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포스트는 경향신문 기사 중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내게도 고민이 있어요" 고민 해결사들의 특별한 여행
여성활동가들 '힐링 행군' 동행기
지난 16일 오후 ‘차마고도’라고 불리는 중국 윈난성 호도협 트레킹을 마치고 나시족들이 사는 석두성 마을에 도착한 한국 여성활동가들이 휴식을 취하며 웃고 있다. | 정신향씨 제공
편한 휴향지 대신, 험난한 산길을 걷다
땀이 비오듯 흘렀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길은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만큼 좁았다. 바닥엔 큰 돌들이 튀어나와 있었다. 해발 2600m의 고지대에 나 있는 길의 오른쪽은 낭떠러지였다. 그 아래로 사금을 채취할 수 있다고 해 이름 붙여진 금사강이 거센 소리를 내며 흘렀다. 차마고도(茶馬古道). 수천년 전 차와 말을 교역하기 위해 중국의 소수민족들이 오갔던 높고 험한 산길. 금사강을 사이에 둔 합파설산과 옥룡설산이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지점이 바로 차마고도의 입구에 해당하는 호도협이다. 호랑이가 이쪽 산에서 저쪽 산으로 건너가던 바위다.
한국의 여성활동가 15명이 차마고도를 걷기 위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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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오전부터 트레킹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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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앞서가려 경쟁하지 않았다. 목적지에 빠르게 도착하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대열에서 뒤떨어지는 일행이 생기면 모두 함께 기다렸다. 앤(이효숙·38·천안여성현장상담센터)은
“여행을 같이 다니면서 누군가 아프면 다른 사람이 불편할 수도 있는데 그런 내색 전혀 없이 스틱도 먼저 빌려주고 같이 간다는 게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구름(유경혜·49·희망웅상)은 “약간 뒤처지면서도 함께 갈 수 있다는 것이 의미있었다”고 했다.
차마고도에서 삶을 느끼고, 되돌아보다
일행 중 누군가는 “차마고도의 길이 삶과 같다”고 했다. 험난한 길을 걷다보면 어느덧 정상에 올라 있고, 평지가 나오다가 갑자기 높은 경사로가 이어지는 이 길의 천변만화는 소로와 대로, 평지와 비탈이 수시로 교차하는 우리의 삶과 닮았다. 그럴 때마다 메아리는 소리쳤다. “여러분, 삶이 그렇게 쉽지가 않아요. 힘을 내세요!” 17일 중도객잔부터 티나객잔까지 4㎞를 그렇게 걸었다.
지난 15일 중국 윈난성 호도협의 험준한 산길을 한국 여성활동가들이 걷고 있다. | 정신향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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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경기 안산의 활동가들은 세월호 참사를 가까이서 지켜보며 누구보다 힘든 시기를 보냈다. 강아지(이현선·39·안산여성노동자회)는 “10년째 활동을 하고 있는데
2년 전쯤부터 슬슬 재미가 없고 일로 느껴지더라”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유가족은 보상만
받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것을 보고 현실의 벽을 많이 느꼈다”며 “옥룡설산을 보면서 ‘현실의 벽이 저렇지’ 하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차마고도에 길을 낸 나시족들, 벽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계속 길을 내고 벽을 깎는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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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저녁식사 때, 울랄라(최은주·56·부산이주여성쉼터)가 말했다. “몸이
안 좋아서 비행기를 타고 오는 내내 ‘왜 내가 여길 왔을까’ 후회했거든요. 그런데 석양이 지는 걸 보면서
깨달았어요. 내가 만났던 그 많은 이주여성들도 혼자 몇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왔겠구나, 그 심정을 이제 알겠더라고요.” 조용히 듣던 일행은 저마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캄캄한 하늘에 별밭이 펼쳐져 있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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