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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여행/소셜프로젝트

[볼런투어/미얀마] 미얀마의 어제와 오늘 - 버마, 바간왕조, 샤프론항쟁, 소수민족



Early Pagan Kingdom


많은 분들에게 미얀마는 '버마'로 더 친숙한 나라 일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독재를 먼저 떠 올리고, 

아웅산 수치의 오랜 민주화 노력과 

2000년 대에도 계속됐던 반 독재 민주화 투쟁을 떠올리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그런 미얀마가 이제 우리에게 '여행지'로 다가왔습니다.

아직은 미지의 세계인 미얀마. 미얀마는 어떤 나라 일까요?



1210년경의 버간 왕국 (출처 : 위키백과)     



*버마란? 

'버마'는 미얀마 국가의 반수 이상을 차지하는 '버마족'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1948년부터 1974년까지는 버마 연방(Union of Burma), 


1974년부터 1988년까지는 버마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Socialist Republic of the Union of Burma)이라고 불리웠습니다.

 

1989년 6월 18일 군사 정권은 국명의 영어 표기를 Union of Burma에서 Union of Myanmar로 개칭합니다.

 

이에 대해 군사 정권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측은 국명의 개명이 군사 정권의 독단에 의한 것일 뿐이라 하여 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유력 영어권 미디어나 주요 인권 단체는 버마라는 국명을 계속 사용하고 있으며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는 버마, EU는 버마와 미얀마를 병기하고 있습니다.

 

미얀마는 문어적으로 후자는 구어적으로 많이 사용된다고 합니다.


(출처 : 네이버 지식in '미얀마를 버마라고 하는 이유는? 



미얀마 사람들은 총 135개의 민족이 국가를 이루는 다민족 국가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중 68%가 버마인 들이죠. 이 외에는 카렌족과 샨 족 등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C) Hybernator  CC BY-SA 3.0

바간왕조, 황금빛 찬란한 불교왕국을 세우다 



*미얀마 대표 왕조 

버간(파간) 왕국(1044-1287)

따웅우 제국(1531 ~ 1752)

꼰바웅 왕조(1752-1885)


민족의 다수를 이루는 버마족은 바간 왕조를 세우고 9세기 부터 13세기 까지 5세기 동안 미얀마를 통치했습니다. 특히 42번째 왕 아너예타는 미얀마를 가로질러 흐르는 애라와디강이 품고 있는 민족들을 지배하며 강력한 왕조를 건설하게 됩니다. 아너예타 왕은 최초의 통일 국가를 세운 위대한 왕으로 기록되고 있죠.

아너예타 왕은 1044년 부터 1077년에 이르기까지 30년에 이르는 재위 기간동안 바간 왕국의 문화와 힘을 그 어느 때보다 융성하게 했습니다. 4400여개의 불교 유적을 세우고 위용을 자랑한 것도 아너예타 왕입니다. 지금의 바간에는 그 중 2500여개의 불탑이 남아 아직도 찬란했던 왕조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바간 왕국이 멸망한 그 이후에도 두 번째 통일 왕국인 따웅우 왕조의 훌륭한 왕들이 등장해 버마는 동남아시아에서 그 어떤 왕국보다 강력해지게 됩니다. 따웅우 왕조 때는 태국의 아유타야와 수코타이를 정벌하는 등 동남아의 새로운 강자로 등장하기도 했다네요.

마지막 통일 왕국인 꼰바웅 왕조가 1885년 멸망하여 1886년부터 인도의 한 주로 영국의 통치를 받기 전까지 버마의 영향력은 중국 윈난성 일부, 방글라데시의 일부, 태국의 일부까지 미칠 정도였습니다. 식민 지배 전까지 버마인들은 '강함과 빠름의 대명사'로 동남아시아에서 맹위를 떨칩니다.




학교보다 절이 많은 나라, 스님에게 글과 삶을 배우다


하지만 이런 정복의 역사 속에서도 미얀인들을 '호전적이다'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오랜 정복전쟁과 패권 다툼 가운데서도 버마가 가지는 불교가 이들 문화의 중심이었기 때문인데요, 학교가 없는 곳에도 절은 꼭 있으며 언제 어디에서도 불탑이 보인다고 하니, 불교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이 가시나요?

미얀마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스님에게 글을 배우고, 수업을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GDP와 같은 경제 지표 때문에 미얀마를 동남아시아의 최빈국이라 치부해 버리지만, 문해율만은 90%를 웃도는 국가입니다. 왜 그럴까요? 가난과 상관없이 어릴 때 부터 동네 절에서 스님과 배우는 글자, 학문이 이 나라에서는 당연한 것이고, 그 만큼 스님들은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습니다.

나아가 오랜 역사 동안 '더이상 백성들을 괴롭히지 말라' 라는 가르침을 지속적으로 전해 온 것도 스님들 이시고 결국 그 가르침이 행동으로 나온 것이 샤프론 항쟁이었습니다. 




