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A CUP(위더컵) 캠페인은 편리와 풍요를 향해 과속 질주하는 우리를 돌아보며 삶의 속도를 한 박자 천천히 늦추기 위한 '여성환경연대 슬로 라이프 운동'의 일환으로 제안되었습니다. 자기 컵과 함께 하는 즐거운 불편을 통해 새로운 관계와 소통 그리고 느린 시간의 유쾌한 경험을 나누려 합니다. <편집자말> |
|
'걷는다'는 '느리다'를 수반한다. 물론 옛 시대에는 안 그랬을 것이다. 지금처럼 '탈 것'이 속도로 무장하지 않았던 시대 '걷는다' 즉 '도보'는 곧 '이동수단'이었다. 하지만 최첨단의 시대, 속도를 강조하는 이 시대, 이동수단으로서 두 다리는 형편없이 느리며, 그래서 '도보'는 자주 '여유'를 상징하는 단어로 변모했다.
하지만 그 이동의 궤적으로 매연과 각종 나쁜 물질을 남기는 것들에 견주자면 도보는 자연에 사뿐사뿐 가볍게 발만 올려놓는 것이다. 인간의 탐욕과 공해에 찌들어 삐쳐있던 자연도 도보 여행자들은 한없이 좋은 기운과 맑은 공기로 맞이한다. 작금 도보여행과 걷기열풍이 붐을 형성하고 있는 현상 역시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도보여행가 김남희(40)씨는 2003년부터 걷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소심하고 까탈스런' 여자라고 칭하면서 한반도 구석구석을 징하게 걷더니, 이내 다른 나라로 그 범위를 넓혔다. 펴낸 책이 벌써 8권, 그가 속살을 처음 보여준 대한민국의 자연은 그대로 명소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수식어를 하나 더 붙이곤 한다. 그는 철저한 환경 여행가다. 그녀의 여행은 보통 이렇다. 우선 비행기에 타면, 승무원의 음료 서비스 때 자기 컵을 척하고 내민다. 예컨대 2박 3일 일정으로 다른 나라 숙소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방 앞에 메모를 남긴다. '제 침대 시트는 사흘 동안 안 갈아주셔도 됩니다'. 일회용품을 쓰지 않은 여행객에게 지급되는 '그린코인'을 잔뜩 모아 체크아웃할 때 기부의사를 밝힌다. 이 코인은 '없고' '부족한' 여러 나라에 전달되어 이른바 '좋은' 일에 쓰인다.
또 있다. 그녀는 외국에 나가 가급적 생수를 사먹지 않고 수돗물을 마신다. 생수병을 만들고 가공하는 과정에서의 환경 문제를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며 또 '여행객들이 버리고 간 플라스틱 생수병 때문에 엉망이 된' 마을을 목격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내년 초 중남미에 갈 때는 정수 필터가 달린 텀블러를 가지고 갈 예정이다. 다국적 기업이 운영하는 체인 레스토랑에는 스스로 '촉수엄금' 조치를 내렸고 여행 중 사용한 건전지를 모국으로 가져와 분리수거 한다.
2011년 다시 떠날 준비를 하는, 여행가 김남희
그녀는 지난 6월부터 여성환경연대가 펼친 'WITH A CUP(위더컵)' 캠페인 참여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녀가 주위 많은 '협력자'들에게 참여를 권유해 캠페인 참여자는 더욱 풍성해졌고 다양해질 수 있었다.
그녀는 부암동 빌라에 방을 얻어 사는 한국 사람이지만, 늘 한국에 잠시 들렀다 가는 이방인 같을 때도 있다. 그녀의 부재가 익숙한 탓이리라. 다시 2011년 새해 벽두에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김남희씨를 만났다.
누구보다도 환경여행을 강조하는 삶을 사는 그녀였지만 의외의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우선 '탄소발자국'을 가장 많이 남기는 비행기를 주로 이용하고 있다는 현실에 괴로워했다. 오히려 인터뷰어가 인터뷰이를 위로하는 형국이었다. 그녀는 지구 앞에 '어머니'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어머니 지구'. 좋은 말이다.
지난 13일 그녀와 이보은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이 종로구 재동 '카페 코'에 마주 앉았다.
