인은 여행을 무지무지 좋아해. 근데 얼마 전부터는 좋아하는 것을 좀 더 건강하게 하고 싶다고 하더니 뭐라나, 공정여행?을 하는데, 아직 익숙치 않아서 어찌나 빼먹는 것이 많은지...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챙겨주면 안 돼. 개인 수저, 물통, 손수건 등등... 가끔씩은 내가 공정이의 주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니까?
그런 주인이 요번엔 '강릉 바우길'이란 곳을 가겠대. 제주올레길을 많이 들어봤는데 바우길? 어디지? 하고 공정이가 컴퓨터 할 때 옆에서 같이 유심히 보니, 우와 온통 흙길인 거야! 게다가 내가 뛰어놀 수 있는 초원도 있어! 마지막엔 바다도 보고 온대~ 우으으 좋아좋아.
도시의 갑갑한 빌딩숲에 지친 나는, 특히 선자령에 매료됐어. 결국 공정이에게 나도 데려가 달라고 애원했지. 슈렉의 장화신은 고양이 눈빛 스킬로! 결과는? 뻔하지~ 그 스킬에 이길 자 누가 있겠어. 나도 이번엔 당당히 공정이의 여행동반자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네!
전세버스를 타고 3시간을 달려서 바우길 초입 도착. 날 내려줘! 날 내려달라구!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내리니 온통 푸른 하늘밖에 안 보였어. 바우길이 지대가 높은 곳에 있어서 그런지, 하늘이 내 손에 닿을 것만 같아 자꾸만 뛰게 되더라.
"어이구 저 놈 봐라. 얼마나 좋으면 팔짝팔짝 뛰댕기나."
옆에 있던 한 아주머니의 말에 정신이 든 나는 쬐끔 부끄러워져서 슬금슬금 공정이 옆에 다가갔어. 근데 공정이도 이미 넋이 나갔더라구. 손을 하늘로 뻗은 채 말이야.
[흙]
"팍팍아! 얼른 일어나~"
앗, 이거 참. 나도 모르게 햇볕 담뿍 받은 따땃한 곳에서 몸을 부비고 있었네. 공정이의 목소리를 따라 가니, 이미 인솔자 분은 바우길에 대한 설명을 요모조모 해주고 계셨어. 나는 당근! 안 들었쥐~ 온통 얼른 걷고 싶다, 뛰고 싶다. 라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거든. 아! 하나 들었다. 오늘 걸을 코스는 바우길 1코스라는 거.
"자 그럼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인솔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앞으로 튀어나갔어. 아, 그 폭신폭신한 흙의 느낌이란! 맨날 거칠거칠 딱딱한 아스팔트와 시멘트 길을 걷느라 힘겨웠던 내 발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어. 예전에, 공정이가 국토종주 할 때 따라갔다가 온통 도로로 걸어서 얼마나 고생했었는지. 안 그래도 발 아파 죽겠는데 차는 옆에서 빵빵 거리지, 매연 냄새는 매캐하지. 게다가 좀만 잘못 걸었다간 자칫 사고 나겠더라구.
한 걸음 한 걸음 꾸욱꾸욱 흙길에 내딛을 때의 촉감. 정말 오랜만이었어. 흙에 찍힌 내 발자국을 보는 것도. 우리나란 사람한테나 개한테나 왜 이렇게 걷는 즐거움을 뺏는지 몰라.
[바람]
드디어 선자령 정상! 정말 이름처럼 바람이 가득한 곳이더라! 풍성한 바람이 내 몸 구석구석을 쓰다듬고 지나가고 있었어. 무시무시한 속도로 말이야.
"아고 날아가겠다~"
뒤에서 공정이는 택도 없는 소리를 하고 있었고, 나는 바람을 더 느끼고 싶어서 네 다리를 쫘악 펴서 꿋꿋이 서 있어봤어. 귀 밑, 겨드랑이, 등골, 내 털 하나하나에 바람 냄새가 스며들도록.
