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지구별여행자 6기를 마치며
※ 청소년 지구별여행자는 트래블러스맵 교육여행팀에서 운영하는 6개월 과정의 주말여행학교입니다.
음...
6기 문집에 들어갈 글을 준비하면서 사실 글의 방향을 도무지 잡을 수가 없었다.
궁별들에게 하고 싶은 말과 지구별을 멋있게 어필하는 글과 인도네시아 여행후기까지 한 번에 다 나왔으면 좋겠는데, 글쓰기는 언제나처럼 귀찮고 어려운 일이다. 이거 뭐... 시동을 거는 데만 2주가 넘게 걸렸다. 하늘 미안해.
지구별을 시작하면서 진행하면서 끝내면서 느낀 점이 모두 달랐는데,
그 마음을 정리하는, 평가하는 과정이 가장 필요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인척하기 참 어렵다
첫 번째 여행의 주제는 여행자로서의 예절과 배려를 배우는 것인데, 길별들 입장에서는 궁별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여행이었다. 신발정리 해라, 조용히 해라, 밥 먹을 때 투덜대지 마라... 물론 행동에 대한 지적보다 그 행동을 왜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더 길어졌지만 결국 똑같은 잔소리가 아닌가. 나는 무섭고 화내는 사람보다, 믿음을 주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나도 내가 믿는 사람의 말은 들리니까, 들었으니까.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내가 하는 말에 궁별들이 믿음을 갖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내가 하는 잔소리가 반대쪽 귀로 그대로 빠져 나가는 게 다 보였으니까.
시작파티 때 축하곡으로 티거와 함께 불렀던 노래 ‘잔소리’가 현실이 되다니! 싫다 싫다 너무 싫다. 어른인척하기가 참말로 싫었다.
모별편지
13명의 궁별들과 함께 여행을 시작한 지 어느덧 석 달째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두 차례의 국내여행과 몸놀이, 음악수업, 여행인문학, 여행기획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앞으로 사진수업과 서울 세르파(기획여행), 그리고 본격여행을 위한 여행지학습이 남아 있지요. 궁별들에게 어떤 수업은 인기가 많고, 또 어떤 수업은 조금 지루하기도 했습니다. 눈에 띄게 변화를 보여준 궁별도, 서서히 변하는 궁별도, 아직은 아리송한 궁별들도 있지요.
그동안 궁별들은 서로 많이 친해졌고, 건강한 여행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 약속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수업시간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여행지에서도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 꼬박꼬박 수업에 참여하는 궁별들이 대견하고, 또 아이들을 믿고 보내주시는 모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아이들이 마지막 본격여행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많은 격려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모별편지 초안을 작성하면서 오글거림과 함께 가슴 뭉클한 무언가가 있었다. 멋 부리며 쓴 글이지만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변하고 있었다.
본격여행 - 이것 빼고 다 좋았어
숲 속의 인간, 오랑우탄이 나무 위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혹성탈출이 생각난다.
덥다, 아무 생각이 없다, 지루하다, 불쌍하다, 이렇게 보는 거 싫다. 왜 그렇게 생각하니?
오랑우탄을 만난 몇몇 궁별들은 불편해했다. 많은 카메라와 관광객들, 인간이 주는 바나나와 우유에 길들여진 오랑우탄에게, 인간에게 들킨 밀림은 동물원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의 공정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떠난 여행이, 그 걸음 자체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관광객, 우리가 준비했던 친환경 비누와 치약이 무색하게 배에서 나오던 기름과 매연... 칼리만탄의 열대밀림과 아름다운 별무리와 반딧불이가 마냥 좋을 수만은 없는 이유였다.
우리가 하는 이 여행이 세상을 이롭게 바꿀 수 있을까?
까맣고 이쁜 얼굴들
본격여행에서 돌아와 수료파티를 준비하며 일주일 만에 만난 궁별들 얼굴이 어딘가 조금 달라 보인다. 까맣게 탄 얼굴, 표정이 야물어졌고, 눈빛도 조금 깊어진 것 같다.뜨거운 여름을 보낸 아이들의 얼굴에 제법 여행했다는 태가 난다, 이제 정말 끝이라고 생각하니 섭섭하기도 하다.
인도네시아식 시간
돌이켜보니 인도네시아에서 뿐만이 아니다. 매주 토요일, 일주일을 돌아보는 자신의 이야기를 했고,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휴대폰 없이 반나절을 보내고, 한 자리에서 5분 동안 가만히 서서 사진을 찍기도 했고, 모두 자리에 앉고 나서야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어쩌면 지루했을 수도 있는 시간들,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지루한 시간을 갖는다는 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돈으로 살 수도 없는 시간을 우리는 그렇게 지켜 내고 있었다.
스마트폰, 게임과 TV가 없고, 학원과 시험이 없었던 인도네시아에서의 시간을 떠올려보자. 조금 더 원시적으로, 조금 더 느리게, 조금 더 비우면서 자신만의 속도를 가질 수 있었지. 함께였지만 분명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이 많았던 인도네시아식 시간.
마지막으로, 부르면 기분이 좋아지는 마법 같은 이름들을 불러본다.
새벽, 딸기, 별, 샴, 룰루, 우주, 산, 망치, 랑카, 수아, 귤, 한올, 제타, 뜨리마시카~
-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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