이보은 : "'도보'라는 수식어로 많이 알려졌지만, 지인들 사이에서는 환경주의자로 많이 인식된다. '환경 도보여행가'? '도보 환경운동가'? 그렇게 불려도 될 것 같다. 언제부터 이른바 '환경'에 관심이 있었나?"
김남희 : "배스킨 라빈스 상속자인 존 로빈스가 쓴 <육식이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를 2000년에 읽었다. 이 책을 읽고 충격을 많이 받았다. 일단 육식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한국에서 직장 다니던 시절, 고기 좋아했다. 물론 줄이려고 노력은 했지만... 이 책을 읽고 우선 육식부터 줄여나갔다."
이보은 : "그 책을 읽고 채식주의자로 변신한 것인가?"
김남희 : "그건 아니다. 2003년 5월 세계를 떠돌기 시작할 무렵부터 고기 먹지 말자는 결심을 했다. 고민도 있었다. 김남희라는 사람 자체가 틀이 많은 사람인데 고기를 안 먹어서 또 세상과 벽을 만들까 봐 융통성 있게 했다. 특히나 다른 나라 여행하면서 벽이 생겨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예를 들어 적막한 나라 깊은 산골 마을에선 손님 왔다면서 닭을 잡아주고 고기를 구워서 한 상 차려줄 때가 있다. 그럴 땐 먹는다. 하지만 지금은 고기 자체가 그리 당기지 않는다."
이보은 : "채식주의 여행가들이 여행하기 좋은 도시와 그렇지 않은 도시가 따로 있을 것 같은데?"
김남희 : "그런 면에서 여행하기 좋은 곳은 인도였다. 힘든 곳은 아무래도 중동 지방이다. 인도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가 따로 있는 곳이 많아서 행복하게 맛있게 먹고 다녔다. 중동 지역은 워낙 고기 자체를 많이 쓰기도 하지만 외국인이라고 고기 대접하는 일이 많아서 좀 힘들었다."
아무리 나무를 팔라고 해도 팔지 않는 나라 '부탄'
|
이보은 : "개인적인 관심을 넘어 환경운동에 직접 뛰어든 계기가 있었을 것 같다."
김남희 : "구체적으로 이른바 환경운동에 발을 담그게 된 것은 피스앤그린보트에 책임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참여했다가 쓰지 신이치(한국계 일본 문화일류학자, '슬로 라이프' 제창) 선생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내가 만난 쓰지 신이치는 철저하게 생활 속의 작은 것들을 실천하는 분이다. 일회용 컵을 물론 자판기와 편의점도 이용을 안 하신다. 이런 사소한 일상 속 실천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보은 : "신이치 선생과 함께 부탄을 여행한 걸로 알고 있다. 작은 공동체로 알려진 나라, 행복 지수가 높다고 알려진 나라인데, 어떤 경험이었나?"
김남희 : "물론 부탄 역시 파라다이스는 아니다. 개발 붐이 일고 있고, 빈부격차도 심하다.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네팔계 탄압이 이뤄지고 있는 등 문제가 많다. 하지만 그들의 실험을 지켜볼 필요는 있다고 봤다. 국민행복지수(GNH)를 국가발전의 지표로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도 이름이 알려진 이 나라는 행복을 위해 깨끗한 물과 공기, 전통적 생활양식과 문화를 지켜내는 것이 필수라고 생각하는 나라다. 국토의 일정 면적은 늘 산림으로 유지하게 한다. 옆나라 인도에서 나무 좀 팔라고 아무리 애원해도 함부로 팔지 않는다. 헌법환경을 지켜내는 게 법적으로 완비되어 있다. 본받을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이보은 : "위더컵 캠페인은 지표면의 70%, 그리고 우리 몸의 70%를 이루고 있는 물과 우리가 어떻게 마시고 관계할 것인가란 질문을 가지고 진행되어 왔다. 여행하면서 '물'과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았을 것 같다. 어떤 경험이 있었는가."
김남희 :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저개발 국가'에 많이 갔다. 그곳에선 여자들과 아이들의 일상이 너무 고단하다. 하루에 대부분의 시간을 물 긷는 일에 써야 한다. 양동이를 짊어지고 몇 시간을 걸어 물을 퍼오고 그만큼 다시 걸어 돌아와야 하는 일상. 파키스탄에 갔을 때 '내 직업은 여행하는 일'이라고 했더니 그곳에 있는 여자들이 다들 무척 부럽다고 했다.
