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마케팅팀 엘리
날이 저물며 눈부신 오렌지 빛 햇살이 창문을 통해 번져왔다. 그 그윽한 따뜻함이 온몸을 데워 나도 모르게 눈이 스르르 감겼다.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과의 첫 만남은 그랬다. 따뜻하고, 나른하고, 포근하고.
그 여름, 미국에서 오빠의 대학 졸업식에 참석했던 가족들이 터키로 가족여행을 가던 중 환승을 위해 스히폴 공항에 들렸다. 뉴욕에서 떠나는 첫 비행기가 계속 출발을 미루는 모양새가 불안불안하더니, 결국 암스테르담에서 출발하는 두 번째 비행기를 아쉽게 놓치고 말았다. 다음 비행기는 5시간이나 지나야 탈 수 있다고 했다. 가족들은 투덜대며 항공사에서 받은 밀(meal) 쿠폰을 쓰러 자리를 떴고, 나만 홀로 남아 딱딱하고 불편한 게이트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짐을 지켰다.
사람은 5시간 안에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좋아하는 책을 읽을 수도 있고, 밥을 먹을 수도 있고, 낮잠을 잘 수도 있다. 나도 지루함을 잊어보려고 게이트 옆에 있던 책방에서 책을 사 읽고 (그 때 산 책이 파올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였다.), 가족들이 밀 쿠폰으로 사 온 간식거리도 먹고, 부드러운 늦은 오후의 햇살을 맞으며 낮잠도 자보았지만 시간은 내 바람처럼 빨리 흘러주지 않았다. 책을 너무 오래 읽어 눈이 피곤해지고, 간식거리를 너무 많이 먹어 입이 더 이상 심심하지 않고, 낮잠도 너무 오래 자 더 이상 잠들 수 없을 때 창밖에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보면서 멍하니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 참 행복하다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중이니까.
기다림. 여행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비행기를 기다리고, 다음 기차 시간을 기다리고, 어딜 가던 줄을 서고. 어디론가 가야하는 미션을 가진 여행자로썬 기다림이 답답하거나 짜증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기다림은 정해진 시간 속 많은 일정을 소화해야하는 빡빡한 여행 속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달콤한 선물이 아닐까. 여행에 대한 환상이, 그 환상이 주는 기대가 고스란히 녹아있어 그 순간을 온전히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선물.
저가 패키지 여행으로 갔던 터키여행은 사실 기억에 많이 남지 않는다. 갔었던 도시 이름들도 지금은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에서의 5시간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날 햇빛의 온도도, ‘연금술사’ 속 파올로 코엘료의 마법 같은 글을 읽으며 느꼈던 감동도, 공항 커피숍에서 사먹은 마카다미아넛과 화이트 초콜렛칩이 들어간 쿠키의 달달함까지 모두.
덧붙임:
지난 영국출장에서 한국에 돌아오는 길에 또 스키폴공항에서 경유하는 일이 생겼다. 무슨 악연인지 이번엔 승객들을 태운 우리 비행기가 3시간 내내 활주로와 게이트를 왔다갔다 하더니, 결국 비행기에 결함이 있어 옮겨타라는 기장의 방송을 듣고 원래 출발시간 5시간 후에야 다른 비행기를 타고 암스테르담을 탈출할 수 있었다.
첫 비행기를 탈 때만해도 날이 밝았는데 비행기를 갈아타려 다시 공항에 돌아가니 어느새 밖은 새까맣게 변해 활주로와 공항 외곽을 보여주는 빛만 반짝였다. 공항 안엔 쌀쌀한 초겨울의 기운이 돌아 감기몸살과 소화불량으로 입덧하는 임산부 마냥 어지럽고 메스꺼운 내 속을 더 울렁이게 하고, 주변에선 패키지 여행으로 암스테르담에 왔던 사람들인지 한국 여행객들이 무리지어 큰 소리로 컴플레인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한 시간을 더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축 늘어져 새 비행기의 보딩시간만을 기다리며 여전히 딱딱하고 여전히 불편한 스키폴 공항의 게이트 의자에 앉아 생각했다. 스히폴공항은 정.말. 잊지 못할 거라고...
스히폴공항 정보
암스테르담 스히폴공항은 사실 유럽에서도 가장 편의시설이 잘 되어있는 공항 중 하나로 꼽힌다. 어쩔 수 없이 공항에서 노숙하게 되는 여행객들을 위한 사이트 SleepingInAirports.com이 유저들을 대상으로 한 2013년 유럽의 톱 10 공항을 꼽는 설문에도 스히폴공항이 1위로 선정되었으니 말이다. 만약 필자처럼 스히폴공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불편한 게이트 의자에서 시간을 보내지 말고 스히폴공항이 갖춘 여러 편의시설을 이용해보자.
Wi-Fi
스히폴공항에선 모든 이용자들에게 기기당 한시간의 무료 와이파이를 제공한다. KPN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30분의 무료 와이파이를 두번 이용할 수 있다. 그 이후에는 크레딧카드를 이용해 시간당 요금을 지불하고 프리미엄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다.
무료휴식공간
보안 검색을 마치면 푹신한 소파와 의자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출발 3구간 근처에는 편안한 가죽 의자들이 카페 밖에 위치있다. 게이트 D (윗층과 아랫층), 게이트 E (윗층), 게이트 C 입구 근처엔 등과 발받침을 앞뒤로 조절할 수 있는 안락의자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스히폴공항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공항에 도서관을 만든 곳이기도 한데, 대부분의 책들이 더치나 영어로 되어있긴 하지만 도서관 내 아이패드를 이용할 수도 있고 편한 의자들이 많아 앉아서 쉬었다 가기 좋다. Rijksmuseum Amsterdam Schiphold 박물관도 오전 7시에서 오후 8시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데 출국수속을 지나고 E와 F 피어 사이에 위치해 있다.
공항라운지
이 공항에는 4개의 라운지가 있는데 인터넷과 음료를 즐길 수 있는 편한 공간이지만 대부분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고 사용시간도 제한되어 있다.
Menzies Lounge 21 - 장소: 터미널 1 (Schengen) 게이트 B와 C 사이 윗층, 푸드코트 반대편. 입장료: £19. 영업시간: 5:30am-9:30pm
Servisair Lounge 41 - 장소: 터미널 3 게이트 E와 F 사이 윗층. 입장료: £25. 영업시간: 5:30am - 11:30pm. 이용시간: 3시간. 샤워시설 갖춤. (하지만 추가비용 지불해야 함.)
Servisair Lounge 26 - 장소: 터미널 1, 출국수속을 마친 후 오른쪽으로 라운지 사인을 따라가면 보임. 입장료: £25. 영업시간: 5:20am - 9pm. 이용시간: 3시간.
Servisair Executive Lounge - 장소: 터미널 3, 출국수속을 마친 후 오른쪽으로 가다 1층으로 내려가면 라운지 사인 보임. 입장료: £24.50. 영업시간: 6am - 11pm. 이용시간: 3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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