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즐거움! 타파스 - 아빌라에서 만난 행운, Avila en Tapas!
문득 맵에서 식탐이 가장 많은 사람이 누구냐? 고 설문조사(절대 할 필요가 없는 설문조사다.)를 시작한다면... 어쩐지 내가 1위에 등극하게 될 것만 같다는 불안감이 스친다. 지식에 대한 욕심도 아니고 성취욕도 아니고 인간의 애정에 대한 갈망도 아니고 겨우 식탐이라니... 어쩐지 시시하면서도 왠지 다른 욕심보다 탐욕스럽게 느껴지는 욕망의 종류이지만 어려서부터 나의 내면에서 꾸준하게 꺾일 줄 모르고 자라온 유일한 욕심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맛난 것, 새로운 음식에 대한 탐닉과 먹어보고 싶은 욕심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의 이런 욕심에 누군가 찌질하다거나 인생에 도움이 안되는 욕심이라고 손까락 질을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그냥 손까락 질을 받으며 살아갈까 싶다.)
나의 식탐은 양보다는 다양함을 추구하는 경향이(이 점은 한국음식문화에 원인이 있다고 나는 주장하는 바이다!) 있어서 그간 내가 혼자하는 여행에서 가장 슬퍼했던 것은 식당에서 음식을 하나밖에 시켜 먹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런 나에게 그간의 슬픔을 보상하고 행복을 안겨줄 스페인의 음식문화가 있었으니 그것은 타파스(TAPAS)! 스페인어 그대로 발음하자면 따빠스, 발음도 입안에서 감칠맛 나게 착착 감겨드는 경쾌한 단어가 바로 그것이다.
타파스(TAPAS)란 전식이나 가볍게 먹은 간식을 가리키는 스페인 음식메뉴의 한 종류로 원래는 먼지나 벌레로부터 음식을 보호하기 위해 덮개를 덮어둔다는 뜻의 '따빠(TAPA)- 덮개'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스페인의 레스토랑에 가면 본식이나 전식 메뉴와 함께 TAPAS라고 쓰여진 메뉴가 있다. 이 타파스는 전식이나 본식 종류가 작은 그릇에 담겨 나오는데 양이 적어 전식, 간식으로도 먹지만 사실 둘이서 세 개쯤의 메뉴를 주문한다면 제법 훌륭한 한 끼 식사가 되기도 한다. 물론 타파스의 종류는 매우 다양한 형태여서 뷔페식당처럼 다양하게 차려져 있는 타파스들 중에서 선택하여 식사를 즐기는 타파스 전문 레스토랑도 많이 있다. 여행객들은 이곳에서 골라먹는 재미와 잘 차려진 음식으로 눈까지 즐거운 호사를 누리곤 한다.
전날 마드리드에 도착한 우리는 일찌감치 여행길에 나섰다. 김재희 선생님은 독일에서 공부하실 때 마드리드를 한 동안 머무른 적이 있었고 나 역시 유럽배낭여행 인솔을 하면서 마드리드의 이 곳 저 곳을 이미 둘러본 터라 우리는 알타미라동굴 벽화를 재현해 놓았다는 고고학 박물관(아쉽게도 알타미라 동굴벽화의 재현은 내년까지 보수공사로 입장이 금지되었다.)과 과학사 박물관을 반나절에 둘러보고 점심을 뒤로한 채 서둘러 뽀르뚜를 가기 위해 아빌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배고픈 우리를 위한 운명적인 페스티벌을 만났으니 이름하야 “Avila en Tapas” 이다.
도시에 들어서자 곳곳에 붙어있는 이 자그마한 페스티벌의 포스터를 발견하고 나는 도착해서 보였던 시큰둥했던 반응을 던져버리고 비행기 안에서의 설레임을 완벽하게 되찾았다.
라라라~ 즐거운 투스탶으로 폴짝거리며 한동안 페스티벌의 장소를 찾아 관광지를 찾아 헤매였지만 풍선이 달리고 사람들이 북적대는 축제의 현장은 눈에 띄지 않았다. 배고픔과 피로감으로 서서히 인내심이 바닥날 무렵 우리는 우선 아무 식당에라도 들어가 간단한 요기와 차가운 맥주 한잔만 가볍게 하기로 합의를 봤는데 식당에 들어서자 또 다시 눈앞에 등장한 축제 포스터를 보고 살짝 부아가 났다.
“도데체 이노무 축제는 어디서 하는 거죠?”하고 식당 직원에게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Here!" 이었다. 주위를 둘러봤다. 뭐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는 식당... 절대 축제스럽지 않은 이 분위기. ”여기서요?“ 종업원을 째려보며 그럴 리 없어! 라는 듯 되묻는 내게 그녀는 스페인 사람들의 유쾌함으로 리플랫을 건네며 설명을 했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리플랫에 쭉 나열된 레스토랑이 있고 그 레스토랑에서 각각 자신만의 특별한 타파스 1종류를 만들어서 참여하는 것이 이 축제의 진행방식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조금 싱겁다고 생각했지만 개성 넘치는 여러 음식점으로 순례를 하며 요리를 즐기는 동안 우리는 평소처럼 식사를 즐기는 현지인과 음식을 가져다주며 우리의 반응을 기다리는 식당의 직원들, 또 옆자리 앉은 여행객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면서 차츰 축제의 기운을 느끼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맛있었다. 가격도 한 접시에 2개가 담겨 2~3유로 정도로 유럽물가 치고는 착한 가격이었다. 나는 우연히 만난 이 작은 행운을 충분히 즐겼다.
