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위기의 동물’ 시리즈
최근 새롭게 선보인 공상과학(SF) 영화의 고전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의 주인공 ‘시저’의 유일한 대화 상대는 오랑우탄 ‘모리스’다. 원작 소설인 1963년 작 <혹성탈출>에서도 오랑우탄은 체제 수호의 상징인 성직자와 정치인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현실 속 오랑우탄은 오히려 인간에게 쫓기는 몸이다. 지구상에 오랑우탄이 서식하는 곳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과 보르네오섬 두 곳뿐. 오랑우탄은 말레이어로 ‘숲 속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그냥 ‘우탄’(Hutan)이라고 부른다. 보르네오섬에서 오랑우탄은 오랫동안 터줏대감 노릇을 해왔지만, 수십년 동안 이어진 벌목 탓에 이제는 ‘멸종 위기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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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안 오랑우탄의 상당수는 하루 두번 ‘오랑우탄 재단’ 직원들이 주는 바나나와 우유를 먹으러 모여든다. 제인 구달(침팬지 연구), 다이앤 포시(고릴라 연구)와 함께 세계 3대 영장류 학자로 불리는 비루테 갈디카스 박사가, 지난 1971년 밀렵꾼에게 부모를 잃은 어린 오랑우탄을 구조해 보호활동을 해 온 뒤로 오랑우탄은 인간의 도움 손길에 익숙해졌다. 당시 재단 사람들 손에서 자란 오랑우탄들은 야생으로 돌아가 새끼도 낳았지만,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해 아직까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이곳에서는 이들을 야생에 살지만 덜 길든 ‘세미 와일드’라고 부른다.
» 탄중푸팅 국립공원에서 서열 1위 오랑우탄인 ‘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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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동안의 보르네오섬 여행은 많이 배우고 겪은 풍성한 여정이었지만, 한편으론 아쉬움도 남았다. 우리 일행과 달리, 영국·스페인 등 유럽 휴가객 대부분은 ‘공정여행’이란 거창한 이름을 달지 않고 이곳을 찾고 있었다. 여행 내내 멸종 위기 동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을 빼면, 뭔가 공익적인 측면을 기대하기에는 모자란 점도 있다. 벌목으로 밀려온 토사가 세코녜르강 절반을 흙탕물로 덮고 있어, 며칠간 제대로 씻지 못하는 고생도 감수해야 한다. 지난해 국립공원의 한해 방문객이 1000명을 넘으면서 인도네시아 정부가 입장 제한을 검토하고 있다는 점도 앞으로의 여행에서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동남아 호화 리조트 수영장에서 맞는 휴가에서 얻을 수 없는 ‘나도 지구인이구나’라는 생각과 ‘환경에 대한 짧은 고민’, 이 두 가지만으로도 충분히 고생의 가치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던 여정이었다는 것!
칼리만틴(인도네시아)=글·사진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sc·트래블러스맵 공동기획
출처 :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4933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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