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러스맵의 '인생은 아름다워! 이탈리아 일주 8박9일'을 다녀오신 이아님께서 공유해주신 후기입니다.]
1. 序
이탈리아는 별 관심이 없는 나라였다. 정확히 말해서 관심을 갖기 어려운 나라였다. 로마의 넘치는 유적과 엄청난 미술품의 압박에, 몇년은 공부해서 답사하여야 할 나라라고 생각해서, 일생에 나와 인연이 닿기는 어려운 나라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이탈리아를 선택한 이유는 불쑥 멀리 떠나고 싶은데, 여행 계획을 세우기는 귀찮아서 적당한 패키지를 알아보던 중 시기와 비용이 맞았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이유에서였다. 여행전날까지 이탈리아에 관한 책자 하나 들추어 보지 않았으며, 간간히 연락을 해주신 블루님의 전화도 무미건조하게 받았다. "궁금한게 있으세요?" 라는 물음에도 " 없어요. " 라고 딱잘라 이야기할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여행전날밤에도, 간단히 짐을 꾸리고 환전을 하고, 별다른 설레임 없이 일찍 잠에 들었다.
2. 낯설은 이탈리아, 외롭고 외로워.
일행은 15명정도로, 가족으로 오신 8명, 그리고 개별 여행으로 온 4명, 부부, 그리고 인솔자인 메이언니였다. 2시쯤 출발해서, 한국시간이면 새벽 3시에 가까운 시간에 베니스에 도착했다. 현지시간은 11시. 그 순간 내가 지구 반대편에 와있구나 라는 실감이 났다. 그리고나선 인솔자님이었던 메이언니를 만나서 택시에 타고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잠이 들어버렸다. 비행기에서도 여행이 끝난 다음에 있을 세미나를 준비하기 위해 제대로 자지 않고 책을 읽어야 했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그 책도 이탈리아 철학자가 지은 책이었으니, 내가 전혀 이탈리아에 관한 책을 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베네치아]
첫날은 베네치아. 비가 살짝 내리는 쌀쌀한 날씨에 관광이 시작되었다. 리알토다리를 지나, 산마르코대성당과 산마르코광장으로 향했다. 베네치아의 거리는 활기가 있었고 비가 살짝 내려 맑고 예쁘진 않았지만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수많은 베네치아의 사진은 대부분 날씨 좋은 날 찍은 것이니, 흔치 않은 관경임에 틀림이 없었다.
[메이가 찍은 날씨 좋은 날 베네치아 사진 ^^]
점심을 먹기 전에 산마르코대성당을 들를 예정으로 짧은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산마르코 대성당이 줄이 너무도 길어서 대성당은 포기하고 광장을 걸었다. 가족다위 여행객이 많아서 혼자 온 내가 상대적으로 외로웠다 가족으로 오신 8명을 생각하면 더욱 더 그랬다. 서로 단체사진도 찍고 찍어주고 손을 꼭 잡고 이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진짜 여행을 오긴 왔는데, 그래도 혼자구나 싶었다. 나폴레옹이 가장 좋아했다던 산마르코 광장의 비내리는 풍경도 아름다운 산마르코 대성당도 건축의 기초도 모르는 나는 그저 좋네 라는 짧은 감상뿐이었다. 이 감상을 공유할 수 있는 친한 일행이 옆에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다. 점심을 먹은 후 바포레토를 타고 무라노섬에 가서 유리공예를 구경하고 한두개의 기념품을 골라왔다. 입으로 그 것을 실제 만드는 장면은 신기했다.
[비 오는 산마르코 광장]
3. 피렌체. 진짜 이탈리아를 만나다.
[베니스에서 피렌체 가는 길]
다음날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기차를 통해 피렌체로 이동했다. 날씨는 다행히 개어 기차를 타면서 예쁜 이탈리아의 마을을 구경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의 마을의 색감은 대부분 파스텔톤이다. 노란색도 많고 분홍색도 많고 보라색도 눈에 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벽의 색깔과 지붕의 색깔이 어색하지 않게 어울리는, 그러면서 따뜻한 감성을 전하는 마을은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되었다. 조금씩 일행과도 가까워졌고 앞에 앉은 어머님께서 정말 딸같이 사진도 예쁘게 찍어주셨다. 사람을 만나는 여행. 피렌체에서부터 진짜 여행이 시작되었다.
