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서의 둘째 날이 밝았다.
간밤에 도란도란 할머니와 이야기도 나누고, 별 구경도 실컷 하며 시골 밤을 만끽했다.
도시에서는 몰랐던 진짜 ‘밤’을...
무릇 ‘밤’에는 사람을 비롯한 세상 모든 것들이 쉬어야 하는 법인것을, 낮에 열심히 일한 서울에 있는 모든 것들은 밤에도 잘 쉬지 못한다. 자연도, 사람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열심히 일 하는 법만 알지 잘 쉬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미련한 사람탓에 자연도 고생이다.
민박집 할머니가 차려주신 맛난 밥상을 마주하니 아직 잠에 취해있던 식욕이 뽀로롱 깨어난다. 물통에 물을 담고, 손수건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할머니가 챙겨주신 떡과 과일 간식을 배낭에 담아 힘차게 출바~알!
봄을 준비하고 있는 밭과 논 사이로 고라니 한 마리가 뛰어간다. 사람의 인적이 드문 곳에서는 종종 돈 주고도 쉽사리 보기 힘든 장면을 볼 수 있다. 둘레길 제 2코스의 람천을 따라서는 천연기념물 수달과 원양도 서식하고 있다고 하니 다니면서 동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특별히 신경 써야 할 것 같다.
한참을 걷다 마을 어귀에 있는 정좌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가만... 지난 나의 여행은 어떠했더라?’ 내가 하기로 마음먹은 ‘공정여행’과는 거의 반대로 움직였던 것 같다. 사람들이 좋다하는 데는 우르르 따라가고, 지역에 대한 이해는 둘째 치고 나 스스로부터 그곳을 대하는 마음의 준비없이 가서 ‘나만 좋은 여행’을 했었더랬지.
우리나라 사람들의 공통적인 정서 ‘냄비근성’이라고도 표현되는, 금방 불붙었다 이내 식어버리는 현상이 ‘여행’이라는 측면에서 신문이나 방송, 특히 최근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더욱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
둘레길은 새로 만들어진 길이라기보다는 이전부터 주민들의 삶과 함께 했던 길,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길이 전체적으로 둘레길로 정비되어 재탄생한 것이다. 도시 생활 속에서 잊고 지냈던 우리네 고향의 정겨움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따뜻한 정을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이제까지 지리산 둘레길은 그 역할을 잘 해왔었지만 지난해 ‘1박2일’이 다녀간 이후 이곳 역시 몸살을 앓고 있다.
비단 둘레길만의 문제가 아니다. 1박2일이 다녀갔던 대부분의 여행지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방송 이후 갑자기 늘어난 방문객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둘레길에 담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조차 관광객의 흥청거림 속에 사라져버린 요즘의 둘레길은 “차라리 길을 없애달라”는 주민의 하소연에서 그 안타까운 현실을 느끼게 한다.
물론 물 밀 듯 몰려드는 방문객들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고 상대하는 일부 지역민들의 의식도 문제라 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아직 ‘제대로’ 여행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의 의식과 문화이다.
여행, 관광이라고 하면 버스에서 술 먹고 춤판을 벌이고, 밤낮없이 고성방가를 하고 흥청망청 놀아야만 ‘제대로 놀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제2,3의 둘레길 몸살이 생기지 말란 법도 없는 것이지.
둘레길 둘째날에 참 생각이 많아졌다.
역시 여행은 가장 큰 배움의 장이로구나.
다시 한 번, 공정여행자로서의 의지를 다잡아본다. 아자아자, 힘내자!
정좌에 앉아 혼자 파이팅을 하고 있는 내게 누군가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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