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바브웨 빅토리아 폴스는 아프리카에서 내가 만난 도시 중에 가장 서구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거대한 볼거리를 이유로 관광객들이 많기 때문이겠다. 그래서인지 잘 닦여진 도로의 양 옆으로 카지노 영업까지 하는 큰 호텔들이 들어서 있고, 폭포 와 잠베지강 주변에서 할 수 있는 갖가지 액티비티를 영업하는 가게들과 패스트푸드점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액티비티를 할까 싶어 가격을 알아보니 만만치 않다. 편의와 만족에는 항상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
20,000,000,000달러짜리 지폐
캠핑장을 나서서 빅토리아 폭포(모시)로 향한다. 택시로 한 걸음에 닿을 수도 있지만 한 달 남짓 아프리카 여행을 하며 '뽈레뽈레'가 몸에 배여 천천히 걸어가기로 한다. 날은 더웠지만 곧 만날 시원한 폭포를 떠올리며 걷는 걸음이 더디지 않다. 처음 걷는 길을 두리번거리며 가는데 한 청년이 다가오더니 지폐를 내민다. '환전 해주겠다는 건가?' '짐바브웨에서는 미국 달러를 쓰면 된다 했는데..' 청년이 내민 지폐를 살펴보니 역시나 짐바브웨 달러다. 그런데 가만, 단위가 엄청나다. 20,000,000,000달러. 한 눈에 읽기 힘들어 그에게 지폐를 받아들어 일, 십, 백, 천, 만... 세어봤다. 이 종이 한 장이 200만 달러도 아니고, 200억 달러다. 금액만큼이나 내 표정이 '억'하고 있자 청년이 말한다. "미화 1달러와 바꿔줄게"
TV에서 본 기억이 난다. 가게에 지폐다발을 짊어지고 가서 달걀 몇 알을 사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모습을. 그곳이 짐바브웨였던 것이다. 무가베 대통령의 무리한 토지개혁과 화폐개혁의 실패가 만들어낸 결과다. 98년부터 10년간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겪은 짐바브웨는 2008년 231,000,000%라는 어마어마한 수치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했고, 급기야 2009년 6월 정부는 경제안정을 위해 짐바브웨 화폐의 사용을 중지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니까 청년이 내민 지폐는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것을 기념품처럼 팔려고 한 것이다. 지금 짐바브웨는 미국 달러, 유로, 남아공의 랜드, 보츠와나의 폴라가 사용되고 있다.
폭포를 바라보다
한 3~40분쯤 걸어서 폭포에 도착했다. 입구를 지나 좁은 오솔길을 따라 들어서니 가는 비가 내리고 먼 천둥소리가 들린다. 아프리카의 우기는 화창하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져 세찬 비를 퍼붓는 경우가 잦지만 이번은 좀 달랐다. 아무래도 폭포 물이 좀 멀리 튕겨 나와 내리는 폭포비이거나 폭포에서 떨어진 물이 바닥을 치고 안개비가 되어 다시 튀어 올라오는 것 같다. 몇 걸음 걷지 않아 놀랄 정도로 빗줄기가 굵어진다. 허겁지겁 카메라를 배낭에 넣고, 안에 넣어둔 우의를 걸치고, 배낭은 레인커버를 씌웠다. 그런데 세찬 비가 목과 소매의 틈, 배낭의 어깨끈을 타고 들어와 우의와 레인커버가 별 소용이 없다.
잠시 후 폭포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먼저 본 것이 '악마의 목구멍'이라는 폭포의 시작이자 측면이었는데 쉴 새 없이 물을 뿜어내는 모습이 역동적이다. 다시 자리를 옮겨 폭포의 정면을 볼 수 있는 뷰포인트로 갔다. 엄청난 규모의 폭포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멀리서 봐도 그 모습을 시야에 다 채울 수 없었다. 빅토리아 폭포 다음으로 세계에서 크다는 나이아가라 폭포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폭포의 규모면에서 세계 2위와 3위의 차이는 제법 큰 것 같다. 그리고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폭포의 아래가 호수처럼 넓게 펼쳐져 있지 않고, 폭이 25~75m인 좁은 바닥으로 떨어지는데 그 맞은편 절벽에서 가깝게 폭포를 마주 볼 수 있어 좋았다. 우렁찬 폭포소리와 물안개도 엄청났다. 이곳의 원주민들이 '천둥치는 연기'(mosi oa tunya)라는 명칭으로 부를 만 했다.
고개를 떨어뜨려 그 좁은 아래를 봤다. 쉴 새 없이 떨어진 물들이 뒤엉켜 꿈틀거리는 모습이 섬뜩하게 까지 느껴졌다. 몸을 낮추고 낭떠러지 쪽으로 다가가서 주저앉았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게 폭포만 바라봤다. 왜 그랬는지, 이유 없이 소리를 크게 질러 대들어 봤다. 온몸을 울려 낸 소리는 내 입을 떠나기가 무섭게 폭포의 고함에 먹혀버리고 만다. 나를 포함한 세상의 누구도 저 거대한 폭포의 흐름을 멈추게 할 사람은 없다. 그 순간 폭포 앞에 나는 그저 세상의 작은 일부일 뿐이라 느껴졌다. 동시에 아프리카 여행의 캠핑 첫 날밤에 만났던 기습적인 폭우와 젖은 내 마음, 다르에살람 바닷가의 높은 파도에 몸을 던져 자연을 극복하려 했던 것, 잔지바르 인도양의 고요한 아침에 느꼈던 바다의 다른 모습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하품하는 친구를 따라 하품하듯 폭포물이 내리는 것에 내 눈물이 따라 내렸다. 참 바보같이.
가수라는 직업은 자신이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과 오류에 빠지기 쉬운 것 같다. 공연이 진행되는 두어 시간 동안은 그런 순간을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조명이 꺼지고 무대를 내려오면 그 순간부터는 세상의 일부가 되어 낮은 마음으로 조화롭게 잘 사는 사람이 아름답다. 세상의 중심이 아니더라도 세상의 일부가 되어 세상을 완성시키는 사람이 되는 모습을 거대한 폭포를 마주한 채 알아버렸다.
해질 무렵 돌아온 캠핑장에서 신혼부부를 만났다. 영국인 남편과 한국인 아내인 커플이었는데, 막 결혼한 두 사람이 신혼여행을 아프리카로 왔단다. 그들과 얘기 나누다가 기타를 꺼내 결혼 축하곡을 불러줬다. 이소라 누나에게 만들어 준 '트랙 3' 이라는 곡. 이 곡이 수록된 앨범은 다 이런 식으로 노래 제목이 트랙 넘버로 대체되어 있다. 듣는 사람, 때마다 부르는 사람이 맞는 제목을 붙이면 되는 수요자 완성 방식의 노래들이다. 이 날은 '결혼을 축하해요'가 제목이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동안 나는 서울의 공연장에서 세상의 중심을 느끼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이 곳 아프리카의 캠핑장에서 행복해하는 두 사람과 마주하는 것으로 내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트랙 3 (작사: 이소라, 이한철 작곡: 이한철)
사랑이 그대 마음에 차지 않을 때 속상해 하지 말아요.
미움이 그댈 화나게 해도 짜증내진 마세요.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우리가 가야하는 곳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Love Is Always Part of Me
아프리카에 온 신혼 부부에게 불러준 노래! 들으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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