피렌체에 도착해서 호텔로 이동해서 짐을 내려놓은 뒤, 셔틀로 역으로 나온 뒤 가이드님이 엄선하신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피렌체는 티본스테이크의 본고장. 본고장답게 굉장히 두툼한 고기가 나왔다. 처음으로 미디움을 먹어봤는데, 살짝 피가 흐르긴 했지만 연하고 맛있었다. 이제까지 한국에서 이탈리아 음식점을 많이 돌아다닌 덕에 눈에 익은 이탈리아 요리를 메뉴판에서 발견하고 시켜서 음식도 느끼하지 않고 맛있었다.
그리고는 피렌체 두우모와 우피치미술관을 보기로 하고 떠났다. 여기서 두우모는 성당인데, 나는 그만 시뇨리아 광장에서 신발끈을 묶다가 일행을 놓치고 말았다. 핸드폰 로밍도 해오지 않았기에 인솔자님과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호텔을 아니까 별달리 겁은 안났지만 나를 걱정하고 있을 메이언니가 걱정이었다. 메이언니는 눈이 커서 걱정스러워 하는 표정이 눈에 선했다. 우피치미술관을 간다고 했던 것 같은데 라는 기억을 붙잡고 우피치미술관을 빙빙 돌았지만 일행은 보이지 않았다. 한 5~6바퀴 돌았을 무렵 두우모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물어물어 두우모를 찾았다. 실은 여기서 럭키였다. 그때 처음으로 이탈리아의 표정을 보았다. 광장에서 환하게 웃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조금 큰 빨간 건물들. 가죽좌판들, 대학로처럼 초상화와 캐리커쳐를 그려주는 화가의 모습. 여기에서 진짜 이탈리아에 처음으로 빠져들었다. 다행히 두우모에서 메이언니를 찾고, 일행과 같이 우피치미술관으로 이동해서 짧게 전시를 보았다. 이건 좀 아쉬웠지만 그래도 미리 예약을 해주신 트래블러스맵덕분에 그나마 미술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림도 멋있었고, 창틀을 통해 보는 피렌체의 강은 아름다웠다.
미술관을 마치고는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택시를 타고 올라갔다. 난 바로 내려오지 않고 앉아서 조금 더 피렌체를 보았다. 트래블러스맵의 여행의 장점은 단체여행중에서도 어느정도의 자유가 허용된다는 점이다. 나는 여행중 이를 악용하다시피 해서 인솔자님의 걱정을 끼쳤지만 자유여행에 자신이 없는, 처음 자유여행을 가는 사람들에게 트래블러스맵여행을 추천할 수 있는 이유이다. 집나갈 아들 딸이 걱정이신 부모님께도 추천드린다.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보는 피렌체도 아름다웠고, 그곳을 함께 보는 피렌체의 가족과 연인의 모습은 더 아름다웠다. 이탈리아인들은 한국인들보다 좀더 솔직해서 표정에 행복하다고 쓰여있다. 보는 것 만으로도 따스해진다. 아빠에게 안겨서 망원경을 보고 있는 이탈리아 꼬맹이의 모습, 남동생과 여동생을 꼭 껴안고 있는 듬직한 첫째의 모습, 내가 본 피렌체는 정말 예뻤다.
[피렌체에서 만난 꼬맹이]
미켈란젤로 광장을 쭉 내려오면, 베키오다리가 보인다. 베키오다리를 구경하고, 조금 더 피렌체의 거리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께 드릴 가죽지갑을 구입하고 이탈리아 사람들의 표정을 훔쳐보다가 호텔의 셔틀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셔틀위치를 찾는데 살짝 문제가 있었지만 뭐, 그렇게 헤메지는 않았다.
4. 친꿰떼레 트래킹. 아름다운 자연과 마주하다.