난 그동안 내가 돈을 모아서 여행을 왔다고만 생각했는데. '왜 난 여행을 올 수 있고, 이 사람들은 물 긷는 일에 하루에 몇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인가, 혹시 내 돈이, 그리고 또 내가 부당한 것은 아닌가.' 여행을 하면서 이런 질문이 마구 생겨났다. 물이 귀해 고생하는 나라나 마을에 가면 나의 무책임한 삶이 반성되고, 지구촌의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에 새로운 고민이 든다."
탄소발자국 지우는 프로그램, 우리나라엔 왜 없을까
이보은 : "어려운 질문 하나. 탄소 발자국을 제일 많이 남기는 게 바로 비행기 아닌가. 모순으로 보일 수 있다."
김남희 : "마음 속 한구석에 늘 존재의 모순을 느끼며 살아가는 게 환경의 일상인 것 같다. 사실 나의 일상이 가장 반환경적이다. 비행기를 타고 장거리를 왔다 갔다 한다. 그리고 여행을 갔다 와서 책을 쓰지 않나. 숲을 베어내어야만 만들 수 있는 게 책 아닌가. 이 두 가지만으로도 이미 지울 수 없는 엄청난 탄소발자국이 찍힌 것이다.
늘 부끄럽다. 하지만 난 비행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답답하고 공기도 없고 그 지독한 '빠름'이 싫다. 일단 불가피하게 비행기를 이용해서 다른 나라에 가도, 그 다음부터는 거의 대부분을 육로로 이동한다. 하지만 이는 핑계일 뿐이다. 늘 죄짓는 마음으로 여행길에 오른다. 웬만한 비행 여행이 자동차 여행 1년에 맞먹는 탄소를 배출한다는데…."
이보은 : "탄소발자국을 지우는 프로그램은 없을까. 항공사에서 고민해야 하는 문제 아닌가?"
김남희 : "유럽 저가항공의 경우 그런 프로그램이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런던에서 마드리드까지 간다고 하면, 내가 배출하는 탄소가 어느 정도이고 이걸 지우기 위해 일정 금액을 승객이 부담하는 것이다. 물론 옵션이다. 이 돈은 모여서 아마존의 숲을 보호하고 에콰도르에 우물을 파는 등의 일에 쓰인다. 그 사업 역시 다 공개되어 있다. 우리나라 대형 항공사들은 왜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꼭 해야 한다. 여행자와 항공사의 의무라고 본다."
이보은 : "말이 나온 김에… 여행가의 삶으로 '환경'을 고민하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김남희 : "내 노력이 얼마만큼의 성과가 있을까 회의하는 편이었다. 그러다가 인도의 라다크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마을에 들어오는 여행자들이 지역 여성공동체가 운영하는 교육프로그램에 꼭 참여해야 한다.
이 자리에서는 BBC의 환경다큐멘터리를 함께 보고 토론도 하고 여행자가 할 수 있는 소소한 실천들을 마을공동체로부터 제안 받는다. 생수와 비닐봉투를 사용하지 않는다부터 아이들에게 돈을 주지 않는다 등등.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내가 이 마을을 위해 기꺼이 할 수 있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로 나도 그런 일들을 찾아보자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뭔가 거대한 이념이나 당위에 얽매이지 않는….
이스라엘에서 죽을 날을 받아둔 근육병 환자들을 돕던 한 청년이 한 말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야, 불평만 하는 것보단 나으니까'란 말도 감명 깊었다. 이때부터 일상 속에서 더 걸었고, 플러그를 뽑기 시작했으며 생활 속에 환경주의자로 변모했던 것 같다."
이보은 : "그런 생각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다."
김남희 : "인도에 갔을 때 일이다. 기차 안에서 바나나를 먹고 껍질을 가방에 넣고 있었다. 그런데 한 인도 사람이 그걸 보더니 바나나 껍질을 빼앗아 창밖으로 휙 버리는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는 나라 전체가 쓰레기장이니 이렇게 버려도 된다'면서... 너무 화가 났다. '여긴 너희 나라이기도 하지만 어머니 지구, 내가 살아가는 별이기도 하다'고 소리를 지른 적이 있다."
