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손에 이끌려, 학교 교과과정으로 여행을 하던 아이가 자라 가고 싶은 곳에, 하고 싶은 것을 하러 가는 여행을 기억해본다. 보통은 대학에 들어가 배낭여행을 가면서 그런 경험을 하는 것 같다. 성향에 따라 다르지만 완전히 홀로 떠나는 여행은 보통 그보다는 한참 후다. 오롯히 혼자 준비하고 떠나는 여행도 “독립여행”이지만 생에 처음으로 스스로 준비하고 떠나는 여행은 어떤 느낌일까? 왜 여행을 떠나기로 했을까? 로드스꼴라 2기 떠별 길로가 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의 판타스틱 여행 데뷔작
길로
다트는 던져졌다
2008년 여름이 끝나갈 즈음, 나는 야심찬 여행을 하나 기획하고 있었다. 커다란 한국지도를 벽에 걸고 다트를 던져 출발점과 도착점을 선택하는 상당히 황당한 여행이었다. 혼자 가기는 외롭기도 하고 겁도 나서 이런 엉터리 여행은 가지 않겠다는 친구를 간신히 꼬셔내어 집으로 불러냈다. 출발 전날까지 주구장창 놀던 우리는 출발하는 날이 되서야 허둥대며 짐을 싸기 시작했고 오전이 막 지날 무렵 호흡을 가다듬고 동시에 두 개의 다트를 던졌다.
여행을 떠나면 성격이 변할 만큼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학교에서 가는 수학여행이나 가족, 친척과 가는 단체여행만 다녀본 터라 내 생각으로 만들고, 친구와 단둘이서 떠나는 ‘다트여행’이 무척 기대되고 떨렸었다. 지루한 삶에 재미를 불어넣고자 기획한 이번 여행이 나에게 큰 힘을 주길 바랐었다.
나에게 여행이란 해리포터에 나오는 ‘다양한 맛이 나는 젤리’이다. 젤리의 모양이 모두 같아서 먹어보기 전엔 맛을 확인할 수 없는 이 젤리는 어쩔 땐 생크림 케이크 맛, 어쩔 땐 코딱지 맛 등 먹는 사람에게 예상치 못한 맛을 준다. 여행도 그런 것 같다. 직접 가보기 전에는 완전히 판단할 수 없고 직접 가보고 나서는 예상치 못한 새로움을 주어서 여행자를 당황하게 만든다. 나는 여행을 할 때의 그 당황스러움이 내 삶에 소소한 추억이 되는 것 같아서 참 좋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이자 여행의 최대 매력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낭만파괴여행
여행을 시작하던 날. 출발점으로 선택된 강릉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간 우리는 막상 도착하자 무얼 할지 몰라서 정처없이 거리를 헤맸다. 강릉에 도착하기 전까진 해맑았던 친구가 저녁 무렵이 되자 절망의 얼굴로 나를 원망했다. “나라고 이렇게 재미없게 될 줄 알았냐.”라며 티격태격 걷다가 도착한 강릉의 해변. 우리는 그 곳에서 잠시 휴전협정을 맺고는 해변가 주위를 살피며 잠잘 수 있을 만한 공간을 찾아다녔다.
약 두 시간 가량 주변을 헤매다 발견한 정자에서 뭐가 불만인지 계속 투덜거리는 친구를 뒤로하고 나는 배낭을 베개 삼아 잠을 청했다. 그러나 나의 수면을 방해하는 것들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모기떼! 무겁다고, 더워서 필요 없다고 침낭과 텐트를 안 챙긴 게 이렇게 후회가 될 줄이야. 몇 시간을 모기와 씨름하다가 결국 밤을 새기로 결정했다.
정자를 빠져나와 해변을 걸으며 앞으로의 여행에 대해서 친구와 얘기를 나눴다. “이번 여행은 여행에 대한 낭만을 파괴하는 여행이 될 거야.” 친구가 툭 내뱉은 한 마디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여행의 테마를 그걸로 잡는 건 어떠냐고 슬쩍 물어보니 더 힘들어지긴 싫다고 손사래 치는 녀석. 여행에 동반자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피곤하지만 한편으론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점을 알게 해 준 고마운 놈이다.
