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초, 코펜하겐에서 교환학생으로 있던 난 아직 겨울의 쌀쌀함이 남아있는 나의 작은 기숙사 방에서 곧 다가오는 3주간의 봄방학 여행계획을 세우느라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그동안 과제에 치여 미루고 있던 유럽 여행이었기에 가고 싶은 곳들은 차고 넘쳤지만, 통장에 남아있던 돈은 지나치게 적었다. 부모님께 손을 벌리자니 자존심은 상하고, 그렇다고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유럽 배낭여행이었기에 그동안 가려고 벼르고 있던 여행지들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며칠째 모든 과제들은 뒷전으로 미루고 여행예산과 씨름하던 어느 날, 로마에서 교환학생으로 있던 친구와 Skype로 영상통화를 하며 부족한 여행예산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았다. 내가 바란건 동병상련 비스므리한 위로였지만,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쯧쯧! 야, 교통비 비싼건 어쩔 수 없다쳐도 왜 아직도 호스텔 같은데다 돈을 뿌리고 다녀~ 카우치 서핑 몰라?”
그날, 친구와의 통화를 마치자마자 바로 카우치 서핑 사이트에 프로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다시는 이전처럼 여행을 할 수 없었다.
처음 보는 이방인에게 대문을 열어주는 호스트, 그리고 그의 집에서 잠을 청하는 여행자
카우치 서핑과 같은 소셜 숙박 서비스들은 현지인들이 자신의 주거 공간 (다락방, 거실, 별장 등)을 온라인에 등록하면 여행자들이 무료로, 또는 저렴한 일정비용을 지불하고 잠자리를 제공받는 플랫폼 역활을 한다. 나처럼 처음엔 ‘낯선 외국인의 집에서 잠을 잔다고? 눈 깜빡할 사이에 코 베어간다는 요즘 세상에 생판 모르는 남한테 자기의 집을 열어줄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들을 막 믿어도 될까?’ 라는 생각이 떠오를듯 한데, 만약 그런 걱정이 든다면 곱게 접어버리길. 오히려 소셜 숙박 사이트들은 지난 몇년간 이용자 수와 회사규모에 엄청난 성장을 보이며 여행자들은 물론 경제 전문가들의 주목을 끌고 있으니.
세계 곳곳에 나눠쓰고 빌려쓰는 공유경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 생산자가 즉 소비자되는 프로슈머, 협력적 소비와 자원 절약 등 현재 크게 관심을 받고 있는 사회적 가치들과 맞물리고 있는 소셜 숙박 서비스들이 여행 숙박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이슈화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여행은 더이상 상류층만의 럭셔리가 아닌 대중적인 여가생활이 되어가고 있고, 유명장소에서 사진만 잔뜩 찍어가는 수박 겉핥기식 여행을 대신해 현지 문화를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여행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여행자의 연령층은 갈수록 어려지고 있고, 소셜 미디어가 이미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지금 소셜 숙박 서비스들이 앞으로 꾸준히 성장해 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론 여행을 떠날 때 가지각색 집주인들의 취향이 물든 공간에서 머물며 현지인들처럼 소소한 일상을 느껴보는게 어떨까?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배낭 여행자와 현지인들과 직접적으로 교류하며 현지 문화를 느끼고 싶은 자유여행자들에게 단비가 될 소셜 숙박 서비스 몇가지를 소개한다.
내 소파에서 재워줍니다 – 카우치 서핑 (www.couchsurfing.com)
비영리 커뮤니티 카우치 서핑은 소셜 숙박 사이트 중에서도 가장 이른 모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카우치 서핑’은 직역하면 ‘소파 파도타기’란 뜻인데, 카우치 서핑 회원들이 여행 중 서로의 집에서 무료로 숙박할 수 있도록 연결해 준다. 홈페이지에 카우치 서퍼 (여행자)와 호스트(현지인)이 자신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작성해 두고, 카우치 서퍼들이 곧 여행할 지역의 호스트들에게 카우치 서핑 신청을 보내면, 호스트가 수락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전 세계 230여국의 회원들이 이 웹사이트에서 카우치 서퍼와 호스트라는 관계로 인연을 맺는다. 호스트에 따라 카우치 서퍼들은 호스트의 거실 소파에서 자기도 하고, 운이 나쁘면 방바닥에 부풀려진 에어 매트리스에서, 또 운이 좋으면 잘 꾸며진 게스트룸의 안락한 침대에서 자기도 한다. 호스트의 프로필엔 자신이 빌려주는 ‘카우치’에 대한 설명도 자세히 나오니 신청하기 전 꼼꼼히 읽어보는 것이 포인트.