"아~ 좋다~"
옆을 보니 다른 여행자들 모두 팔다리를 쫙 벌리고 바람을 한껏 느끼는 거 있지! 오~ 여행 좀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인걸? 그래, 이런 곳에 와서 온몸을 움츠리고 있다는 건 말이 안 돼. 언제 또 이런 바람을 느껴보겠어?
[숙소_잠깐, 공정이의 시선]
첫 날 일정이 끝나고 조금 지친 몸으로 숙소로 들어왔어. 옆에서 헥헥거리는 팍팍이는 숙소 근처 보드라운 잔디가 깔린 정자에 쉬게 두고, 나는 땀에 젖은 몸을 씻으러 갔지. 숙소는 바우길 게스트하우스라는 곳이었는데, 게스트하우스 치고는 시설이 너무 좋은 거야! 되게 깨끗하고 난방도 잘 되고.
더운 물을 아껴가며 몸을 씻고(공정여행자의 자세!) 다른 여행자들보다 일찍 식당으로 들어가니, 여기저기 도자기와 계절에 맞는 꽃들로 공간이 예쁘게 꾸며져 있었어!
솜씨와 감각이 예사롭지 않아 식당 이모님한테 여쭤보니 다 본인이 했다고 하시더라구. 도자기랑 꽃 모두 이모님이 만드신 거래! 우와우와.
저녁 차리는 거 도와드리면서 이것저것 여쭤보고 말을 나누니 앗, 이 이모님 말솜씨가 보통이 아닌 거야. 저녁에 나온 강원도식 담백한 백반도 정말정말 맛있었지만, 나는 여행자들 모두 까르르 웃게 만드는 이모님이 훨씬 좋았어. 음악이면 음악, 강원도 옛 이야기, 음식, 도자기, 뭐하나 모르시는 게 없더라구. 몇몇 여성 여행자 분들은 이모님한테 이것저것 음식 조리하는 노하우와 비법을 얻어가기도 했지. 다음에 친구들한테 바우길에 오면 꼭 이모님이랑 수다를 떨라고 해야겠다. 아, 한가로운 저녁이야^-^
[이순원 작가와 함께 하는 문학 이야기]
"안녕하세요~"
그렇게 한참 수다를 떨고 있는데, 누가 부드러운 강원도 억양으로 인사를 하며 들어오시는 거야. 엉겹결에 따라 인사를 하긴 했는데, 누구지? 하고 여행자들 머리에 물음표가 뜨자 인솔자가 이순원 작가님이라고 소개해줬어.
앗앗앗! 정말?! 아, 맞다 저녁엔 이순원 작가와 함께 하는 문학 시간이랬지...
대충 이순원 작가님 중심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어. 여행자들 앞엔 인솔자가 준비해준 따뜻한 차 한 잔이 놓여져 있었고, 작가님은 시종일관 웃으시며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내셨어.
옛날, 바우길 게스트하우스가 자리 잡고 있었던 보광리의 풍경. 사람들이 수레가 들어올 수 있도록, 차가 다닐 수 있도록 조금만 더 넓히자고 하며 걷는 길들이 결국 죄다 없어진 과정. 친환경적인 길 만들기. 그런 이야기들을 쭉 풀어내시고 중간중간에 작가님의 작품을 골라 몇 장을 읽어주셨지. 마치 외할머니댁에 가서, 외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옛 이야기를 조곤조곤 듣는 느낌이었어. 편안한 분위기. 사람을 압도하지 않고 같은 눈높이에서 재미나게 들려주는 강원도 옛 이야기. 이어지는 글 낭독. 아, 너무 좋았어. 다른 여행자들도 피로 때문에 약간 지쳤던 눈이 다시 또랑또랑 생기가 돌아오더라구.
나만 이런 좋은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 팍팍이에게 좀 미안했어. 그래도 내가 꼼꼼이 적고 있으니까, 나중에 집에 가면 팍팍이에게 죄다 들려줄거야! 기대해 팍팍아!