친퀘떼레는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자연유산으로 해안절벽의 풍광 등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자연과 마음들이 어우러진 유럽의 손꼽히는 트래킹 코스이나, 우리가 갔을 때는 낙석사고의 위험으로 트래킹은 하지 못했고 리오마지오레, 마나로라, 베르나짜 마을을 구경하는데 그쳤다. 이동시간이 있어서 세 마을도 찬찬히 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들른 리오마지오레에서는 점심도 먹고 한 1시간 반정도 둘러볼 수 있어서 리오마지오레가 가장 인상이 남는다. 인솔자님말로는 베르나짜 마을이 가장 아름답다는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주룩주룩 비가 오고 있어서. 리오마지오레에서 메이언니가 찾아낸 굉장히 맛있는 집에서 해물요리를 먹고, 리오마지오레 마을 구경에 나섰다.
[마나로라]
위에서도 얘기했듯 절벽에 딱 달라붙어 있는 예쁜 마을이었다, 주변의 에메랄드빛 바다색과도 마을은 잘 어울렸다. 각 마을마다 하나의 테마로 이루어져있는 듯 보였는데 리오마지오레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느쪽에서 보아도 예쁜 마을의 골목길, 그 사이를 오가며 마주친 여행객들의 표정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해적기가 꽂힌 식당을 옆에서 훔쳐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활짝 핀 해적기가 찍고 싶어서 그 앞에 서있으니 내 마음을 읽으신 어느 이탈리아 남성분께서 깃발을 활짝 펴주셨다. 그런 작은 친절이 이탈리아의 가장 큰 매력이다. 마을에서 보는 자연도 예뼜고 자연에서 보는 마을도 예뻤다.
[친절한 이탈리아 아저씨와 해적기]
사람때문에, 일때문에 힘들고 지칠 때 그 사람이 한 번도 밟지 않은 땅에 가서 그 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확인하면 위로받는다. 내가 너무 힘들어도 이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 돌아간다는 것을 확인하고나면 세상 끝날 것 같이 생각한 내가 얼마나 바보같았는지 깨닫게 된다. 친꿰떼레에서 본 이탈리아의 마을은 날 다시 한번 일으켜 세워 주었다.
5. 오르비에또에서 달콤 씁쓸한 와인에 마음과 몸을 빼앗기다.
다음날 오르비에또에서의 기억은 부끄러워서 차마 꺼내고 싶지도 않다. 점심을 먹기 전까지는 아주 좋았다.
오르비에또에 도착하기 전 기차에서 시칠리아에서 온 엄마와 두딸을 만났다. 로마관광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사람을 굉장히 좋아하는 꼬맹이였다. 귀엽게 생겨서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생긋 웃으면서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해주었다. 아이만 찍었다면 Good 이었겠지만 나까지 같이 찍는바람에. 차마 공개하지 못할 사진이 되어버렸다. 아이에게 초코렛을 건네니 빼빼로와 비슷한 과자를 답례로 건넸다. 기차안에서 그 아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오르비에또에 도착해서 먼저 슬로우시티 본부를 찾았다. 그 곳에서 슬로우시티에 대해 가이드님의 이야기도 듣고, 그곳에서 오느비에또의 주변마을을 조망한 뒤 내려와서 오르비에또의 지하를 탐험했다. 지하공간에서 올리브를 짜기도 하고, 식용을 위해 비둘기도 키우기도 한다고 이탈리아분이 설명하시면 우리 가이드님께서 작은 목소리로 통여해주셨다. 그런 것이 잘 보전되어 있고 현재도 이용한다는 것이 이탈리아가 가지고 있는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과거가 있고 그 과거를 이어받은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다는 것. 사람들이 이를 잊지 않는다는 점.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100년전의 우리 조상님이 진짜 우리조상님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오르비에또]
그 뒤에 가이드님의 맛집에서 맛있는 수제파스타와 와인을 마셨다. 와인맛은 훌륭했고 수제파스타는 맛있었지만. 문제는 내가 술에 약했다는 것이다. 술에 약하지 않는데, 계속되는 여행으로 몸이 지쳐있었는지 몇잔 마시지 않았음에도 살짝 취해서 오르비에또의 마을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두우모 앞에 쭉 앉아있을 뿐이었다. 춥게 입고 온 내가 걱정되었는지 일행분이 자신의 머플러를 해주셨다. 머플러는 답답해서 별로 하지 않는데, 일행분의 머플러는 얼마나 따뜻했는지. 일행분이 챙겨주신 덕분에 살짝 알딸딸한 상태로 로마에 도착해서 바로 잠에 들었다.
