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한두 번 있는 워크숍 자리에서 나는 "지혜의 식탁" 이란 걸 제안했다. 회사 사람들의 첫 반응은 ”그건 뭥미?“였다. 직급도 아니고, 근무 연차도 아니고, 주식 소유 여부도 아닌, 그저 나이 수로 40을 넘긴 사람들이 모여서 무언가 개개인들에게 평가 비스름한 것을 할 터인데, 그것의 이름은 또 난데없이 ”지혜의 식탁“이란다. 지혜는 무엇이고, 식탁은 또 무엇인가. 사람들 머리위로 물음표가 뽕뿅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다른 회사로 보면 일종의 인사평가 테이블에 해당할 테다. 너 작년에 얼마 벌었니? 지각은 몇 번 했고? 팀장 말은 잘 들었니? 성과는 뭐니? 영어 공부는 좀 했니? 팀장 얘 일 잘했어? 이런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오고 간다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내려 받는 자리가 그 인사평가 테이블이다.
그런 것은 하고 싶지 않았다. 지각 몇 번 했는지로 근태 따져 평가하는 조직이 잘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자주 지각하는 게 좋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은 한 가지 징후일 뿐이다.)
트래블러스맵은 사회적기업이다. 그래서? - 모르겠다. 사회적기업이어서 뭘 어떻게 해야하는 지, 사실은 대표인 나도 잘 모르겠다.
사회적기업에서 인사관리, 노무관리란 무엇인가? 인사와 노무가 꼭 관리를 해야하는 일인가? 그럼 관리를 안해도 되는 건가? 여태까지의 모든 영리적 기업들은 그럼 쓸 데 없는 일을 해왔나? -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어디에서도 그 답은 찾을 수 없었다. 사회적기업은 다른 세계와 다른 논리와 다른 조직을 꿈꾸지만, 그것은 이제 막 만들어지고 있을 뿐이다. 우리 스스로 사례가 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이 평가는 아니었다. 평가는 참 쉽다. 잘 한 것에 상을 주고, 못한 것에 벌을 주면 된다. 여태까지의 조직들(영리적이든 비영리적이든)은 이 상과 벌을 통해서, 특히 경제적 보상과 징벌을 통해서 사람들을 훈육시켜왔고,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선의 방책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왜 누구는 잘 하고, 누구는 잘 하지 못하는가. 의욕은 있으나 일은 잘 못하는 사람과, 일은 잘하는 데 의욕은 없는 사람 중 무엇이 더 좋은 것인가. 일은 남들보다 두 배 더 하지만 독단적이어서 고립되어 있는 사람과, 일은 남들 반 밖에 못하지만 포용적이어서 모두를 아우르는 사람 중 어떤 사람이 조직에 도움이 되는가. 한 개인의 측면에서도, 왜 그는 어떤 것은 잘 하는데 어떤 것은 못하는가.
업무 성과를 기준으로 한 그런 평가가 과연, 이 복잡한 인간세계의 정신적이며 관계적인 측면들의 일부라도 반영할 수 있을까. 혹은 그런 영혼이 없는 평가가 조직에 진정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실은, 상벌 중심의 평가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 아닐까. - 그에 대해서 내린 나의 답은 ‘평가’가 아닌 ‘지혜’였다. 각각의 사람들과 함께 문제를 설정하고, 근원을 찾아보고, 하고 싶은 것을 연결하여, 조직과 개인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혜’였다.
업무평가가 아니기에 팀장과 부장, 대표가 면담하는 방식 대신 다른 구조가 필요했다. 조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을 모아야 했다. 지혜롭다는 것. 현명하고, 슬기롭고, 여유롭고, 포용적이며, 그러나 결단력 있는 해결사들. 그것을 가늠함에 있어 내게 떠오른 가장 중요한 지표는 삶을 살아온 세월의 길이였다. 모두에게 평생 꼬리표 붙어있는, 누구나 무시하고 싶어 하지만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운명의 굴레와도 같고 삶의 깊이와도 같은, 나이라는 것. 나는 나를 포함한 불혹을 넘긴 이들 모두를 ‘지혜인’으로 발탁했다. (결국 한 분은, “자신에게는 지혜가 없다”며 끝끝내 발탁을 거부하셨다. 하지만 내심 무척 함께 하고 싶어했음도 잘 안다.)
지혜인들 여섯 명이 트래블러스맵의 자유로운 영혼들 중 1인씩과 나누는 테이블. 그 ‘테이블’의 이름을 아무리 한국말로 떠올려 보아도 ‘식탁’이라는 이름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지혜, 그리고 함께 따뜻한 음식을 먹는 자리. 그 은유적 유사성이 나를 지배했던 모양이다. 결국 그 자리의 이름은 “지혜의 식탁”이 되었다. 참 뜬금없었는데요 무던히 그냥 그 말을 받아준 트래블러스맵 사람들에게 뒤늦게 감사드린다.
나는 칭찬의 효과를 무척 신뢰하나 칭찬을 잘 못한다고 평가받는다. 내가 칭찬의 효과를 ‘무척’ 정도로만 신뢰하기 때문인 듯하다. 나는 때로 쓴 소리, 거친 말, 비판적인 지적도 고래를 춤추게하는 칭찬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혜의 식탁에서는 서로가 힘을 주는 이야기들로만 가득하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때로 흠뻑 칭찬과 신뢰의 바다에 빠져서 행복해져야 한다. 모든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바다와 같은 품에서 주어지는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는 것이다. 물론 그저 꿈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2년의 시간을 지나가고 있는 트래블러스맵의 지금쯤에는, 그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 아닐까?
지난 시간 동안 그 모든 어려움들을 함께 헤쳐왔고, 또 앞으로도 헤쳐갈 트래블러스맵의 모든 식구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하며 영광스럽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내일 보기 참 쑥스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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