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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공정여행은 즐거운 불편, 사회를 바꾸는 작은 힘이죠

“공정여행은 즐거운 불편, 사회를 바꾸는 작은 힘이죠”


북촌이 본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카페가 들어서고, 민가는 세트장처럼 비어간다. 고두환씨는 몸살을 앓는 북촌의 심정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신인섭 기자

그는 남들처럼 대학을 마치고 대기업에 들어가는 ‘판박이 코스’가 싫었다. 졸업도 하기 전에 창업을 해보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요즘 뜨는 말로 ‘공정사회(公正社會)’를 만들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었다. ‘공정한 일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면서도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공정여행’이다. 공정여행이란 여행자는 윤리적인 책임을 다하고, 관광수익은 지역주민에게 돌아가는 여행을 말한다. 여행사 ‘공감만세’의 사장, 대학생 고두환(27·공주대 국제통상 4년)씨 얘기다. 사명(社名)인 공감만세는 ‘공정함에 감동한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의 단어 첫 글자들을 딴 이름이다. 회사 홈페이지는 인터넷 카페(http://cafe.naver.com/riceterrace)가 대신한다. 올 4월 사업자등록을 마친 개인사업체지만, 회사라기보다는 동호회 같다. 회사 조직에는 ‘사장-이사-부장-과장’이 없다. 대신 ‘대의원회’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고씨가 대의원회 의장을 맡고, 카페 동호회 중 선발된 6명이 대의원을 맡았다. 한 달에 한 번 실제로 만나고, 일주일에 한 번은 온라인에서 만나 회의한다. 의기투합해 ‘전임 직원’이 된 임일상(28·목원대 행정학과 졸)씨, 조수희(23·한밭대 컴퓨터공학과 4년)씨의 한 달 월급은 30만원이다. 창업 이후 지금까지 올린 매출은 7000만원가량. 손익분기점은 아직 생각도 할 수 없다. 이쯤 되면 회사인지 사회운동 조직인지 헷갈린다. 고씨는 이 회사를 “사회 혁신 기업”이라고 소개한다. 그가 내세우는 여행상품은 두 가지다. 하나는 경복궁 옆 마을 북촌을 여행하는 ‘북촌을 걷다’, 또 다른 하나는 ‘필리핀 공정여행’이다.

환경 위해 세면도구·개인컵 지참 필수 

북촌여행은 주말인 토·일을 이용한 1박2일 상품(8만8000원)이다. 소위 ‘패키지 여행’이지만 공정여행인 만큼 뭔가 다르다. 여행에 참가하려면 세면도구와 수건, 개인 컵, 우산, 운동화를 챙겨 와야 한다. 잠은 호텔이 아닌 북촌동양문화박물관 내 한옥 서당 마루에서 요를 깔고 잔다. 하루 종일 가회동과 재동·계동·삼청동 등을 걸어야 한다. 차는 일절 타지 않는다. ‘석유 대신 땀을 흘린다’는 게 모토다. 식사도 범상치 않다. 첫날 저녁은 아름다운 재단 희망가게 1호점인 ‘정든찌개’에서, 다음날 아침과 점심식사는 숙소인 서당에서 고씨가 직접 만든 가정식 백반으로 해결한다. 여행경비 중 일부는 환경단체에 기부한다. 여행을 위해 북촌까지 찾아오면서 생긴 이산화탄소 배출을 상쇄하기 위해서란다.

고씨는 “공정여행은 즐거운 불편함이라 할 수 있다”면서 “환경보호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생각하는, 원주민과 함께하는 공정여행의 정신을 구현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북촌을 걷다’가 고행(苦行)만을 강요하는 건 아니다. 첫날은 책 북촌탐닉의 저자이자 영화칼럼니스트인 옥선희씨가 길잡이(가이드)를, 북촌동양문화박물관 권영두 관장이 둘째 날 길잡이를 한다. 여행 참가자들은 KBS 예능프로그램 1박2일에 나왔던 아름다운 한옥길 가회동 31번지, 북악산과 총리공관이 한눈에 들어오는 화개길, 화려한 야경을 자랑하는 삼청길을 걸으며 북촌의 어제와 오늘을 듣는다. 올 3월부터 시작한 북촌여행은 지난달 말(31일)로 7회째, 총 100명이 다녀갔다. 고씨는 “공정여행 자체가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할 수는 없다”면서 “기존 여행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한 참가자들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교육적인 프로그램’이라고 좋아한다”고 말했다.