6. 로마의 거리를 걷다. 아침의 콜로세움부터 저녁의 콰리넬레 광장까지.
다음날 아침에 숙취에 시달리면서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로마의 시내투어가 짧은 게 아쉬웠다. 콜로세움에서 30분이라니. 여행오기 전 지인으로 부터 꼭 콜로세움 안을 들어가보라고 해서, 콜로세움에 도착하자마자 줄을 서서 콜로세움에 들어갔다. 콜로세움의 입장로는 12유로이다. 이걸 사서 들어가면서도 한 15분정도밖에 못볼 것 같아 아쉬웠다. 콜로세움 안의 사진은 인터넷 검색으로도 볼 수 있는걸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 지인은 허튼 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기에 믿고 거금을 투자했다. 기대 이상이었다. 건축물은 정말 사진이 전부가 아니다. 실제가 주는 아우라는 말로 설명할 수도 없다. 따스한 햇볕에 콜로세움 안의 벽을 비추었다. 1000년전 이 곳에서 죽어간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어떠할까.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따스한 햇살이 벽을 비추는 살짝 허물어진 벽앞에서 흘러간 시간만이 그 감정을 알고 있겠지. 그리고 그 감정은 나에게도 1%정도는 전해졌다.
[트레비분수에서의 노부부]
그리고 포로로마노와 캄피톨리노 언덕을 구경했다. 로마는 굴러다니는 유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갈데가 많았기에 한 곳을 오래 볼 수 없어 사진만을 찍는데 그쳤다. 그리고는 스페인광장을 구경하고 로마를 관광객들이 모두 가는 트레비분수에서 40분의 자유시간을 보냈다. 로마의 유적들은 사진보다 훨씬 크다. 당연하겠지만 실제로 보니 조금 더 멋있었다. 유적은 정말 실제로 보아야 유적이 주는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트레비분수에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나는 슬쩍 주변을 보았다. 화려한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꼬맹이를 활짝 웃으며 바라보고 있는 노부부와 눈이 마주쳤다. 이탈리아사람들을 보면 로마와 참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이탈리아인의 미소는 로마의 유적에 좀 더 빛을 더한다고 해야 하나. 트레비분수는 예뻤지만 노부부 덕분에 좀 더 예뻤다. 동전을 하나 던졌다. 다음에도 로마에 올 수 있도록, 그래서 다시 한번 이탈리아와 마주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리고 지갑을 뒤져 동전을 두개 더 던졌다. 다음에 로마에 올 때는 소중한 사람과 함께 올 수 있도록 해주세요라고. 내 소원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리고는 가이드님이 잘 아시는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셨다. 이탈리아 음식점은 인테리어부터 남다르다. 영사기가 벽안에 들어있지 않나, 친꿰떼레에서 본 것과 유사한 마을이 부조로 새겨져 있지 않나. 그 곳에서 맛있는 리조또를 먹고. 식사하러 온 부부의 아이와 사진을 찍었다. 물론 엄청 맛있었다. 리조또가 약간 죽같기도 해서 숙취해소에도 좋았다.
