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처럼 진한 이탈리아 여행, 인생은 아름다웠다
*채식주의 잡지 [비건] 2013년 5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글.사진 트래블러스맵 해외여행팀 메이
5월처럼 볕이 좋은 날에 유럽여행은 정말 최절정기이다. 그 중 수많은 유럽대륙의 나라 중에 가장 추천하고 싶은 나라는 이탈리아다. 당신에게 첫 유럽여행이라면 너무나 황홀하고 달콤해서 다른 나라에 가는 것이 실망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고, 마지막 유럽여행이라면 최고의 하이라이트 여행지이기 때문이다.
한 폭의 그림에 빠진 듯한 바다의 도시, 베네치아
밤늦게 도착하는 비행기편은 바쁘게 메스트레 역 앞에 호텔로 발걸음을 옮기게 한다. 다음날 아침 일찍, 산타루치아역에 도착하면 드디어 우리가 꿈에 그리던 베네치아는 시작된다.
산타마리아델라 살루테 성당이 맞은편에서 장관을 이루며 스카치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곳은 베네치아의 초입일 뿐이다. 어쨌든 많은 관광객들은[PER RIALTO], [PER S. MARCO] 표지판을 따라 가면서 갖가지 수공예품이 가득한 가게들을 발견한다. 중국산 제품들이 가득한 요즘 장인정신을 가지고 집안 대대로 이어가는 가게들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베네치아의 가면은 아주 인상적인 상징물이다. 비록 태생은 서민이 가면을 쓰고 귀족놀이를 하며 기분을 달랬던 것으로 유래하였지만 이제는 베네치아를 방문하면 왠지 사야할 것 같은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드디어 리알토 다리에 들어서면 베네치아의 그림 같은 장면이 시작된다. 12세기경 운하의 양쪽을 건너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가 배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되자 16세기에 당대 유명한 예술가들이 공개입찰에 참가했지만 안토니오 다 폰테가 선정되어 완성한 다리이다.
이 묵직한 다리는 400년 동안 지탱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전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장소이고, 양쪽에는 상가건물까지 배치되어 효율적이면서 혁신적인 다리이다.
이 다리를 지나면 이제 산마르코 광장은 거의 다 온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다만, 좁은 골목 사이로 여러 가게들을 지나야한다. 나는 이곳에서 50년 동안 손으로 마블링 노트와 가죽노트를 만들었던 장인을 만났는데 그가 만드는 작업 과정에 대한 이야기와 중국고서를 경매를 통해서 샀다는 이야기 등 그가 얼마나 자부심을 느끼며 일을 하고 있는지를 생생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었다. 베네치아의 400년 된 책을 나에게 보여주었고, 중국고서는 직접 보수하고 보존하고 있는 과정까지 상세히 알려주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노트 4권을 샀는데 사고 보니 너무 많이 샀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의 노력이 그만큼의 값어치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탈리아에서 동양의 고서를 보고 있는 느낌은 참 신기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다.
산마르코 광장에 도착하면, 베네치아의 상징인 날개달린 사자조각상을 볼 수 있는 시계탑이 보이고, 그 옆에는 비잔틴 양식으로 지어진 산마르코 대성당이 있다.
산마르코 대성당 2층에 올라가 바라보는 광장의 모습은 그 큰 광장이 한눈에 볼 수 있는 위치이고, 그 옆 시계탑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다. 가장 큰 장점은 산마르코 대성당을 장식한 모자이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과정을 볼 수 있어서 꼭 가봐야할 장소이다. 이제 아드리아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두칼레 궁전으로 가보자! 햇볕은 찬란하게 비치고 있는 바다와 바다위에 떠있는 산조르지오 마조레 성당과 곤돌라의 모습은 와, 정말 내가 베네치아에 와 있구나! 라는 실감이 절로 느껴지게 한다.
하루를 머문다면, 단편적이고 일반적인 코스로 베네치아를 느끼겠지만, 하루, 이틀, 삼일 정도 머문다면 베네치아 사람들의 생활과 삶이 더 자세히 보이지 않을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독특한 수상가옥의 구조에서 생활하는 베네치아 사람들 집에서 홈스테이를 해보고싶다.
하늘이 열린 박물관, 피렌체
산타노벨라 중앙역에 도착하면 맞은편에는 산타마리아노벨라 성당이 보인다. 스페인의 꼬르도바에서 보았던 메즈키타의 이슬람 양식과 비슷한 검은 대리석은 나의 눈을 사로잡는다. 아마도 기하학적인 무늬들은 토스카 지방의 도미니카 양식과 맞아떨어진것같다.
이렇게 시작된 건물과 회화와 조각은 베키오 다리를 지나 우피치 미술관에서 꽃을 핀다. 우피치 미술관은 일전에 메디치 가문의 방대한 수집품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도 이 장소를 시민들을 위해서 환원했다는 사실이 나에겐 더 감명으로 다가왔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바라본 베키오 다리는 더 선명한 색으로 아르노강과 아주 잘 어우러진다. 우피치 미술관의 소장품을 반나절 안에 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잠시 피로한 다리를 쉴 수 있는 우피치 미술관 옥상의 카페테리아는 멀리서 베키오 궁전과 두오모를 바라보며 잠시 쉬어갈 수 있었다.
