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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중남미/아프리카

This is Africa. 이한철의 아프리카 트럭킹 여행기 (24)추장 아들 존의 꿈

존의 아버지가 그 마을의 추장이라고 했다. 

헤어지기 전에 본 그의 노트에는
언젠가 세상에 내놓을 자신의
음반 재킷, 곡 순서, 노래 가사들이 적혀 있었다. 

존의 집에서 함께 노래하다

존은 우리가 함께한 이틀 동안 한 번도 내게 액티비티나 기념품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게 그의 직업이긴 하지만 나를 고객이 아니라 친구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존은 부지런히 일을 나왔다. "야~ 존 부지런하네." 하고 아침인사를 건넸더니 "야~만. 약속 있지 않았지?" "당연하지." 다시 방갈로로 돌아와 오전 내내 늘어지게 자고, 12시쯤 존을 만나 그의 집으로 향했다.

한 15분쯤 걸으니 마을이 있었다. 존의 집은 마을 가장 깊숙한 곳에 있었는데, 흙이나 속이 빈 콘크리트 벽돌로 지은 다른 집과는 달리 붉은 벽돌집이었다. 집은 제법 넓었고, 존의 어머니에게 인사하러 집안에 들어갔더니 TV를 보고 계신 게 여유로워 보였다. 나중에 누군가 귀띔을 해줬는데 존의 아버지가 그 마을의 추장이라고 했다. 그새 존은 좀 허술해 보이기는 하지만 분명 그가 말한 대로 드럼세트를 마당으로 갖고 나왔다. 이번에도 동네 청년들, 마을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우리가 연주하는 곡들을 휴대용 녹음기에 담았다. 한 곡을 부르고, 쉬면서 녹음한 것을 들었는데 방금 부른 것을 바로 들을 수 있다는 것에 재미있어 했다. 해가 어찌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나무그늘이 몇 곡 부르지 않아 옆으로 옮겨져 있는 덕분에 모여있는 스무 명 정도가 악기를 들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하늘 위에서 봤다면 나무를 중심으로 시계의 분침이 움직이는 모양이었을 것이다.

노래가 더 해질수록 모두가 신을 낸다. 아이들도 특유의 그루브감을 살려 몸을 흐느적거렸고, 이제는 모두가 함께 노래에 참여해 어느 합창단 못지않다. 내가 즉석에서 노래 만들 것을 제안했다. 내가 멜로디를 만들자 존이 '아호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금세 후렴이 완성되었는데, '아호이 말라위, 아호이 말라위 & 코리아'를 반복하는 후크송이 만들어졌다. 아호이는 '환영합니다.'라는 뜻이란다. 지구 반대편의 낯선 사람들이 만나서 음악으로 친구가 되고 그 추억을 노래로 남긴다.


뮤지션의 꿈이 담긴 존의 노트

노래가 끝났다. 존과 헤어지기 전에 그의 노트를 봤다. 거기에는 언젠가 세상에 내놓을 자신의 음반 재킷, 곡 순서, 노래 가사들이 적혀 있었다. 나도 그럴 때가 있었다. 막연했지만 매일 꾸던 꿈. 나 자신을 믿고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 슈퍼스타가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하루하루 주어진 음악을 즐겁게 연주하던 나의 어린 시절을 그에게서 보고 말았다. 그에게 녹음한 음원을 이메일로 보내겠다고 했다. 존이 머뭇거리더니 "시디를 보내주면 안되겠니?" 했다. 이곳에서의 인터넷은 캠핑장의 사무실에서나 가능한데 내가 한국에서의 습관으로 말해버린 것이다. "그래 꼭 시디로 보낼게. 주소 적어줘."




점심 식사시간이 지나고 다시 트럭에 올라 Kande Beach를 떠난다. 창밖에 존이 있다. 시디를 꼭 보내달라고 다시 한 번 손짓한다. 고개를 끄덕이고 오른손 검지를 펴 하트의 절반을 가슴에 갖다 댔다. 존도 손을 가슴으로 가져간다. 큰 길로 나가는 길에 존의 마을을 지난다. 존의 어머니도 길가에 나와 있다. 한국식으로 고개 숙여 인사했더니 손을 흔들어주신다.

여행에 돌아와 곧 보내겠다던 시디를 여적 못 보냈다. 눈앞의 일에 쫓기다보니 그렇게 되어버렸는데 곧 떠날 두 번째 아프리카 여행에서 존을 직접 만나 전해주기로 했다. 음원을 다듬어 10트랙을 시디에 굽고, 존이 그린 커버와는 다르지만 소박하게 프린트한 재킷도 만들어봤다. 이것이 아마 세상에 등장할 그의 첫 데모음반이 아닐까?


아호이 말라위 & 코리아

작사: John 작곡: 이한철
존과 내가 함께 만들고, 여행자들과 말라위의 친구들이 함께 부른 노래다. 



이한철이 보내온 음악 <아호이 말라위&코리아> 들으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