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ers' MAP 이 말하는 길 위의 인생
*글 : 아치 *
7년 전 일인데 기억에 남아있는 걸 보면 나름 괜찮았던 여행이었나 보다. 모 영화제에서 같이 일했던 후배가 2002년 영화제를 마치고 동유럽에 2개월 정도 다녀왔다. 2003년, 영등포역 근처에서 술 먹고 집이 먼 후배에게 우리 집 가서 자자고 꼬셨다. 눈이 내려 제법 길이 막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승객이 꽉 찬 버스 안 대화.
“형, 이번 영화제 마치곤 서유럽 여행 갈려고. 한 번 나가봤다고 근질거리네.”
“지난번 동유럽 여행 좋았나보네. 근데 한두 달 돌아다니면 남는 거 있더냐?”
“어느 정도 기억되다가 희미해지는 것 같아.”
“그러니까 1년 정도 살면서 걔네들은 우째 사는지 들여다보고, 그들의 방식이 뭔지도 알아가고 그래야지. 관광지 중심으로 후다닥 다니는 건 좀 그렇지 않나?”
(간단히 던진 말에 심각한 내용으로 응수하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돈도 그렇고, 아는 사람도 없고, 방법이 있나? 형이라도 같이 간다면 모를까.”
(이 상황에서 대책 없이)“같이 가자. 방법이야 찾으면 되지.”
결국, 술, 거기에 객기가 더해져 속도가 빨라졌을 뿐.
그렇게 해외 장기여행(을 빙자한 체류) 계획은 어설프게 시작되었다. 해외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무대책인 상황. 하지만 운칠기삼(운이 70%, 실력이 30%란 말로 운이 더 중요하다는 뜻)으로 살다 보니 독일에 아는 사람을 연결해 준 은인이 있었고, 독일 쪽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종로에 있던 독일어학원을 다녔다. 그래도 그 동네에서 살 건데 기본적으로 독일어는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그러던 중 우리가 머물려고 했던 독일 쪽 사정으로 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프랑스로 신혼여행 가는 지인에게 후배가 붙었다. 열흘 정도가 지난 뒤 메일이 왔다. 민박했던 한국분이 혹시 민박할 생각 있냐고 묻는다고. 일은 쉽게 풀리기도 한다. 무조건 한다고, 나는 2004년 영화제 마치고 합류한다고, 그동안 너 혼자 잘 버티라고, 말했다.
드디어 어느 날 프랑스 드골공항에서 후배와 만났다. 아는 프랑스어라고는 들고 간 사전에서 얻은 간단한 말 몇 마디가 전부.
도착한 지 3일 만에 차량 접촉사고가 났지만 어쨌든 가해자로부터 피해각서 받았고, 생소한 프랑스어 덕에 생필품을 구분 못해 마트에 갈 때면 항상 들고 다녀야 하는 불어 사전, 중국인이 운영하는 어학원 수업은 중국어, 영어, 불어로 동시 진행되고, (실제 게이인)파리시장이 선두에 서서 거리행진하며 즐기는 게이-레즈비언 페스티벌(‘우리의 사랑은 당신의 증오보다 강하다’, 아~ 멋진 구호!), 하다못해 테이프를 틀지언정 파리 시내 웬만한 술집과 카페에서 하룻밤 동안 음악소리로 북적대는 뮤직 페스티벌, 바캉스 못 가는 시민을 위해 주요 간선도로의 차량통행을 막고 한 달 동안 해변으로 변신하는 세느 강변, 시간이 지날수록 할인 폭이 점점 커지는 여름-겨울 바겐세일 때 서로 좋은 물건 집으려는 드센 풍경(우아한 파리지엔느들이 설마!), 에스프레소 한 잔으로 몇 시간째 카페에 앉아있는 사람, 언제 어디서나 찐하게 사랑하는 연인들,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 내가 우선이며“왜?”가“네.”보다 자주 쓰이는 동네, 파리올림픽 개최가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반대하는 사람들, 경찰 호위를 받으며 파리 시내 밤거리를 질주하는 자전거와 롤러블레이드들, 한 달 20유로면 하루에 몇 편이든 볼 수 있으며 15개관에서 15개 영화가 상영되는 멀티플렉스 체인, 여름이면 민박 손님과 바비큐 해 먹는데 이상하게 연기가 옆집으로만 가서 항의 받아도 멀뚱거리며‘빠흐동(실례합니다)’만 연발하고, 교통비 아껴보려고 구입한 자전거가 며칠 만에 교통사고 당해 수리비가 더 들게 되었고, 아는 이들이 파리를 찾으면 매일 다니는 루브르인양 지겨운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1년 6개월을 살다왔다.
한국에 돌아와서 한동안“예스”보다“위”라고 대답하는 나를 보며 프랑스 살다온 걸 티내는 수준의 서바이벌 어학능력이지만, 여행은 머리가 아니라 몸이 움직여야 한다. 그 몸이 기억하는 어떤 것이 오랫동안 남는다는 걸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생각했으면 망설일 시간을 줄이고 일단 떠나자. 떠나보면 부족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렇게 여행은 빈 칸은 빈 채로 채울 건 채워가는 게 아닐까?
