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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러스맵 소식/공지사항

[여행탐구생활] 여행기획자 발끝 따라잡기 - 가재 편

 

 

‘로드스꼴라 여름학교, 길 위의 인문학당 시즌 1-지리산&구례’를 기획하며

트래블러스맵 인턴 가재

 

처음엔 시큰둥했습니다. 구례에서 이야기 해주실 선생님을 찾고 도보 코스를 짜고 숙소를 결정하는 건 현지의 임현수 선생님이 전부 해주셨거든요. 제가 할 것은 홍보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웬걸 기획안을 쓰랍니다. 알고 보니 제가 할 일은 최초의 아이디어를 굴려서 큰 덩어리로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여행 출발이 열흘이 채 안남은 지금 돌아보면 이 일은 관심 없는 상대에게 정을 붙이는 일이랑 비슷했습니다.


 


* 로드스꼴라 4기 떠별 박하(예선우)의 도움으로 여행 일러스트를 그려서 홍보를 시작~ 부장님께 칭찬 받음 ㅡㅡ V


 

1. 운명을 믿니 - 기획안 쓰기

기획안을 쓸 때 피곤했습니다. 계속 확인해도 고쳐야 할 것 투성이었지요. 제가 나름 만족한 기획안이 부장님에게 여러 번 빡구(?)를 당했습니다. 그 까이꺼 대충 이렇게 저렇게 엮으면 되잖아, 라고 생각했던 저는 교육사업부 부장님께 풍비박산을 당한 거죠. 폐부를 찌르는 부장님. “이 일에 애정이 없니?” 네, 사실 일에 애정을 붙이는 거 잘 못하겠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잠자코 있었습니다. 그리고 느려터진 일처리 속도를 지적하는 부장님. “이미 늦었어. 오픈하지 말까? 한 달도 채 홍보 안 되는 데?” 네, 그럼 하지 말까요? 기획자가 즐거운 여행을 만들어야 하는데 좀처럼 마음은 열리지 않더랍니다.

저는 여행대안학교 로드스꼴라를 수료하고 ()트래블러스맵에서 1년 동안 인턴으로 일하는 중입니다. 학교교육과정 중 하나니까 사실 느슨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행 기획은 처음 도전해보는 거였는데요. 처음이니까 괜찮아,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저에게 부장님이 그랬습니다. 너에게 떨어진 일은 ‘운명’인거다. 손발이 오그라들 필요 없이 단번에 이해가 갔습니다. 키가 165cm인 걸 나는 선택한 적 없지만 그런 나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말이죠. 여행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나서야 겨우 여행기획안을 완성하게 됐습니다.



 



2. 나와 여행의 관계 - 편지 쓰기



기획안을 쓰자 홈페이지에 오픈하는 건 일사천리였습니다. 이제 모객이 되냐 안 되냐가 중요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여행에 동참하게 할까 고민하던 중에 편지를 써보잔 생각을 했습니다. 연애편지 한 번 써본 적 없지만 설렘 가득 담아서요. 망창이 기획한 ‘걸어서 바다까지’는 여름방학을 맞은 청소년을 고객층으로 두고 있다는 점에서 제 것과 라이벌 관계였습니. 저는 승승장구하는 ‘걸어서 바다까지’의 상품 페이지를 상세히 지켜보다가 “이거다!”하고 외치게 되는데, 그게 바로 ‘기획자 망창의 변’이었습니다. 기획자의 생각을 솔직하게 썼을 때 그 기획이 빛나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캐치한 순간편지를 써보잔 생각이 들었죠.


쓰면서 비로소 여행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로드스꼴라 여름학교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여행이 제가 3년 전 했던 로드스꼴라의 국내여행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 때를 추억하며 편지를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갔습니다. 청산도의 슬로길을 걷다가 우연히 만난 할아버지에게 초코파이를 건네며 말을 붙이던 기억이 생생히 나면서 이 여행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참가자들이 일가를 이룬 선생님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개인적인 고민을 풀어갈 힌트들을 모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제 마음이 잘 전달됐을지 모르겠습니다. 금세 열 명 이상이 모였더라고요.






 

3. 온 몸을 다해 - CF 촬영하기

댄디한 이미지와 인권은 저 멀리 버스 태워 보냈구려, 라고 친구는 여행 CF를 보고 한탄했습니다. 제가 주인공인 CF를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전 정말 그 연기를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날 야근하느라 지쳐서 몰골도 피폐했고 무엇보다 제가 주인공으로 나오면 병맛 재미를 추구할게 뻔했거든요. 예를 들어 전달하려는 말 자체는 매몰 되고 표정이나 행동 때문에 웃게 되는 개그맨들의 몸개그처럼 말입니다. 제가 그 CF를 찍을 때 마음은 ‘그냥 나를 포기하자’였습니다. 이것 때문에 고생하는 촬영감독과 출연진들에게 미안해하며 눈 꽉 감고 찍었습니다. 홍보를 위해 내 한 몸을. 그러고 나자 비로소 여행을 꼭 성공리에 마쳐야겠다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초보기획자 혼자 여행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구례에서 몇 년 동안 거주하시며 네트워크를 쌓고 아이디어를 던져주신 임현수 선생님, 여행의 기획 단계에서 여러 차례 원고 수정을 도와주신 김현아 교육사업부 부장님, 기획자로서 실무보는 법을 알려주신 김미경 로드스꼴라 선생님, CF를 촬영해주고 함께 여행을 준비하는 인어 프로젝트 친구들.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시니 즐겁고 재미난 여행이 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원래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처음엔 아무 존재감 없던 사람이 어느 순간 특정 사건 때문에 쏘옥 내 마음 속에 들어온다고 믿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일은 그냥 제 앞에 떨어진 일이었는데 이제는 밤낮으로 생각하게 되었네요. 기획안 쓰고 편지도 적고 CF에도 출연하며 점점 애정이 커지고 있습니다. 부디 끝까지 이 애정이 흔들리지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