시뇨리아 광장은 베키오 궁전과 여러 조각상이 있다. 이 조각상들을 보고 있느니 피렌체가 르네상스의 꽃이라 불리는지, 하늘이 열린 듯한 야외 박물관임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은 도시가 세상의 중심이었다니,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을까? 도저히 하루만의 일정으로는 소화할 수 없는 곳이다.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멀리 보이는 저 두오모에 가까이 가기 위해 길을 걸었을때 내 앞에 멈춰있는 것은 산조반니 세례당과 조토의 종탑이었다. 그 뒤로 두오모가 보였다. 그 순간 나는 난쟁이가 되어 있었고, 나를 압도한 건물들 앞에 할말을 잃고 서 있었다. 잠시 후 다른 이들의 발걸음도 나와 같았다.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연인들의 성지, 두오모에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의 기억으로는 463개의 계단을 힘들게 올라가 바라본 풍경도 멋있었지만,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바사리가 그린 프레스코화의 ‘최후의 심판’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오르간 연주가 흘러나오는 성당에서 최후의 심판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이후의 삶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해질녁 피렌체에서 가장 높은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일몰을 보고 있노라면 주황색 지붕들을 보고 있으니 피렌체에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다섯 개의 파스텔 톤 마을, 친퀘테레
라스페치아 중앙역에서 친퀘테레 카드를 사면 다섯 마을을 기차로 갈 수 있다. 10분 정도 가면 리오마조레, 마나롤라, 코르닐랴, 베르나차, 몬케로소 마을이 차례차례 나타난다. 피렌체에서 아침 7시45분정도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한참을 갔던 터라 이 짧은 기차 시간은 긴장을 바짝 하게 한다. 기차 터널 사이사이로 곧 보이는 지중해를 보게 되면 그런 긴장감은 잠시 놓게 된다. 아름다운 해안선이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는 아슬아슬한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몇 년전 일어난 홍수로 절벽으로 따라가는 트레킹은 전면 금지되었고, 오직 기차로만 다닐 수 있었다. 그래도 신선한 해산물 요리와 바다가 보이는 전망대에서 햇볕을 맞으며 즐겼던 여유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달콤함이었다. 이 기운을 가득 담아 나는 로마로 향했다.
로마(ROME), 서양문화의 시작
롬, 그 단어만으로도 이탈리아의 한 도시가 아닌 제국으로 느껴지는 곳 로마! 모든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을 나는 현장에서 체득할 수 있었다. 로마의 발상지 팔라티노 언덕, 로마제국의 심장, 포로 로마노, 로마의 상징 콜로세움, 모든 신을 위한 신전 판테온, 가톨릭의 중심지 바티칸까지 이 모든 로마 역사의 변천사를 로마인들이 그동안 잘 복원, 보존, 보호되었다는 사실에 더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잠시 무솔리니 때 도로를 내고, 유적지와 어울리지 않은 기념물들을 설치했다는 사실도 깊이 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이다.
로마에서 로맨틱하게 행복한 사람들의 미소를 보고 싶다면 트레비 분수이다. 트레비 분수에서 젤라토도 먹어보고,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볕이 좋은 날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미소를 머금게 한다. 저녁이 되면 스페인광장과 나보나 광장에 가보자. 특히 나보나 광장에서 광장 중앙의 피우미 분수는 베르니니가 제작한 것으로 세계 4대강을 상징하는 조각물을 볼 수 있다. 역동적으로 차오르는 조각상을 보면서 내가 로마가 아닌 나일강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이 분수 뒤에 모여 있는 카페, 레스토랑들은 밤늦게까지 로마의 젊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나는 로마의 마지막 저녁을 포폴로 광장에서 마무리 했다. 해질녁 저 멀리 성베드로 성당이 보이고, 민중의 광장이란 뜻의 포폴로 광장 들었던 안젤리나 보첼리의 “TIME TO SAY GOOD BYE"를 들으며 에스프레소처럼 진한 이탈리아 다음 여행을 기약하고 싶다. 그때는 좀더 천천히 느리게 유적지 건물보다는 사람을 만나볼 수 있 는 이탈리아 여행을 하고 싶다. 사실, 지금 나는 너무 숨이 가프다. 8박9일 일정으로 몇몇의 도시를 보고 이탈리아를 느끼기에는 정말 부족한 일정이었다. 그래서 아쉽다.
사람 중심 도시, 오르비에또
그래도 누군가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오르비에또 라고 말하고 싶다. 천천히 느리게 사람들만 다닐 수 있는 마을로 길을 조성하고 슬로시티, 슬로우 푸드 운동을 시작한 곳이다. 이탈리아의 거대한 건축물들 앞에서 작아졌던 내 모습에서 오르비에또는 사람 사는 도시라는 느낌이 가득했던 아주 작을 골목들과 핸드메이드 제품이 가득했던 가게들이 많았다. 전 세계에서 이 슬로시티 운동을 보러 온다고 하는데 전시적인 행정이 아닌, 이탈리아 사람들의 오랜 삶의 흔적이 묻어나온 운동이었다.
맛의 세계화와 표준화를 거부할 수 있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자존감, 일하면서도 즐거운 유머를 건넬 수 있는 사람들의 풍요로움이 나는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가치로 보였다. 그들이 말하는 인간중심, 사람중심인 노동과 유희와 시간의 축적된 결과물과 과정이 느껴지는 여행, 내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트래블러스맵 해외여행팀
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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