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위에 접시안테나가 있는걸 보니 아직 사람들이 살고 있는 듯 하다.
자연에 기대었기 때문에 자연의 현상때문에 떠나야 하는 일도 발생함은 어쩔 수가 없다. 사람이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건물의 잔해 너머 고층 빌딩이 불쑥 솟아나 있다.
머리 위로 항공기가 관광객을 열심히 실어 나른다.
사진촬영의 불편함.
모래 산 위에 있는 동네는 좀 삭막했다. 쓰레기가 타고 있어 케케한 냄새가 났고, 연기 틈 사이로 쓰레기를 줍는 아이들이 보였다. 곧 무너질 것 같은 절벽 위에 비닐봉지를 바람에 날리는 아이들이 위험하게 보였고, 동네 어귀에는 쓰레기가 오래된 듯 방치되어 있었다. 사진을 촬영하기 너무나 좋은 소재들이다. 폐허가 된 동네, 무너진 산, 순박한 사람들, 가난한 곳에서의 해맑은 아이들의 미소, 놀이, 호기심, 쓰레기 더미 위의 아이들. 좋은 사진임을 보장해 줄 것 같은 풍경들이 널려 있었다. 물론 아이들의 사진도 쓰레기장의 사진도 찍지 않았다. 위에서 말한 사진을 촬영 할 경우 촬영된 사진이 왜곡 되서 쓰이거나 보이는 경우가 많아 서이다. 여기서 말하는 왜곡이란, 아이들의 사진이 동정심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보는 사람의 안도감을 준다는 현상과 함께,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삶과는 무관하게 보는 자들의 삶의 입맛에 맞춰 사진이 각색된다는 것이다. 그들의 삶이 방식이 존재할 것 인데, 그 존재 방식을 깡그리 무시하고 ‘가난한 아이들의 삶’ 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매우 폭력적인 사진적 행위이다.
가난한 아이들을 촬영해서 전시하는 것은, 가난한 자의 삶을 조명해서 결국 복지에 손길이 미치게 한다는 이상한 자기합리화의 발언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것은 자신의 멋진 사진을 만드는 것은 저들의 가난이고, 내 사진 안에서 그들은 가난을 가진 채 움직이지도 않고 얼어붙어 버리는 사진의 속성을 은폐하는 거짓 진술이다. 그렇다면 사진을 촬영하지 말아야 할까? 뉴스 사진이나 미디어의 속성이 강한 사진가였다면 주저하지 않고 가난을 촬영하고 가난을 공표했을 거다. 촬영 할 것인가? 말 것 인가?의 문제로 몰고 가는 것은 내가 말하는 바가 아니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기를 위해 남의 삶을 희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삶의 기본적인 윤리이다. 사진의 촬영에서부터 보여지기 까지 우리는 늘 고민해야 한다. 사진을 촬영하는 일은 늘 불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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