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트래블러스맵 대표이사 변형석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네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네팔. 전세계 228개국 중에서 소득순위 207위, 북한보다도 열 단계가 아래에 있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가난한 나라 네팔. 수도 카트만두는 하루 중 열 시간이 정전이고, 물은 나오다 안나오다, 급수차가 급수를 해주어야 생활이 가능하고, 도시 전체는 공사중이어서 길에는 먼지와 소음과 미친듯이 울려대는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경적소리가 혼을 뺀다. 월급이 10만원 수준인데 월세는 15만원쯤 하는 부동산 인플레이션에 산업이라고는 농업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어서 산업 고용 인력은 7%에 불과한 나라. 게다가 연일 이어지는 시위로 일주일 중 하루 이틀은 도시 전체가 마비되는 나라. 아직 헌법도 제정되지 않은 비상체제의 국가, 네팔.
시끄러운 시내 도로를 짜증스럽게 걷다보면 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할 지 막막한 나라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남쪽으로는 인도, 북쪽으로는 중국이라는 거대 신흥 강대국으로 막혀있는 이 나라는 과연 자립적인 생존이 가능하기는 한걸까? 한국은 혹은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SEA Center(Social Enterprise Activation Center)를 네팔에 설립한 이유는 그 고민 때문이었다. 사회적경제 모델을 통한 네팔의 지속가능한 발전.
네팔하면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히말라야다. 8000미터를 넘는 전세계 14개의 봉우리 중 에베레스트와 안나푸르나를 비롯하여 8개가 네팔에 몰려있다. 눈덮인 거대한 산봉우리들 앞에서 나는 종종 압도당하곤 했다. 그 믿기 어려운 자연의 광경들을 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힘들게 힘들게 트레킹을 가곤 한다. 히말라야는 네팔의 가장 큰 보물이다. 거기에 덧붙여서 97개의 민족이 빚어내는 문화와 축제의 향연, 부처의 탄생지인 불교의 성지 룸비니, 세계문화유산 7개가 밀집된 수도 카트만두와 벅터푸르, 아직도 호랑이 50여마리가 서식하고 있는 치트완 국립공원, 모든 난이도의 래프팅 코스를 가지고 있는 어드벤처 투어의 최적지 등 관광자원으로 보자면 여느 나라에 못지 않는 네팔이지만 아직 관광객이 많지 않다. 10년간의 내전의 결과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 상황은 공정여행에서는 큰 기회다. 상업시설들이 대규모로 들어서서 관광지를 훼손하거나 환경을 훼손하는 일들이 비교적 적은 나라에서 “지속가능한 관광개발”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특히나 농업 밖에 없는 지역의 살림살이에 관광이라는 새로운 수입원이 생길 수 있다면 네팔은 보전적 개발이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히말라야의 선물
히말라야라는 청정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친환경 유기농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면 이 또한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미 히말라야를 브랜드화 한 화장품, 음료 등이 있으며, 공정무역 커피도 생산되고 있다. 한국에도 아름다운 커피에서 <히말라야의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네팔의 커피를 수입하고 있기도 하다.
또 특유의 수공예품 제작 방식과 기술로 만든 물건들은 가장 중요한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이를 기반으로 20년 전부터 공정무역이 활성화되어 있다. 공정여행과 공정무역 그리고 유기농업은 네팔의 자연과 문화를 망가뜨리지 않으면서 지역을 발전시킬 중요한 매개고리가 되고 있고, SEA Center는 그 방식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지만 실상 여덟차례의 방문과 얼마전 두 달 동안의 체류에서도 나는 한번도 ‘가난’을 실감하지 못했다. 아니 ‘가난’은 실감이 나지만 그것이 ‘궁핍’ 혹은 ‘결여’라는 생각은 한번도 하지 못했다. 그게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것은 네팔 사람들의 표정에 담긴 삶에 대한 태도 때문이었다.
행복한 네팔 사람들
네팔 사람들은 친절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하곤 한다. 맞다. 그래서 사람들은 열악한 시설과 수많은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네팔을 행복하게 기억한다. 그러나 네팔에는 친절함을 넘어서는 다른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 스스로 삶을 살아가는 것을 행복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행복지수 세계 1위 국가 부탄을 이야기한다. 부탄을 가보지 않아 그들의 삶은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한가지 확실한 것은 네팔의 사람들이 아마도 그렇다는 것이다. (실제로 부탄과 네팔은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들은 시간을 지키지는 않지만, 시간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화내지 않는다. 그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화를 내지 않는다. 처음에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두달이 거의 다 되어갈 무렵에서야 나는 그것이 삶을 바라보는 다른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로는 서로의 최선을 다 하되, 무언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비난하거나 따지지 않는 것. 그저 서로 믿어주고, 언젠가는 될 것이라 기대하고, 서로의 사정을 이해해주려는 오래된 습속. 그 습속이 얼굴에, 몸짓에 스며들어 있다. 그들은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해맑게 웃어줄 줄 알고, 무엇이든 다 된다고 말해주고(비록 지킬 수 없어도), 무엇이든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내가 잘못한 것에도 그저 싱글싱글 웃을 뿐이고, 내게 화를 내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행복했던 것이다.
경제적 소득의 수준으로 따졌을 때 네팔은 세계 최하위 국가다. 그러나 그러면 어떤가. 마을에 모여 살면서 밥을 해먹을 수 있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고, 평온하게 늙어갈 수 있다면 말이다. 인류 모두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는가. 우리들이 네팔을 도와 해야할 일은 그 행복이 지속될 수 있는 방법을 같이 찾는 것이다.
네팔의 공동체가 그리 평온한 것은 아니다. 정치적으로도 그렇지만 이미 자본주의 사회에 편입이 시작된 이상 복잡한 경제적인 갈등들이 빚어지곤 한다. 매년 40만명이 이주노동을 가고, 빈부의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 어쩌면 이대로 가면 다른 개발도상국가들이 겪은 숱한 문제를 반복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만일, 다른 길이 있다면 어떤가? 작은 섬나라 세이셸처럼, 작은 중남미 국가 코스타리카 처럼, 보존이 곧 경제적인 자원이되는 모델로 네팔을 발전시킬 수 있다면 어떤가? 그래서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워지고 지금 네팔인들이 가지고 있는 그 행복한 미소를 내내 가지고 있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나은 세상이 어디에 있을까?
한국은 그런 행복한 사회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마 그럴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백년 쯤 후에는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수십년 후에는, 우리가 네팔에서 배워야할 때가 올테다. 그 행복한 삶의 비결에 대해서. 다만, 그 행복이 지켜질 수 있도록, 우리도 같이 노력해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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