이보은 : "그 사람이 움찔했겠다. 이번에 펼친 위더컵 캠페인에도 기획 단계에서부터 참여했다. 좋은 협력자도 함께 찾고 적극적인 역할을 했는데?"
김남희 : "사실 조심스런 부분이다. 남들이 할 수 없는 영역일 수도 있다. 내가 기뻐도 남에게 권하는 자체가 부담일 수도 있고…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내가 실천하는 것을 너도 하라고 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우선 내가 그 일을 끊임없이 함으로써, 그걸 지켜보던 사람들로 하여금 '한번 해볼까?'하는 마음이 들도록 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주위에 '김남희가 판을 벌이면 내가 들러리라도 서 준다'는 고마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도울 준비가 되어 있던 사람에게 기회를 줬을 뿐이다."
"도보여행, 지역간 불필요한 경쟁주의 있는 것 같다"
|
이보은 : "도보여행이 속칭 '뜨고' 있다, 국제 컨퍼런스에도 참여하고 여행가로서 사회적 입지도 생긴 것 같다. 이런 분위기를 어떻게 보나?"
김남희 : "여행 문화가 도보로 바뀌는 것은 기쁜 일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도 우리 사회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도보여행이 유행이라고 하니까 일제히 그쪽으로 달라붙어 트레일을 만들어낸다. 지역간 불필요한 경쟁주의도 있는 것 같다. 마치 도보 여행길이 꼭 가봐야 하는 여행지처럼 되어 가고 있다. 획일화된 문화를 강요하면 안 된다. 어디에 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여행하느냐가 중요하다. 여행은 만남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부터 여행자의 눈으로 발견하고 풍성하게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나도 동네인 부암동을 매일 걷는다. 동행하는 자에 따라, 날씨에 따라 변화하고 달라지는 바로 그 모습을 즐긴다. 여행은 'where(어디)'보다는 'how(어떻게)'가 훨씬 더 중요하다.
이보은 : "도보여행을 동경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남긴다면?"
김남희 : "'책임여행', '생태여행', '공정여행', '착한여행', '지속가능한 여행' 등등 많은 말이 있다. 결국 핵심은, 여행 지역의 자연과 경제, 환경에 대해 책임질 의무로서의 여행자다. 정말 소통을 위해 떠난 여행인지, 무엇인가를 나누는 여행인지, 한 번쯤 물어보고 고민하는 더 나은 여행자가 되자. 이렇게 하려면 불가피하고 불편하고 귀찮은 일들이 따라붙게 된다. 하지만 거부하지 말자. 변화를 모색하고 자기를 바꿔내는 연습이라고 생각하자. 결국 내가 행복해 진다. 여행을 하면서 나는 무엇을, 어디까지 해 볼 수 있을까를 다양하게 고민해 보라….
그녀는 올해 7월 일본을 걷고 낸 책 <일본의 걷고 싶은 길> 서문에 이렇게 썼다.
"최근 관심사는 우리 별 지구, 이 아름다운 행성에 폐를 덜 끼치는 인간으로 살려 한다."
지금도 이 지구상에 수없이 찍히고 있는 탄소발자국에 맞선 '소심하고 까탈스런' 김남희씨의 발자국이 계속되기를, 그래서 사람과 자연의 '환경발자국'이 '탄소발자국'을 멋지게 누르는 그날이 어서 오기를….
그녀는 2011년 1월 중남미로 떠날 계획을 세우고 요즘 다시 장롱을 열어 여러 장비들을 살펴보고 있다. 2012년에는 '실크로드'에 러브콜(도전장이 아니다!)을 보낼 것이라고 한다.
<오마이뉴스> 기사 원문 보러 가기
'트래블러스맵 소식 > 언론 보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불어 사는 지구촌을 위한 ‘공정여행’ (아주경제) (0) | 2010.12.28 |
---|---|
여행, 그 유쾌한 진화 사회적기업가, 그 희망의 진화(함께일하는재단 소식지) (0) | 2010.12.24 |
[관련기사] 연합뉴스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 트위터러와의 간담회 (0) | 2010.12.17 |
공정여행 캠페인 영상, 몸은 조금 불편해도 마음은 몇배 편안 (3) | 2010.12.17 |
어떤 섬이 죽은 이유, 환경을 살리는 '생태관광'을 아시나요? (출처 : 풀무원 블로그) (0) | 2010.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