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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국내

[전라남도] 몸과 마음을 다독거리는 여행, 백련사 템플스테이

* 글쓴이 : 트래블러스맵 여행기획자 주이(이주희)
* 이 글은 채식주의잡지 비건 12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열풍같이 불었던 걷는 여행길. 매서운 바람이 콧잔등에 내려앉으니 잠시 머뭇거린다. 발검음이. 하나 춥다고 웅크리면 시절(時節)에 대한 예가 아닌 것을. 그래서 머물렀다. 몸을 뉘이고 마음을 기댈 수 있는 남쪽 땅 어느 오랜 사찰에서.

 

 

똑똑또르르
  어둠이 여전히 세상을 감싸고 있는 새벽, 곤한 잠을 자고 있는 여행객들을 깨우는 청아한 목탁소리가 산사(山寺)의 아침을 울린다. 얼른 세수를 하고 옷 매무새를 다듬고 본당으로 건너간다. 절 마당을 가로질러 걷다보면 발밑에 밟히는 자갈돌이 자그락자그락 또 한번 잠을 깨운다. 고개를 들어 저 멀리 어스름하게 보이는 구강포에 한번 시선을 던진다. 조금씩 날이 밝아오면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은 물안개가 구량포를 덮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본당에는 이미 불상 앞에 반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는 부지런한 여행객도 보인다. 새벽의 청량한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뱃속 깊은 곳에 고여 있는 숨까지 길게 내쉬는 호흡에 집중하며 명상을 하는 것이 새벽잠을 깨우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백련사 템플스테이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자연의 품 안에서 어두과 빛 사이의 시공간을 느끼며 산사에서만 맛볼 수 있는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고 익숙하지 않은 시간대 덕에 몽롱함과 명랑함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말이다.

 

 

백련사의 차(茶)를 보내달라 떼쓰던 다산
 백련사는 전라남도 강진군 만덕산 중턱에 위치한 절이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4시간여를 달리다보면 화려하고 웅장한 월출산의 스카이라인이 방문자를 미리 반겨주는 강진은 예부터 남도의 입구, 남도 기행의 1번지로 이름난 곳이다. 녹차 하면 보성이나 제주도를 먼저 떠울릴 테지만 이곳 강진도 뛰어난 질의 차(茶)를 생산하고 있는 곳이고, 강진의 차에는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초의선사, 혜장선사의 교류와 우애가 깃들어 있기도 하다.

   특히 백련사는 한양에서 유배 온 다산 정약용을 다도의 길로 접어들게 했던 아암 혜장선사가 머물렀던 절로 다산이 11년 동안 기거한 다산초당과 도보 2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아암의 차는 유배시기의 다산에게 단순한 마실거리 이상의 마음 안정제, 때로는 몸의 병을 치료하는 약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차를 제 때에 보내주지 않으면 다산은 어린아이처럼 차를 보내달라 떼를 쓰는편지를 보내기도 했는데, 백련사에서 차를 한 잔 마시다 보면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

  다산과 아암이 학문을 교류하고 담소를 나누며 함께 마신 차 맛은 여전히 이어져오고 있어 야생차밭에서 스님들과 보살님들이 직접 손으로 따서 만든 녹차, 황차, 떡차를 여행객들은 백련사에서 시음해볼 수 있다. 산 속의 청량한 공기 탓인지, 물이 좋은 탓인지, 야생차밭에서 손 수 딴 그 정성 때문인지, 아암과 다산의 이야기 때문인지 몰라도 백련사 차 맛은 깔끔하면서도 입 안에 남아 있는 감칠맛이 자꾸 ‘한 잔 더’를 외치게 하는 매력을 갖고 있다. 차(茶)가 차(茶)를 마신다는 말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될지라도 내 손은 다관에 새로운 찻물을 자꾸 다르게 된다.

 

 

 

 

불교문화 따라, 강진 자연 경관을 따라
  백련사 템플스테이는 다른 절에서 진행하고 있는 템플스테이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절 안에서만머무르며 불교예절과 문화를 체험하는 템플스테이가 아니라 백련사 밖에 산재한 풍부한 불교문화유산과 남도의 자연을 직접 보고 만지고 듣는 찾아가는 남도기행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련사 일담스님의 가이드로 아암이 40세의 이른 나이에 열반에 든 대흥사 북미름암을 방문해 아암의 흔적을 더듬어 보고 고려시대에 조성된 거대 마애불상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그 앞에 앉아 명상을 해 보는가 하면, 주작산을 넘어 해남 도림마을로 가는 옛길을 걸으며 내 걸음에 맞춰 호흡을 조절해보는 도보명상, 손끝을 스치는 찻잎을 느끼며 강진 성전마을에 넓게 펼쳐진 차밭을 걷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백련사 근처에 위치한 다산초당을 숲길을 걸어 방문할 때 운이 좋다면 백련사의 식구, 정진이(백구)의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도 있다. 앞서 걸으며 여행객이 뒤쳐질 때마다 뒤를 돌아보며 기다려주는 친절한 인솔자 정진이의 안내를 받으려면 교감과 믿음을 사전에 쌓아두는 것은 필수다. 정진이에게는 주지스님을 따라 암자에 올라가는 대신 선택할 만한 일이니까.

 

 

마음을 다독거리는 템플스테이

  도시 생활의 번잡함에서 마음의 여유를 잃어 갈 때, 인풋 없는 아웃풋만을 강요당하는 직장이나 학교에 지쳐갈 때 백련사 템플스테이는 마음의 여백을 만들어주고 채워주는 시간을 여행자에게 선물한다. 절의 텃밭에서 자란 유기농 채소를 재료로 보살님들의 정성을 양념으로 버무려진 백련사에서의 공양은 여행객의 마음뿐만 아니라 허한 뱃속도 든든하게 채워준다.

  목탁소리로 하루를 시작하고 다산과 아암의 이야기가 담긴 따뜻한 차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2박 3일, 건강한 먹거리로 채워진 밥상으로 몸과 마음을 다독거리는 백련사 템플스테이는 불교문화와 강진의 매력을 오감으로 만날 수 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