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를 생각하는 마음,
여행객의 배낭에도 들어가다
자유기고가 송원이
지속가능한 지구,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을 인류를 위해 이제 세상은 ‘책임’이라는 단어에 무게를 싣는다. ‘현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개발을 하되, 미래 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까지 방해하지 않는다.’는 지속가능발전의 개념을 실현하는 데, 개인, 사회, 기업, 국가 등은 각각의 사회적 책임을 구체화하고 수행한다. 그리하여 인류는 개인이 꾸린 여행 배낭에도 ‘책임’이라는 꼬리표를 단다. 수년 전부터 새로운 트렌드로 서서히 부상하는 ‘책임여행’이다.
여행 장소의 환경과 문화를 존중해
직장인 A씨의 휴가는 매년 늦가을이다. 늦가을 휴가는 여름휴가와 비교해 아쉬울 게 없다. 번잡스럽지 않고 저렴하며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존중받는 느낌까지 든다. 올해 그는 미얀마 위파사나 명상센터에서 마음을 닦는 명상 여행을 계획하고 여행 정보를 수집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정보 발견! 미얀마에서 쓰는 돈이 미얀마 군사정부를 돕는 상황이므로 정부 소유의 숙박, 교통시설을 이용하지 말자는 전 세계 책임여행자들의 가이드이다. A씨는 올 가을 휴가에 ‘책임여행’이라는 부제를 붙이기로 결심했다. 책임여행, 착한여행, 공정여행 상품을 내놓은 국내 여행사를 통해 미얀마 명상 여행과 비슷한 콘셉트를 가진, 라오스, 베트남 여행을 결정한 것이다.
책임여행은 1992년 ‘지구를 건강하게, 미래를 풍요롭게’라는 슬로건 아래 개최된 리우 회담에서 ‘대안관광’이 제시되며 그 개념이 알려졌다. 책임여행은 여행객이 여행하는 곳의 환경과 문화를 존중하고 보호할 책임을 가진다는, 기존 여행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대안적 여행이다.
책임여행이 확산된 것은 2000년대 이후 유럽. 책임여행의 대표적 여행사인 리스폰서블트래블닷컴(www.responsibletravel.com)은 이제 10년차 기업으로 매년 4배 이상의 성장을 거두고 있다고 한다.
책임여행의 여행 상품은 무엇이 다를까. 일단 현지 문화를 배려하며 사람,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여행을 통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취지를 살리고자 한다. 되도록 숙식도 다국적 체인 리조트나 식당이 아닌, 현지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홈스테이, 식당, 가게를 이용하여 참가자들의 여행 경비가 그 지역사회에 돌아가게 한다. 비행기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지구 온난화를 유발한다는 판단에 비행기 여행을 자제하는 상품도 있다. 리스폰서블트래블닷컴은 ‘난 비행기 안 탈거야(I don’t want to fly)’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프랑스 남부 자전거 투어, 스코틀랜드 카약 여행 등을 소개한다. 현지의 사회적, 문화적 상황을 체험하는 상품도 있다. 태국 여행이라면 코끼리들이 관광 상품에 투입되어 학대받는 상황을 고려해, 여행객들이 코끼리 병원에서 직접 코끼리를 치료하는 실습 프로그램을 경험하는 식이다. 히말라야 트레킹이라면 가장 싸게 포터를 구할 수 있는 여행사 대신 포터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는 여행사를 소개한다.
책임여행, 국내 프로그램도 생겨나
책임여행에서는 종종 여행객이 불편함, 혹은 상대적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려면 여행비용은 올라갈 수밖에 없고, 지역경제를 돕기 위해 낡고 비싼 숙박, 교통시설을 일부러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여행상품도 최저 가격을 따지는 한국인, 성숙하지 못한 한국의 여행 문화를 생각하면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러나 변화의 기운은 감지된다. 태평양지역관광협회(PATA)가 올해 초 한국, 인도, 중국, 독일 등 10개국 5,050명을 온라인 설문 조사한 결과, 한국인 설문 참여자 63%가 ‘현지 문화와 환경을 보존하는 책임있는 여행에 여행 경비의 25%까지 더 쓸 수 있다.’고 응답했다. 착한 소비, 공정무역이 한국에서 또 하나의 소비 시장을 형성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책임여행의 확산이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다.
더욱 긍정적인 것은 한국인에게 익숙한, 한국 스타일의 책임여행을 제시하는 국내 사회적 기업이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착한여행(www.goodtravel.kr)’은 서울시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된 책임여행 여행사. 지난해 동남아 6개 지역인 중국 운난성,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 관련 프로그램 <매콩강 시리즈>를 시작으로 책임여행 사업에 본격 뛰어들었다. 노동부 인증 사회적기업인 ‘트래블러스맵(www.travelersmap.co.kr)은 해외 책임여행과 함께 국내 책임여행 프로그램도 선보인다. 올 가을에는 야생화 트래킹의 1번지라는 곰배령 들꽃 여행, 대기업의 골프장 건설 논란을 겪고 있는 굴업도 에코 여행, 한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된 지리산 둘레길 여행의 원조인 지리산 숲길마실 프로그램 등이 기획, 진행된다.
물론 쉬러 가서까지 사회적, 교육적 의의를 생각해야 함에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몇 가지만 배려해 보자. 첫째, 해외 관광지에서 어린이에게 사탕이나 선물, 돈을 주지 않는다. 돕고 싶다면 현지인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구호단체를 통한다. 둘째, 현지 물가를 존중하라. 바가지를 씌우는 물건 값은 깎되, 정당한 비용은 지불한다는 생각을 가지자. 셋째, 멸종 위기 종으로 만든 제품은 피한다. 거북이알 수프, 샥스핀 등은 먹지 말고 악어 핸드백도 사지 않는다. 넷째, 문화적 차이와 금기를 미리 배우고 존중하라. 태국에서는 아무리 귀여워도 아이들의 머리를 두드리면 안 되고 네팔 가정집 안에서는 우산을 펴면 안 된다(참고:윤리적 여행자 www.ethicaltraveler.org). 이 정도만으로도 책임여행의 훌륭한 출발이다.
[출처:TTA Journal no.135 pp.15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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