카우치 서핑의 가장 큰 매력은 무료라는 점과 운이 좋으면 호스트가 직접 가이드의 역활까지 도맡아 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나의 카우치 서핑 경험 중 가장 인상깊었던 호스트는 스페인 톨레도에서 만난 슬로바키아 유학생이었다. 지어졌을 때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몇 백년짜리 건물에서 생활하던 그녀는 거실의 소파를 빌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저녁에는 친구 요리사가 일하는 타파스 집으로 데려가 톨레도에서만 맛 볼 수 있는 특유의 요리들과 현지인들이 상그리아보다 즐겨 마신다는 틴토 데 베라노를 소개시켜 주고는 요리 재료들을 일일이 설명해 주었다. [그때 그 레스토랑 요리사한테 조르고 졸라서 받은 베이컨에 말린 대추 요리와 틴토 데 베라노 레시피는 요즘도 집에 손님들을 초대할 때 자주 써먹곤 한다.] 게다가 저녁 식사 이후엔 그녀의 학교 친구들과 톨레도의 몇 안되는 클럽 순회를 시켜준데 이어, 다음날 아침엔 스페인식 아침식사까지 대접하는 센스를 발휘한 그녀! 세심한 호스트 덕에 나에게 톨레도는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여행지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이미지 출처: Ooli Mos, Flickr]
내 집을 빌려줍니다 – 에어비앤비 (www.airbnb.com)
에어비앤비는 현재 세계최대 숙박임대 서비스를 제공한다. 누구든 자신의 방과 집, 별장 등 사람이 묵을 수 있는 모든 공간을 임대할 수 있다. 현재 3만500여 개 도시에서 30만개 이상의 숙소가 등록되어 있고, 등록되어 있는 객실 수가 워낙 많다보니 짧은 시간내에 빨리 예약을 해야 하더라도 방을 찾을 수 있다. 시설의 형태를 보면 방 한 칸에서부터 단독주택, 아파트, 스튜디오, 별장, 이글루, 고대에 지어진 성, 개인 소유의 섬까지 매우 다양하다. 그렇기에 스타일이나 가객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고, 호텔 같은 서비스는 아니더라도 그 나라의 문화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airbnb 홈페이지]
여행객과 집주인의 상세 프로필을 볼 수 있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 계정과도 연계되어 예약 전 여행객과 집주인이 서로에 대한 믿음을 줄 수 있도록 하였고, 객실을 직접 예약했던 여행객과 임대했던 집주인만 후기를 작성할 수 있도록 해 정보의 신뢰도를 높였다. 여행객이 입금한 돈은 여행객이 체크인을 한 후 24시간 이후에 집주인에게 입금되서 만약 임대하는 곳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환불이 필요한 상황에 편리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집주인들이 직접 보증금을 정할 수 있어 객실 손상위험이 있는 곳에는 보증금을 높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에어비앤비는 혼자 여행하는 사람보단 카우치 서핑을 하기엔 인원수가 많은 서너명 이상의 단체 여행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미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의 방이나 거실을 임대하는 집주인들도 있으나, 집을 통째로 빌릴 수도 있어 두명 이상의 여행자들 사이에서 임대료를 나누면 호텔보단 훨씬 저렴하고 일반 호스텔 보단 프라이빗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장점이 크다.
내 일상을 보여줍니다 – 스테이두 (www.staydu.com)
홈스테이보다 현지 문화를 밀접하게 경험할 수 있는 방법도 흔치 않다. 현지 가정 속에 들어가 식사에서부터 여가생활도 함께 즐기며 현지인들의 삶을 관찰하고 체험해 볼 수 있는 것이 홈스테이의 가장 큰 매력이지만 어학연수나 워킹홀리데이가 아니고서는 접하기 힘들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스테이두는 여행자들이 여행 중 해외 가정에서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 세계 가정에서 홈페이지에 자신의 가정으로 초대하는 글을 올리면, 여행자들이 머물고 싶은 집에 직접 연락을 취하면 된다. 숙박비를 직접 낼 수 있는 집도 있으나, 숙박비 대신 간단한 집안일을 돕거나, 아이들에게 자국 문화나 언어를 가르쳐 주는 것으로 대신 할 수도 있다. 아직 유럽과 미주 지역에서 주로 활성화되어 있어 현재로써는 선택의 다양성이 아쉬우나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에도 천천히 입소문을 타고 있어 꾸준히 주목해 볼 만하다.
[사진 출처: socialearth.org]
스테이두는 장기여행객이나 체험, 봉사활동 같은 볼런투어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스테이두는 일반 가정은 물론 학교나 병원, 또는 지역기관에서 호스팅을 하기도 하는데, 여행을 하면서 현지인들과 함께 여러가지 체험을 해보는 특별한 기회를 찾을 수도 있다. 세계 곳곳에 나를 가족같이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이보다 든든한 느낌이 또 있을까?
또 다른 모험, 새로운 여행법 소셜 숙박
사실 모르는 사람을 자신의 가장 프라이빗한 공간인 집 안으로 들이는 것은 불편하다. 모르는 이의 집에서 머무는 여행자의 입장에서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소셜 숙박 서비스는 무엇보다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오픈된 마인드 없인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이 진솔하게 교류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소셜 숙박 서비스 커뮤니티 안에 그런 믿음이 형성되고 여행자와 현지인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예의를 잊지 않을 때 여행자는 현지인의 삶을 온 몸으로 체험하는 기회를, 현지인은 ‘민간 외교관’이 되어 자신의 나라와 문화를 알리는 기회를 얻는다. 서로를 향한 믿음과 친절이 있기에 가능한 소셜 숙박, 모두가 win-win하는 여행의 즐거움을 앞으로도 더 많은 여러 사람이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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