일행은 바티칸으로 , 나는 일행과 헤어져서 나보나광장에 들렀다. 바티칸은 보지 않고 로마 시내를 좀 더 구경하기로 했다. 곧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괜히 불안해졌기 때문이었다. 한국에 돌아가서 해야 할 공부와 읽어야 할 책들, 그리고 사람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져서 마음껏 걷고 싶었다. 그래서 이탈리아를 떠나기전에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잔뜩 보기로 했다. 덧붙이자면 이건 메이언니한테는 비밀로 했던 것인데, 가족의 선물을 사기 위해서 였다. 트래블러스맵은 쇼핑할 시간을 주지 않기 때문에, 정말 매의 눈으로 돌아다닐때 잘 보아야 한다. 트래블러스 맵에 내는 비용 외에 자유경비가 그다지 들지 않는 이유는 살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살 시간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나보나광장에서 판테온을 거쳐, 콜로세오, 베네치아광장, 트레비분수, 콰리넬리광장, 공화국광장까지 6시간정도를 쭉 걸으면서 구경했다. 광장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뒤에서도 보고, 앞에서도 보고 사람들도 보고, 상점에 들어가서 물건도 구경하고. 걸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상점에 들어가서 왕창 사버렸기 때문이었는데 (절대 지하철을 탈 줄 몰라서가 아니다! ) 베네치아 광장에서는 어릿광대에게 붙잡혀서 그 옆을 지나가던 한국인 관광객과 손을 잡게 되었다. 어릿광대는 빙긋 웃으면서 바그너의 결혼행진곡을 입으로 연주했고, 주변사람들은 정말 소리내서 웃었다. 얼굴이 새빨개져서 10미터쯤 가다가 손을 놓았더니 어릿광대가 어깨를 두드리며 좋은 여행이 되길 이라고 얘기했다. 한국인 관광객과는 어색하게 눈을 맞추었다. 길을 모르면 이탈리아인에게 물어보았다. 남녀불문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 내가 너한테 어떻게 알려줘야 네가 이 길을 헤매지 않을 수 있을까?"라고 미소지으면서.
7. 이탈리아 남부 투어. 폼페이와 아말피해안, 그리고 포시타노 마을.
이탈리아의 남부부어는 폼페이로 시작했다. 벤 2대로 이동했는데, 포시타노 마을로 가는 길이 험해서 좀 더 편의를 제공하려는 맵의 작은 배려였다.
로마초기에 폭팔한 화산에 묻혀버린 비극적인 도시. 예전에 책으로 읽으면서 내가 실제로 폼페이를 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는데. 작게 미소지으며 폼페이에 도착했다. 폼페이는 유럽 학생들의 수학여행으로 많이 찾는다고한다. 우리나라의 경주와 비슷하다. 아마도 과거와 현재의 연결을 중요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폼페이는 지금의 이탈리아와 확실히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 나라도 일제강점기가 없었다면 좀 덜할 것 같은데, 일제 강점기로 인해 문화 자체가 단절되어 버리니, 과거와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좀 많이 아쉽다. 폼페이에서 도시를 돌며 가장 큰 도로, 목욕탕, 그리고 사창가를 보았다. 건물의 아름다운 문양, 그리고 문 앞의 모자이크, 폼페이의 화려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폼페이의 광장안에서 가이드님이 오페라도 불러주셨다.
지인이 경주에서 황룡사지터를 보면서 느낀 점을 얘기해준게 떠올랐다. 그 지인이 저기에는 저런 건물이 저런 구도로 세워져 있었겠구나 라고 생각했다고. 현재에 아무것도 없는 그 곳을 바라보면서 그는 그런 상상을 했다고 했다. 나는 약간 따라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살짝 눈을 감았다. 건축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나로서는 저런 상상이 불가능했지만, 그 곳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폼페이사람들, 광장을 떠도는 아이들, 그리고 폼페이의 문양을 보면서 감탄해할 관광객의 모습은 상상할 수 있었다. 그 곳에도 사람이 살았다. 그리고 지금 나도 여기에 있다. 시간이 흐르면 내가 살았던 흔적만이 남아서, 또 몇천년뒤에 한국에 살고 있는 이가, 한국에 찾아온 이가 내 모습을 조금은 상상해 줄까. 라는 생각이 들으니 살짝 숙연해졌다. 시간앞에서는 누구나 겸손해진다.
[폼페이 목욕탕]
그리고는 아말피해안가를 드라이브한 후, 사진을 찍었다. 이 곳은 네셔널지오그래픽에서 선정한 죽기전에 한번은 가보아야 할 여행지 1위라고 한다. 그정도로 아름다웠다. 에메랄드빛 바다는 처음 보았다. 제주도의 바다도 그렇게 아름답다는데 내가 제주도에 갔을때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바다를 보면서는 탄성밖에 나오지 않았다. 바닷가를 걷고 싶어 라고 강렬히 생각했다.