[길은 당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_다시 팍팍이의 시선]
"팍팍아~"
나를 버리고 어제 식당에서 재밌게 수다 떨던 공정이... 나는 기억하고 있다. 어젠 거들떠 보지도 않았으면서 자기 필요할 때만 부르고! 됐어, 나 완전 삐졌어! 흥!
"안 오면 두고 간다!"
...결국 투덜대며 공정이 옆으로 갔지, 에휴. 공정이는 내가 토라진 걸 눈치챘는지 내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새 얼굴을 소개시켜줬어.
"저 분이 이순원 작가님이야. 오늘 하루 길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실 거래."
헤엥~ 그렇구나. 킁킁. 음, 냄새는 나쁘지 않은데? 왠지 좋은 사람 같아.
어제처럼 뛰었다간 금방 체력이 바닥날 테니, 오늘은 좀 자중하기로 했어. 그리고 사실 이 새로운 사람이 궁금하기도 했거든. 오늘 하루 졸졸 쫒아다녀야지- 하고 이순원 작가님 발을 보며 쫒아가다가, 갑자기 그 사람이 멈춰서는 바람에 하마터면 머리를 찧을 뻔했지 뭐야. 에잉.
"자 여러분, 여기 사친시라고 있지요? 이게 신사임당이 고향에 두고 온 어머니를 그리며 썼던 십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 바탕에 조악한 글씨가 써져있는, 좀 멋대가리 없는 판대기가 떡하니 세워져 있는 거야. 뭐야 이거. 내가 만들었어도 이거 보단 잘 만들었겠다. 근데 이순원 작가님 말씀을 들으며 그 판대기를 보니, 좀 달라보이는 거야. 정확히 말하면 그 판대기가 아니라 거기에 적혀있더 '사친시'지. 혼인을 하고 어머니를 고향 강릉에 두고 한성으로 상경한 후 느꼈던 그리움이 절절이 느껴졌어. 지금도 차로 3시간 이상씩 달려야 강릉에 올 수 있는데, 그 때는 어땠겠어. 거의 영영 작별이지. 나도 엄마 보고 싶다 훌쩍훌쩍.
그런 식으로 이순원 작가님은 차례차례 이 길에 얽힌 이야기들을 해주셨어. 김홍도가 대관령의 경치에 반해 그렸던 그림 설명도 해주시고, 알 수 없는 나무가 나타날 때면 그 나무 이름이랑, 근처 식생들도 줄곧 이야기해주셨지. 저 나무는 곧 잘릴 나무다. 이 숲은 사람이 잘 못 심어서 촘촘해진거다 등등. 주변 마을들이 옛날엔 얼마나 가난했는지도.
나는 길이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줄 줄 몰랐어. 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소리치고 있었는데. 사람보다 훨씬 좋은 내 귀에도 잘 안 들렸으니, 다른 여행자들은 얼마나 신기했겠어. 공정이야 뭐, 이미 옛날부터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던 건 말할 것도 없고.
[마지막]
바다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틀뿐이었지만 정말 즐거웠어. 사실 좀 더 남아서 맘껏 뛰고 싶었는데... 어쩌겠어, 우리 집은 서울인 걸.
공정이랑 둘이 오는 것도 좋지만, 다음번에 공정이의 친구 제로랑도 오고 싶은 마음이야. 좋은 것은 사람들과 많이 나눌수록 더 좋아지니까. 이런 여행방식도 되게 맘에 들구. 앞으로 공정이를 자주 따라다녀야지~:)
* T i p !
바우길 2코스에는 독특한 마을이 하나 있어. 어흘리라는 곳인데, 집집마다 앞에 화분을 꾸며놓은 게 얼마나 예쁜지 몰라. 나무로 멋들어진 울타리를 세우고, 정원을 근사하게 꾸민 곳도 있고, 각종 꽃들을 집 앞에 소담하게 심은 곳도 있고. 커다란 나무 옆에 감각적으로 땔감을 쌓아놓은 분도 계셔. 작은 마을이라 한적하기도 하고, 내가 뛰어다녀도 하나도 안 위험해! 다음에 또 다시 바우길에 가면 꼭 들르고 싶은 마을이야.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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