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누구와 함께 떠나고 싶은가?
* 글쓴이 : 트래블러스맵 교육여행기획자 안야리(김미경)
* 이 글은 채식주의잡지 비건 22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여행을 즐기며 살지는 않았다. 어쩌다 혼자서 놀 수 있는 시간이면 방안에 콕 박혀 텔레비전 리모콘을 손에 꼭 쥐고 딩굴딩굴 굴렀다. 라면에다 밥 말아 먹고 불룩한 배를 껴안고 다시 엎드려 텔레비전을 안고 있는 그 날들이 싫지만은 않았다. 떠나는 것보다 머무는 것을 더 선호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올해로 여행을 하며 먹고 살게 된 지 4년이나 되었다. ‘기획자’라는 삶이 좋아 기획하는 일이라면 이것저것 마구 뛰어 들었다. 그러다 여행기획자 삶에 호기심이 생겨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여행’이라는 단어는 설렘을 주었고 방랑자의 꿈을 꾸게 해주었다.
어디에서 무엇을 누구와
공정여행, 책임여행을 지향한다는 트래블러스맵의 모토가 마음에 들었고, 공정한 여행이 무엇인지 공부하고 고민하며 마음껏 돌아다녔다. 지리산 둘레길, 청산도, 관매도, 증도, 울릉도, 통영, 곰배령, 오키나와, 필리핀, 베트남, 케냐, 탄자니아, 잔지바르, 잠비아를 돌아 다시 서울로 돌아와 구석구석 헤집었다. 여행으로 매 주말마다 가방을 싸야 하는 귀찮음이 있을지언정 배낭을 짊어진 여행자가 되어 핸드백을 어깨에 메고 문 기둥에 졸고 있는 직장인들과 나란히 지하철을 타고 있노라면 그 희열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여행지의 매력을 즐길 줄 알며 방랑하는 삶이 마음에 들었다. 여행을 통해 많이 걷고 지역의 특산물을 맛보게 된 나의 삶은 웰빙 그 자체였다. 그렇게 2년 정도가 흘러 울릉도 여행을 시작할 때 즈음, 어디에 가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보다는 누구와 어디에 가서 놀 것인가, 누구와 이 여행을 가면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이 높아지고 서로에 대한 기대감이 커져가는 여행을 만들고 싶었다. 함께 여행한 사람과 서로에 대해 감동을 느끼길 바랐다.
10대, 그 이름은 친구
문득 10대 친구들이 떠올랐다(나에겐 20대, 30대보다 10대들을 꼭 친구들이라는 보조명사가 붙는다). 수 년 동안 청소년단체에서 일하며 그들과 신나게 놀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프리카트럭킹여행학교에 아주 시니컬하게 아프리카 여행을 시작했던 한 소녀가 여행이 끝나갈 무렵 누구보다 관계를 잘 형성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여행을 통해 아름답게 변화해나가던 10대 친구들 생각이 계속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감, 그 마음이 매혹적이었다. 내게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세상은 학교였다. 여행은 놀이이고 배움이었으며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여행은 모든 사람에게 학교며, 특히 청소년에게도 여행은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라는 확신이 생겼던 것이다. 바람,하늘, 별과 연대할 줄 알고, 로드킬을 당한 개구리 한마리에 가슴 아파할 줄 알며, 땅바닥만 쳐다보며 허리를 깊게 숙인 체 걷는 할머니를 보며 삶의 깊이를 가늠할 줄 아는 청소년이 되길 간절히 바랐다.
청소년 유랑단
그래서 청소년과 떠나는 여행을 기획했다. 토요일과 일요일 전국 여행지를 찾아 걷고 놀고 먹는 1박 2일 여행 ‘놀토유랑단’. 공정여행이 무엇인지 공부하고 여행지에 대한 역사와 문화에 대해 이해하며 주체적으로 배낭여행자가 되어 여행을 실행해보는 6개월 과정의 주말여행학교 ‘지구별여행자’, 먹고 걷고 자는 도보여행이 일상이 되어 7일 동안 자신과 싸우며 ‘기특한’자아를 찾아가는 ‘걸어서 바다까지’. 등 다양한 형태의 청소년교육여행이 진행되었다. 여행을 통해 세상으로 나아갔을 때 사람과 소통할 줄 알고, 자연을 아낄 줄 알며, 지역경제에 대해 생각할 줄 아는 공정한 여행자가 되길 바랐다. 공정함, 책임감 등을 머리로만 이해하지 말고 행동할 줄 아는 여행자로 변화되길 바란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성장
청소년들은 멋진 여행자로 변화했다. 지리산 의장마을 할머니가 해주시는 비빔밥이 분식집 비빔밥보다 더 맛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리막길이 있다면 반드시 오르막길이 있다는 산길을 이해했다. 독도가 울릉도, 제주도보다 먼저 태어났으며, 셋 중에서 가장 큰 섬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스스로 지도를 펼쳐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딘지 찾아보고 여행지를 이해하는 배낭여행자가 되었다. 단 몇분간의 만남이 소중한 인연으로 연결된 것을 기뻐하며 이별하며 눈물 흘릴 줄 아는 감성을 가지게 되었다. 탄자니아의 응고롱고르 분화구를 보며 대 초원에 펼쳐진 인류의 기원을 이야기 할 줄 아는 여행자가 되었다. 그렇게 청소년은 자신의 여행 이야기를 써내려가며 사람들과 공유할 줄 아는 소통의 능력자로 성장해 나갔다.
여행으로 빚은 일상
청소년들의 일상생활이 여행으로 더 풍부해지길 바랐다. 그들이 신나게 놀고 맛있게 먹고 잘 자는 것, 그렇게 자기 몸을 만들어나가는 것을 옆에서 보는 것이 더 없이 재미있었다. 그래서 청소년들과의 여행은 즐거웠다. 물론 고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하다. 아무리 그들이 좋아하고 훌륭한 프로그램이라도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시행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지켰다.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안전이 제일이기에 24시간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된다. 여행지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는 것 또한 놓쳐서는 안 되는 업무로, 떠나기 몇 달 전부터 여행 에세이나 사회과학적 서적 두, 세권을 읽고 공부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어느 날 사무실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1박2일 주말여행으로 우리 아이가 성장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을까요?”
“…”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1박 2일 여행으로, 6개월 과정의 주말여행학교로 모든 청소년들이 주체적, 자발적, 미래지향적, 예의 바른 여행자로 변화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4일간의 여행이 끝남과 동시에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 때 참여한 지리산 1박 2일 여행과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참여한 울릉도 3박 4일 여행이 몸과 마음에 축적되어 일상생활에 작용을 하는 것이다.
여행의 경험이 몸으로 기억되고 마음에 새겨져 있다면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해내지는 못하더라도 몇 달 뒤, 혹은 면 년 뒤에 스스로 인생에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지점에서 한몫을 해낼 수 있으리라. 청소년들의 긍정적인 가능성을 믿고 싶다. 그 가능성을 기대하고 신뢰하기에 그들의 동반자가 되어 여행을 하고 싶은 것이다. 얼마 안있으면 15명의 청소년과 캄보디아로 2주간 여행을 떠나게 된다.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온 한 이주노동자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캄보디아 현실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진작가를 초대해 강의도 들어보며 캄보디아의 문화와 역사를 공부하고 여행을 떠나려 한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여행지에 대한 매력은 깊어가고 아는 만큼 보이듯이 청소년들의 질문은 점점 많아지고 준비하는 여행에 대한 재미를 쏠쏠히 맛보고 있다. 몸과 마음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청소년과 동행하여 여행을 통해 길 위에서 배우고 놀고 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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