[아말피 해안가]
그 후에는 소렌토의 한 음식점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이 음식점에는 냉장고가 없다. 그날 아침에 산 재료는 저녁까지 전부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마을사람들이 편히 식사할 수 있도록 가격도 저렴하고 맛있었다. 라자냐와 피자, 그리고 오징어튀김과 새우구이, 이탈리아 나물(?)을 엄청 먹었다. 베불렀지만 여기에 다시는 못올거같아서 아쉬움에 정말 열심히 먹었다. 20대 아가씨의 여성스러움을 보였어야 했는데, 음식이 정말 맛있어서 체면도 버리고 먹었다. 애인이 없으니 괜찮아 라는 위로를 하면서. 그리고 쉐프와 사진을 찍었는데, 이빨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서, 이탈리아에서 찍은 최고의 굴욕 사진이 되었다.
다음으로는 포시타노마을로 향했다. 이곳은 이탈리아 최고의 휴양지라고 한다. 절벽에 딱 달라붙은 하얀 건물들 그리고 그 앞의 에메랄드 빛 바다. 아름다움 그 이상이었다. 해안가에서 바다를 멍하게 바라보고 뒤돌아 마을을 돌아보고, 공놀이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다시 바다를 보고. 하루종일 이곳에 있어도 지루할 것 같지 않았다. 바다를 유난히 좋아하는 나지만, 포시타노에서 본 바다는 너무도 아름다워서 다음에도 또 오고 싶었다. 로마에서 7시간이면 온다는데, 가이드님은 웃으면서 "아씨라면 7시간 걸려서 올 것 같아요."라고 했다.
[포시타노]
로마로 돌아오는 길에는 가이드님으로부터 여러 힘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로마의 마지막밤이 지나갔다.
8. 末
마지막날에는 아쉬움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나서는 오랜만에 가족을 볼 생각에 설레여 12시간의 비행을 잠도 자지 않은채 버텼다. 8박 9일은 짧지만 긴, 길지만 짧은 시간이었나보다. 아무런 공부를 하지 않고 이탈리아에 가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건축과 유적, 역사를 잘 몰라도, 이탈리아의 사람들이, 예쁜 거리 만으로도 이탈리아는 충분히 매혹적이다. 죽기전에 한번은 이탈리아를 만나라. 정말 그렇다. 이탈리아에 다녀오고 이틀 뒤 미뤄뒀던 지인을 만났다. " 유럽물이 좋긴 좋네. 얼굴이 더 좋아졌어." 라고 했다. 살이 쩌서 저렇게 많이 걸었는데, 거의 저녁은 먹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트러블러스맵에서 워낙 맛있는 음식점을 섭외해줘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표정이 더 좋아졌다는 좋은 의미로 선해하길 했다. 이탈리아에 가서 왜 현명한 사람은 방황을 하지 않고 여행을 하는것인지 배웠다. 바람이 나서 한국에 귀국하자마자, 국내를 돌아볼 생각에 다시 설레인다. 트래블러스맵의 여행을 통해 나는 바람이 들었다. 그 바람이 나를 조금 더 위로하고 성장시킬 것을 믿는다. 그래서 감사하다.
다음에도 트래블러스맵을 이용할 것인지. 청산도는 가보고 싶다. 모로코는 여자혼자 위험하다니까 가보고 싶긴 하다. 그러니 앞으로도 쭉 인연이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9. 蛇足
여행 내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있었던 예쁜 메이언니에게, 많이 미안한 마음을 담아, 정말 열심히 후기를 썼습니다. 마지막날 입술이 터진 것이 쭉 마음에 걸립니다. 메이언니 정말 고맙습니다! 사진은 http://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3685395077에 올려두었습니다. 약 750장정도 찍었는데, 페이스북에 너무 자랑질인가 싶어서 많이 올리지 못했습니다. 직접 가서 보세요. 상상 그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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