사진속의 예쁘장한 튀긴 만두, 크림에 묻힌 새우, 폭신한 빵에 달콤 부드럽게 얹어진 으깬감자와 바삭한 베이컨, 무엇보다 저 얇은 밀가루 옷에 싸인 크레뻬 안에는 향긋한 소스와 불에 직접 구운 듯한 스테이크 조각이 들어 있었는데 한입 베어 물 때 적당한 온도의 스테이크가 그윽한 향을 풍기며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음... 어떻게! 완전 맛있어요!” 나는 배가 부른 것도 잊고 자꾸만 새로운 레스토랑을 찾아가 새로운 타파스를 먹어보고 싶어졌다. 물가 비싼 서유럽에서 음식점 순회여행이란 그림의 떡이다. 우리는 모두 5곳의 레스토랑에서 6가지의 타파스를 즐겼고 예산은 둘이서 20유로를 넘지 않았다. 마지막 식당을 나오면서 나는 이미 행복해졌다. 그리고 나는 먹을 것 하나에 행복해지고 마는 나의 단순함을 여행을 즐길 줄 아는 여행자의 소박한 심성이라고 스스로 칭송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느껴졌다.
식사를 마치고 뿌듯한 마음으로 뽀르뚜로 가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향하고 있었다. 뽀르뚜행 야간버스는 밤 12시 30분에나 있었기 때문에 9시 터미널 문이 닫히기 전에 짐을 찾아와 근처 식당에서 시간을 때우고 길거리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하여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제법 커다란 레스토랑이었고 이 집에서도 타파스 페스티벌에 참여 중이었지만 우리는 밤의 차가운 공기를 덥혀줄 따끈한 스프를 먹기로 했다. 4가지 스프 중 추천까지 받았다.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스프를 떠올리며 미소는 사그러들 줄을 몰랐다.
짜잔~! 드디어 등장한 이름은 기억하기 힘든 지역의 대표적인 스프! 맛은 선명히 기억함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다는 거다.
여행길이 항상 즐겁다는 생각은 접어두는 것이 좋다. 여행길에 맛난 음식만 먹겠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거다. 역시 집떠나면 고생길이지~ 어째 시작이 너무 좋다 그랬어.
단순한 나는 겨우 끝내주게 맛없는 스프 때문에 인생지사까지 들먹이며 빛의 속도로 다운되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건 누구라도 다운시킬 수 있는 독약처럼 스물스물 온몸으로 퍼지는 극악스런 맛이 났다.
저 벌건 빛깔에서는 우리나라 음식의 칼칼한 매운맛대신 느끼한 기름 냄새가 났다. 돼지기름을 넣은 스프라니 믿을 수 없다며 나는 비상식적인 음식이라고 혹평을 했다. 수프에 들어간 기름진 베이컨도 이해가 안가는데 기름을 흠뻑 먹은 빵조각이라니...게다가 육계장이나 순두부찌게라고 속임수라도 부리는듯 달걀까지 띄웠다. 이 조화로운 스페인에서 있을 수 없는 조화다. 미각, 시각, 후각 모두에서 느끼한 기름냄새가 나는 기분이었다. ‘음식에 대한 나의 보수적인 편견 때문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뿐이야. 무언가 첫 입으로 알 수 없는 깊은 맛이 있을꺼야!’ 라고 자신을 설득해 보며 세 번까지 떠먹어 보았지만 이미 느끼함에 중독된 내가 느낄 수 있는 맛은 오로지 세번의 더욱 더 강렬한 느*끼*함 뿐이었다.
나는 스페인을 아름답게 기억하기 위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지금은 그 맛나던 타파스들도 그 맛없던 스프도 재밌는 기억으로 남았지만 사진을 보자마자 다가오는 이 강렬한 느끼함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여행을 하면서 현지 음식을 선택하고 맛보고 성공과 실패를 오가는 것은 즐거운 혹은 재밌는 경험임에는 틀림이 없는 듯 하다. 여행의 기억에서 풍광이나 만난 사람들 뿐 아니라 음식맛이 좋았던 여행지는 다시 가고 싶어지고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배고플때 우연히 먹게 된 만난 길거리 음식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그 나라 이름만 들어도 제일 먼저 강렬하게 나의 머리 속에서 떠오르곤 하는 경험이 식탐많은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니~
올 겨울 함께하게 될 지중해 겨울학교에서 우리는 함께 수 많은 성공적인 선택들로 스페인을 아름답게 기억하길 기대하지만
나는 어쩐지 한 두 번쯤은 어이가 없을 만큼 우리의 입맛에는 안맞는 현지의 음식들도 경험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당시에는 충격에 가까운 맛이 었다고 해도 여행길 내내 선택의 교훈이 되고 이야기 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즐거운 것이었든 다소 괴로운 것이었든 돌아오면 재밌었던 추억이 된다. 즐기시라~!
스페인의 음식도 여행 중의 작은 선택들도!
그래도 마무리는 여행길에서 만난 맛있던 타파스 사진으로 끝내보려 한다.
스페인에서는 맛없는 음식을 만날 확율보다 맛있는 음식을 맛난 확율이 높기에.
스페인에서 놓쳐서는 안되는 즐거움 중의 하나! 스페인 요리! 골라먹는 재미 타파스!
스페인에서 주의할 것 중 하나! 스페인 요리! 돼지고기가 들어간 스프는 모두 다 조심하세요!
다음 여행기는 포르투갈의 포르뚜와이너리 투어와 아름다운 현대적 공연공간 까사데 뮤지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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