시골에서의 작은 평화
역경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경상북도 봉화군에 도착했다. 깊은 산골짜기에 있는 지인의 집에서 이틀정도 묵으며 쉬기로 한 우리는 잠이 들기 전 고추 수확으로 한창 바쁘실 농사일을 열심히 도와드리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다짐으로 끝이 났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시계를 보니 시침이 12를 가리키고 있었다. 허겁지겁 친구를 깨우고 아주머니께 가보니 이미 농사일을 마치고 쉬고 계셨다. 패닉에 빠진 우리를 보며 푸근한 웃음을 지으시던 아주머니는 시골일은 끝이 없다며 안심하라고 하셨다. 죄송하다고 인사를 드리며 아주머니의 지시 하에 일사불란하게 고추의 꼭지를 따는 일을 했다. 죄송한 마음에 열심히 했더니 배가 꼬르륵, 꼬르륵 배꼽시계로 티를 낸다. 소리를 들은 아주머니가 급하게 부엌으로 가셔서 밥상을 차려주셨다. 초록, 갈색, 노란 색의 나물들이 고운 색깔만큼 맛도 일품이었다. 물론 가장 최고는 밥상에 듬뿍 담긴 아주머니의 사랑이었지만
Say good bye
중학교 시절 같은 기숙사를 썼고 졸업하고 나서도 간간이 연락하며 살았기에 나는 녀석과 내가 코드가 잘 맞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무료하게 방학을 즐기던 녀석에게 이리 빌고 저리 빌어 같이 여행을 온 것인데, 막상 여행을 시작하고 나니 우리의 여행 코드는 정반대였다.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과 여행을 한다는 것은 정말 힘들다. 갈림길에서, 용변이 마려울 때, 심지어 잠자는 장소까지 서로가 엇갈리고, 무엇인가 선택해야하는 상황이 생기면 대화의 절반이 말싸움으로 변했다. 결국 여행을 떠난지 5일째가 될 무렵 녀석과 나는 정면으로 부딛혔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으르렁대다가 결국 내가 홧김에 말을 내뱉었다. ‘우리 그냥 찢어져서 여행하자’고. 둘 다 얘기하고 싶었지만 상대방이 속상해할까봐 주춤거리던 말. 잠시 침묵하던 우리 곁으로 들리는 쓰르라미 우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마지막으로 잠자리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렇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협상은 결렬. 결국 우리는 각자의 방향으로 돌아섰다.
여행의 끝에서 보았던 것은
둘이서 시작한 여행이 혼자 하는 여행으로 바뀌었다. 더 즐거워진 것도 더 힘들어 진 것도 없었다. 그냥 처음 잡았던 출발지와 도착지. 강릉에서 정선, 봉화, 안동을 거쳐 경주까지 쭉 내려왔다. 그렇게 여행은 끝났지만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그냥 무엇인가가 나에게 계속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바뀔 때가 되지 않았니?”, “너의 여행에는 ‘성숙’이 필요해” 라고.
단순히 재미로 기획하고 재미를 얻기 위해 출발했던 여행이었다. 하지만 이 여행의 끝이 나에게 준 것은 재미가 아닌 고민이었다. ‘성숙한 여행’이란 무엇일까? 라는 고민에 답을 하기에는 아직은 내가 덜 자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여행을 다닐 것이고 여행을 통해 내 화두를 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성숙’을 알게 되는 순간에는 다시 여행을 떠날 것이다. 화려한 개막을 알리며 나의 판타스틱한 여행길로.
학습지도 자기주도 학습이 유행이 이 시점, "자기주도여행"을 떠나려고 하는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뭐냐는 질문에 길로는 이렇게 말했다. "별거 없는 데, 아니 별거 아닌데. 떠나기 전까지는 잠잘 곳, 먹을 것등 걱정이 많은데 막상 떠나고 보면 어떻게든 다 되거든요. 그냥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일단 떠났으면 좋겠어요."
청소년 혼자 혹은 청소년끼리 여행갔을 때의 안전에 관한 팁!
- 떠나기 전 각 지역의 경찰서, 병원 정보를 미리 조사한다.
- 행선지는 부모님이나 친구 등 비상연락이 가능한 사람에게 알리고 간다. 혹은 장소가 변경되었을 때 알린다.
- 작은 마을에 들렀을 경우에는 관할 파출서에 "여행하는 청소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동네에 들어섰다는 인사를 한다.
마을 주민들이 모두 서로서로 얼굴을 알고 지내는 곳에서 낯선 사람, 특히 청소년이 돌아다니면 의아해하시기 때문에, 그리고 혹시 모르는 상황에 대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요새 걔 안보이데? 어떻게 된거지) 물론 떠날 때는 "안녕히 계세요. 즐겁게 지내다 갑니다."라고 인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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