수백 명의 스님들이 목숨을 바쳐 독재에 저항하다, 샤프론 항쟁

By Béka CC BY 2.0By Béka CC BY 2.0

1962년 쿠테타 이후에는 군사 정부의 영향력이 상당히 강해졌지만, 여전히 미얀마에서 불교와 그 불교의 중심인 스님들이 가지는 힘은 막강합니다. 실제로 2007년 9월 미흡하지만 개방과 민주화의 시작을 알린 샤프론 항쟁에서 수백 명의 스님들이 목숨을 바쳐 독재에 저항했고, 이를 계기로 결국 미얀마는 2010년 미얀마 연방 공화국으로 새출발을 하며 관제 야당이기는 하지만 1990년 이후 20년 만에 직접 선거가 실시되는 변화를 맞았습니다.








저마다의 색깔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미얀마의 소수민족

2010년 미얀마 연방 공화국이 선포된 이후, 미얀마의 수 많은 소수 민족들은 저마다의 권리를 찾고자 나서고 있습니다. 이에 다수인 버마족들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는데요, 실제로 미얀마 내에서의 소수민족 차별은 오랫동안 문제가 되어 왔습니다. 군부가 집권할 때 강제로 붙인 이름 '미얀마'를 민주화 운동 진영에서는 거부하고 '버마'라 표기 했지만 그 것이 미얀마를 구성하는 여러 민족 중 하나의 이름이니 만큼 미얀마로 부르는 것이 맞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다 민족 간의 갈등은 필연적인 부분도 있지만 그 만큼 다양한 색깔을 내는 문화를 형성합니다.


소수민족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 하고 있는 샨족(전체 8.5%)은 미얀마 국토의 1/4에 해당되는 샨주에 살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고산지대로 이루어진 샨주는 큰 산이라는 뜻의 '타웅지'를 주도로 하며 해발 850m높이에 형성된 자연호수인 '인레'를 포함하고 있어 개방이후 관광지로도 큰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기름지고, 생선 젓갈을 주로 먹는 버마인들과 달리 샨 족은 '차친', '차뇨'라고 불리는 간장에 조리거나 야채를 활용하여 만드는 요리를 주로 먹습니다. 기름과 찹쌀을 주 재료로 하는 샨 쌀국수는 미얀마의 대표적인 쌀국수 중 하나로 꼽히며 생선살을 발라 찰밥과 함께먹는 샨밥, 찹쌀밥에 각종 육류와 마늘을 넣은 샨터민친도 대중적인 음식으로 꼽힙니다.

이러한 음식 문화 뿐 아니라 샨족은 이름을 짓는 방식에서도 큰 특징을 보입니다. 버마족이 친족의 성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 요일에 해당하는 미얀마 자음을 선택하여 작명을 한다면 샨족은 남성들은 이름 앞에 사잉(Saing)·소(Saw)·쿤(Hkun), 여성들은 난(Nan)을 붙여, 버마족과의 차이를 확실히 합니다. 미얀마에 가게 된다면 이름으로 민족을 구분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문화 체험이 되겠죠!


샨 족 다음으로 많은 분포를 띄고 있는 민족은 카렌족(전체 7%) 입니다. 미얀마와 태국 국경지대에 주로 거주하는 이들은 종교와 문화에 따라 다시 레드카렌-스고-포 카렌-파쿠 카렌-블랙 카렌으로 나뉩니다. 카렌 족 하면 떠오르는 목에 여러 겹의 목걸이를 한 여성들은 빠둥족 이라고 불리는 이들이죠. 빠둥족이 카렌족 중에서도 가장 많은 분포를 나타냅니다.

많은 다큐멘터리나 영화 등에서 이들의 목걸이를 비극의 상징처럼 조명하기도 했는데요, 실제로는 같은 민족 중에서도 천을 대신 감거나 목걸이를 푸는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전통을 지켜가고 있다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마세요! 원래 이런 목걸이를 하는 전통은 산악지대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맹수들이 여성을 잡아 먹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네요. 모든 전통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 새삼 또 느껴지네요. 

샨과 카렌 이외에도 불교를 믿는 리카인, 기독교를 믿는 카친, 이슬람교를 믿는 로힝야 족,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소수 민족들이 미얀마 땅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수민족들과의 갈등이 분명 미얀마에서는 큰 문제이고, 이전에도 뿌리 깊은 차별 때문에 많은 소수민족들이 죽거나 다친 아픈 현대사를 가진 미얀마 이지만 민주화를 점진적으로 이뤄냈듯 소수민족들과의 갈등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리라 기대합니다. 

아픈 현대사의 그늘에서 이제 한발짝 한발짝 외부로 발을 내딛는 미얀마, 미얀마로 함께 떠나 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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