*글 : 아치 *
피카소 미술관
7년 전 일인데 기억에 남아있는 걸 보면 나름 괜찮았던 여행이었나 보다. 모 영화제에서 같이 일했던 후배가 2002년 영화제를 마치고 동유럽에 2개월 정도 다녀왔다. 2003년, 영등포역 근처에서 술 먹고 집이 먼 후배에게 우리 집 가서 자자고 꼬셨다. 눈이 내려 제법 길이 막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승객이 꽉 찬 버스 안 대화.
“형, 이번 영화제 마치곤 서유럽 여행 갈려고. 한 번 나가봤다고 근질거리네.”
“지난번 동유럽 여행 좋았나보네. 근데 한두 달 돌아다니면 남는 거 있더냐?”
“어느 정도 기억되다가 희미해지는 것 같아.”
“그러니까 1년 정도 살면서 걔네들은 우째 사는지 들여다보고, 그들의 방식이 뭔지도 알아가고 그래야지. 관광지 중심으로 후다닥 다니는 건 좀 그렇지 않나?”
(간단히 던진 말에 심각한 내용으로 응수하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돈도 그렇고, 아는 사람도 없고, 방법이 있나? 형이라도 같이 간다면 모를까.”
(이 상황에서 대책 없이)“같이 가자. 방법이야 찾으면 되지.”
결국, 술, 거기에 객기가 더해져 속도가 빨라졌을 뿐.
그렇게 해외 장기여행(을 빙자한 체류) 계획은 어설프게 시작되었다. 해외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무대책인 상황. 하지만 운칠기삼(운이 70%, 실력이 30%란 말로 운이 더 중요하다는 뜻)으로 살다 보니 독일에 아는 사람을 연결해 준 은인이 있었고, 독일 쪽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종로에 있던 독일어학원을 다녔다. 그래도 그 동네에서 살 건데 기본적으로 독일어는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그러던 중 우리가 머물려고 했던 독일 쪽 사정으로 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프랑스로 신혼여행 가는 지인에게 후배가 붙었다. 열흘 정도가 지난 뒤 메일이 왔다. 민박했던 한국분이 혹시 민박할 생각 있냐고 묻는다고. 일은 쉽게 풀리기도 한다. 무조건 한다고, 나는 2004년 영화제 마치고 합류한다고, 그동안 너 혼자 잘 버티라고, 말했다.
세느강 다리
드디어 어느 날 프랑스 드골공항에서 후배와 만났다. 아는 프랑스어라고는 들고 간 사전에서 얻은 간단한 말 몇 마디가 전부.
도착한 지 3일 만에 차량 접촉사고가 났지만 어쨌든 가해자로부터 피해각서 받았고, 생소한 프랑스어 덕에 생필품을 구분 못해 마트에 갈 때면 항상 들고 다녀야 하는 불어 사전, 중국인이 운영하는 어학원 수업은 중국어, 영어, 불어로 동시 진행되고, (실제 게이인)파리시장이 선두에 서서 거리행진하며 즐기는 게이-레즈비언 페스티벌(‘우리의 사랑은 당신의 증오보다 강하다’, 아~ 멋진 구호!), 하다못해 테이프를 틀지언정 파리 시내 웬만한 술집과 카페에서 하룻밤 동안 음악소리로 북적대는 뮤직 페스티벌, 바캉스 못 가는 시민을 위해 주요 간선도로의 차량통행을 막고 한 달 동안 해변으로 변신하는 세느 강변, 시간이 지날수록 할인 폭이 점점 커지는 여름-겨울 바겐세일 때 서로 좋은 물건 집으려는 드센 풍경(우아한 파리지엔느들이 설마!), 에스프레소 한 잔으로 몇 시간째 카페에 앉아있는 사람, 언제 어디서나 찐하게 사랑하는 연인들,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 내가 우선이며“왜?”가“네.”보다 자주 쓰이는 동네, 파리올림픽 개최가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반대하는 사람들, 경찰 호위를 받으며 파리 시내 밤거리를 질주하는 자전거와 롤러블레이드들, 한 달 20유로면 하루에 몇 편이든 볼 수 있으며 15개관에서 15개 영화가 상영되는 멀티플렉스 체인, 여름이면 민박 손님과 바비큐 해 먹는데 이상하게 연기가 옆집으로만 가서 항의 받아도 멀뚱거리며‘빠흐동(실례합니다)’만 연발하고, 교통비 아껴보려고 구입한 자전거가 며칠 만에 교통사고 당해 수리비가 더 들게 되었고, 아는 이들이 파리를 찾으면 매일 다니는 루브르인양 지겨운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1년 6개월을 살다왔다.
한국에 돌아와서 한동안“예스”보다“위”라고 대답하는 나를 보며 프랑스 살다온 걸 티내는 수준의 서바이벌 어학능력이지만, 여행은 머리가 아니라 몸이 움직여야 한다. 그 몸이 기억하는 어떤 것이 오랫동안 남는다는 걸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생각했으면 망설일 시간을 줄이고 일단 떠나자. 떠나보면 부족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렇게 여행은 빈 칸은 빈 채로 채울 건 채워가는 게 아닐까?
*로드락 2010. 7-8 합본호 월간 로드락 제9호에 실린 글입니다.
(로드락은 길 위에서 배우는 대안학교 로드스꼴라 떠별들이 만드는 월간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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