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과 레게 음악, 그리고 종교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존이 다시 나타났다. 존은 내게 라스타파리아니즘(Rastafarianism)식으로 인사를 했다. 가슴에 양손 검지로 하트를 만드는 동작으로 때로는 서로의 손가락을 맞대어 하트를 만들기도 한다. 이 종교는 기독교와 아프리카 토속신앙이 결합한 것으로 레게음악의 아버지 밥 말리가 믿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낮에 존이 레게음악을 좋아한다고 했던 것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음악으로 마음을 나누다
길게 얘기 나눌 것도 없이 문 닫은 존의 가게 앞 모래사장에 앉아서 노래를 시작했다. 존이 노래를 시작하면 내가 멜로디에 맞게 기타를 연주하는 식으로 함께 연주하고 노래했다. 처음 듣는 멜로디, 낯선 언어의 노래지만 틀리지 않으려는 마음보다 처음의 날 것 그대로 즐기며 노래를 거들었다. 주변의 청년들이 하나둘씩 모인다. 대부분 존의 친구들인데 존을 중심으로 주위를 에워싸는 듯 모여 앉는걸 보니 그는 친구사이에서도 제법 카리스마 있는 존재인 듯하다.
작은 비닐봉지에 든 것들을 마신다. 한번 마셔 보겠냐고 해서 용기 내어 입안에 털어 넣으니 목구멍으로 불기둥을 삼킨 느낌이다. 형편 때문인지 다들 병에 든 것이 아니라 한 모금짜리 비닐 술을 마시는데, 어쩌면 우리 어른들이 잔술로 소주를 드시던 것과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해가 지고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노래하던 존의 눈가에 눈물이 흐른다. 술이 오르기도 했겠지만 공연의 정점에서 느낄 수 있는 일종의 카타르시스 때문일 것 같다. 뮤지션이기에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토해내 버렸을 때의 후련함 같은 그것이 그의 눈가를 촉촉하게 했으리라. 존은 다음날 또 만나자고 했다. 오전근무 마치고 자신의 집으로 가서 함께 연주하자고 했다. 집에 가면 드럼이 있다고 했다. 좀 망설여졌다. 존은 분명 좋은 친구지만, 이곳의 스텝들은 캠핑장 주변을 벗어나는 것은 위험하다했다. 실제로 캠핑장 주변을 항상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우리가 존의 가게 앞에서 연주한 것도 현지인들이 캠핑장에 들어오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일단 알았다 하고 존과 헤어졌다.
나도 꽤 들떠 있었나보다. 잠이 오지 않는다. 이 기분을 몰아 캠핑장 카페 옆에 설치된 해먹에 걸터앉아 기타와 맥주로 밤을 즐겼다. 옆에 아르헨티나, 독일, 프랑스에서 온 여행객들이 앉는다.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으로 노래도 부르고, 건배도 나눴다. 그런데 그들도 좀 취했는지 이후의 질문이 좀 이상하다. 가수라는 내 소개에 히트곡은 있는지, 월수입은 얼마인지 등 무례한 질문들이 날아왔다. 불쾌했다. "내게는 내가 직접 만들어 언제든지 그 감정을 꺼내놓을 수 있는 수백곡이 있고, 돈은 그리 중요하지 않지만 너보다 좀 더 번다."라고 대답해버렸다.
말하면서 나 자신도 놀란 것이 '내가 이렇게 영어를 잘 했던가?' 싶었기 때문이다. 마치 차에 치이려는 아이를 구하려고 차를 번쩍 들었다는 해외토픽 속 한 어머니의 얘기처럼. 그러고는 계속 노래했다. 멋쩍어 하던 이들은 하나둘 떠난다. 노래하면서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래, 내일 진짜 아프리카를, 마음을 나눌 진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거야.'
Wachikondi Wanga
'와치콘디 왕가'라는 노래다. 존과 함께 부른 다른 곡들이 레게 리듬인 것에 비해 이 곡은 6,70년대 하드록 밴드들의 발라드 곡 같았다. 존을 눈물 짓게 만든 것도 바로 이 노래다.
이한철이 보내온 음악 <Wachikondi Wanga> 들으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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