세계 유산 ‘계단식 논’ 복구에 참여 

필리핀 여행은 마닐라의 과거 스페인 식민 유적지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계단식 논’, 주변마을과 원주민을 ‘체험’해 보는 프로그램이다. ‘필리핀’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관광지 세부·보라카이 등을 기대하는 여행자라면 이 여행상품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다음 달 19~25일 6박7일 일정(129만원)으로 진행하는 ‘젊음, 열정으로 복원하는 세계문화유산’ 프로그램을 살펴보자.

▶1일차:마닐라 도착.

▶2일차:스페인 식민 유적지 인트라로무스, 성 어거스틴 성당, 산티아고 요새 둘러보기. - 야간버스 타고 북쪽으로 8시간 이동. 

▶3일차:오전 5시 계단식 논을 일구는 마을 키안간 도착.- 국제 비정부기구(NGO) ‘SITMO(필리핀 빈민지역의 계단식 논 복원을 위한 단체)’ 사무실에서 현지상황 설명 듣기. -인근 바이니난 마을을 찾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계단식 논’ 복원(허물어진 논둑 쌓기)에 참여. 

▶4일차:키안간 지역 제2차 세계대전 격전지와 박물관 방문 

▶5일차: 바타드 마을 사람들과 계단식 논 복원- 마을 일대 트레킹-원주민들과 축제

▶6일차:자유시간 -마닐라로 이동

▶7일차:자체 사진전 열고 이번 공정여행 돌아보기-아시아 최대 쇼핑몰 ‘몰 오브 아시아’ 둘러보고 문제점 느껴보기-서울로 귀국. 

전체 여행일정이 마치 TV 다큐멘터리물 한 편에 직접 참여하는 듯한 느낌이다. 고씨는 올 1월 16명의 대학생을 모아 7박8일 일정으로 필리핀을 찾은 이후 최근까지 다섯 차례의 필리핀 공정여행을 마쳤다. 그는 “계단식 논 복원에 참여하고 현지 주민들과 대화하는 식의 체험형 ‘공정여행’ 일정을 짜기 위해 지난해 1년 동안 필리핀에 체류하면서 원주민들과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고씨가 공정여행을 주제로 창업에 나선 것은 군 제대 후 여행에서 얻은 경험에서 시작했다. 그는 2008년 4월 제대 후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세상을 알고 싶었다. 마침 모 금융기관에서 주최한 해외봉사 프로그램이 있어 태국으로 떠났다. 치앙마이의 카렌족 마을에 바이오에너지 생산 시설을 설치해 주는 이벤트였다. 고씨는 현지 홈스테이에서 만난 카렌족을 통해 원주민의 고단한 삶을 이해하게 됐다. 이듬해 필리핀으로 넘어가면서 “해야 할 일”을 찾았다. 그는 “동남아 휴양지를 찾는 관광객은 대부분 지역경제와는 단절된 대자본이 만들어 낸 시설 속에서 현지 사회·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즐기다가 돌아간다”며 “지역경제와 환경을 생각하면서 진실을 찾아가는 여행을 기획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그의 고민은 지난해 말 ‘공정여행’을 주제로 만든 인터넷 카페로 태어났고, 이게 여행사 공감만세로 이어졌다. 

그는 사업가일까 아님 사회운동가일까. 그는 “만약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사회운동가를 고를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이런 활동 속에서 이윤을 만들어 낼 때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신념을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별명이 ‘고(Go!)’라는 이 피 끓는 20대 청년 창업가 겸 사회운동가의 활동을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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