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요! 공정여행
차마고도 바람, 발가락
* 글쓴이 : 트래블러스맵 해외여행기획자 루피(이광재)
* 이 글은 채식주의잡지 비건 7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찍고, 맛보고,즐기고, 쇼핑하는…그런 여행 이제 됐다. 몰랐던 세상을 찾아가 새로운 경험을 쌓고, 그 속 사람과 관계 맺는 착한 지구별 여행법이 여기 있으니. 마음으로만 따라가도 그대는 이미 책임 있는 여행자. 이제부터 대세는 공정여행이 되겠다.
중국에 이런 속담이 있다. 一分錢 一分貨(이펀치엔 이펀훠). ‘한 푼의 돈으로는 한 푼짜리 물건 밖에 살 수 없다.’는 뜻이다. 중국이라고 싼게 비싼 떡이 되진 않는다. 특히, 여행이라면 더욱 싼 건 비지떡이다. 29만 얼마, 39만 얼마를 여행사에 입금하면 베이징이나 상하이 명소를 한번에 다녀올 수 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당신은 알 거다. 행간에 숨겨진 수많은 꿍꿍이가 순진한 당신의 여행을 송두리째 바꿔놓으리라는 것을. 저가 패키지와 자유여행을 넘어 지속가능한 여행의 이름으로, 이제 다시 중국으로 간다. 척박한 자연, 슬픈 역사, 고달픈 삶이 만들어낸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여행, 숨겨진 중국 천년의 도시를 거슬러 오르는 차마고도 호도협 트레킹을 함께 떠나보자.
호랑이와 즐기는 호도협 트레킹
중국 운남성 리장에서 차로 2시간 남짓 달리면 세계에서 손꼽히는 깊숙한 협곡, 호도협이 있다. 호도협은 만년설이 쌓인 두 개의 설산, 옥룡설산과 합파설산이 만나는 지점에 형성된 거대 협곡으로 호랑이가 뛰어 건너다니던 협곡이라고 하여 호도협이다. 두 설산 사이를 가로지르는 물결이 양쯔강 상류인 금사강. 협곡이 워낙 깊어 어느 각도, 어느 곳에서 봐도 절경이다. 이 협곡을 따라 중국의 차와 티베트 말이 오가며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역길, 차마고도를 만들어냈다. 인간을 겸손케 하는 이 절경, 호도협은 차마고도의 역사성에 힘입어 세계 3대 트레킹코스로 명성을 더하고 있다.
눈의 호사(好事), 발의 혹사(酷使)
우리는 합파설산 중간에 가늘게 난 길과 마을을 따라 걸으며 옥룡설산의 전면을 바라보며 걷는다. 호도협 트레킹 코스 중에는 ‘28밴드(굽이돌이)라는 난코스가 있다. 구불구불한 오르막길이 스물여덟 번 이어진 곳인데 이곳을 오를때면 동행자들은 어김없이 ‘내가 왜 내 돈을 내고 멀리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생각 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 걸음 쉬어가는 중도객잔에 도착하면 그런 원망은 안드로메다까지 보내게 된다. 중도객잔 테라스의 풍경과 분위기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을 만큼 빼어나니까, 트레킹으로 맺힌 땀방울을 시원하게 씻어주는 관음폭포, 아침이면 염소와 말을 방목하러 나가는 나시족 할아버지와 파트너 강아지, 웅장함에 빨려들 것 같은 호도협 물줄기 등은 실로 한 순간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말들의 ‘밀당’ 관람은 옵션
차마고도를 걷다 보면 종종 말들과 대치하는 순간이 온다. 때문에 나는 트레킹을 시작할 때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말하곤 한다.
“호도협을 걸을 땐 딱 두 가지를 조심하셔어 합니다. 첫째, 말조심! 둘째, 말똥조심!”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나시족 가이드와 한참 수다를 떨며 걷고 있는데 뒤에서 땅을 세게 구르는 진동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말 두 마리가 우리를 향해 질풍 같은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 본능적으로 길 가장자리로 몸을 날렸고, 가까스로 화를 면할 수 있었다. 말들은 우리를 한참 지나쳐서야 멈춰 섰다. 한동안 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다시 바람처럼 사라졌다. 발아래 구름을 두고 걷는 그 생경하고 고요한 길에 환상처럼 나타난 두 마리 말 덕분에 동행자들은 들뜬 표정이었다. 그날 저녁 마을 사람들에게 물으니 수컷이 암컷에게 사랑을 구하고 잇었고, 암컷은 튕기는 중이었다나. 말들의 ‘밀당’, 사랑고백은 그렇게도 격렬했다.
젓가락 22벌, 종이컵 22개
내가 인솔하는 여행에는 모든 동행자들이 항상 지니고 다니는 것이 있다. 개인 컵, 물통, 숟가락, 젓가락이 그것이다. 중국에서 1년 동안 쓰이는 일회용 나무젓가락은 무려 450억 개. 나무 2,500만 그루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나와 동행자들이 저마다 젓가락과 물통을 쓰면 대략 나무젓가락 22벌, 종이컵 22개를 쓰지 않는 셈이다. 덕분에 요즘은 차마고도 굽이마다 찾아드는 마을식당에서도 나와 동행자들을 알아보고 종이컵과 일회용 젓가락을 테이블에 내놓지 않는다. 그럴 때면 호도협의 압도적 풍광만큼이나 큰 만족감을 느낀다.
돌머리마을 가이드 할아버지
외롭고 아름다운 고성, 석두성 마을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가 않다. 하루 한 대 있는 버스에 들어가는 길과 나오는 길이 하나인 외길이다. 고립된 세계다. 석두성 마을은 말 그대로 ‘돌머리성’. 13세기 운남성까지 닥쳐온 몽고군을 피해 산속으로 숨어든 나시족들이 돌산을 깍아 만든 독특한 모습의 마을이자 성이다. 아래로는 황금빛 굽이치는 금사강, 사방으로는 그림 같은 계단식 논밭에 둘러싸인 숨은 보석 같은 곳이다. 석두성 마을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기는 할아버지가 계시다. 할아버지는 자칭 석두성 마을 가이드. 5위안이면 석두성 마을 안내 끝이다. 단점이 있다면 언어지원이 중국어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마을 안에는 전교생 60여명 정도의 초등학교가 하나 있다. 해맑게 웃고, 걱정 없이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찌르르하다. 평온해진다. 이 여행이 다른 어떤 여행보다 한 뼘 더 행복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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